글 모 음 53

눈물 - 김현승(金顯承)

눈물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 김현승 *** 자식을 가슴에 묻으며 떨구는 눈물을 어찌 막으랴! 작자는 신의 전능에 따르며, 아버지로 에이는 눈물을, 詩(시)로 승화시키는 마지막 이별에서, 인간의 애틋함까지 펴 놓아두고 있음이다. 가슴에 묻는 자식, 어찌 그려낼 수 있으랴!

글 모 음 2023.02.27

아침 이미지 - 박남수

아침 이미지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갖 물상(物象)*을 돌려 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屈服)한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물상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즐거운 지상(地上)의 잔치에 금(金)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아침이면, 세상은 개벽(開闢)을 한다. - 박남수 * 물상 (物象) [물쌍] 1. 자연계 사물의 형태. 2. 자연계의 사물과 그 변화 현상. 3. 물리학ㆍ화학ㆍ천문학, 지구 과학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 [한국대표현대시 낭송] #아침이미지 #박남수 시 #김양경 낭송 #어둠이아름답다 #어둠은새를낳고 --- 동영상 https://youtu.be/Xk7A2AlV6WE

글 모 음 2023.02.26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 오일도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저 황막(황막)한 벌판을 희게 덮어다오 차디찬 서리의 독배(毒盃)에 입술 터지고 무자비한 바람 때 없이 지내는 잔 칼질에 피투성이 낙엽이 가득 쌓인 대지의 젖가슴 포-트립 빛의 상처를.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저어 앙상한 앞산을 고이 덮어다오. 사해(死骸)의 한지(寒枝) 위에 까마귀 운다. 금수(錦繡)의* 옷과 청춘의 육체를 다 빼앗기고 한위(寒威)에 쭈그리는 검은 얼굴들. 눈이여! 퍽 퍽 내려다오 태양이 또 그 위에 빛나리라 가슴 아픈 옛 기억을 묻어 보내고 싸늘한 현실을 잊고 성역(聖域)의 새 아침 흰 정토(淨土) 위에 내 영(靈)을 쉬이려는 희원(希願)이오니. - 오일도 * 금수(4) (錦繡) 1) 수를 놓은 비단. 또는 아름답고 화려한 옷이나 직물. ..

글 모 음 2023.02.25

조춘(早春) - 정인보 독립운동가

조 춘 早春[이른 봄] 그럴싸 그러한지 솔빛 벌써 다 푸르다. 산골집 남은 눈이 다산 듯이 보이고녀 토담집 고치는 소리 볕발* 아래 들려라. 나는 듯 숨은 소리 못 듣는다 없을손가. 돋으려 터지려고 곳곳마다 움직이리 나비야 하마* 알련만 날기 어이 더딘고. 이른 봄 고운 자취 어디 아니 미치리까. 내 생각 엉기올 젠 가던 구름 머무나니 든 붓대 무능타말고 헤쳐본들 어떠리. 1929. 4.-. - 정인보 * 볕발→ 햇발=사방으로 뻗친 햇살. * 하마(1)= 바라건대. 또는 행여나 어찌하면.

글 모 음 2023.02.24

소쩍새 - 장만영

소쩍새 소쩍새들이 운다. 소쩍소쩍 솥이 작다고 뒷산에서도 앞산에서도 소쩍새들이 울고 있다 소쩍새가 저렇게 많이 나오는 해는 풍년이 든다고 어머니가 나에게 일러주시는 그 사이에도 소쩍소쩍 솥이 작다고 소쩍새들은 목이 닳도록 울어 댄다. 밤이 깊도록 울어 댄다. 아아, 마을은 소쩍새 투성이다. ㅡ 장만영 * 두산백과도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솟쩍’ 하고 울면 다음해에 흉년이 들고, ‘솟적다’라고 울면 ‘솥이 작으니 큰 솥을 준비하라’는 뜻에서 다음해에 풍년이 온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라고 적었다. - 일제강점기에 우리네 농촌에선 수많은 쌀을 싼 값에, 또는 세금을 빙자하여 강제로 빼앗기기를 다반사로 이어지고 있었는데, 배곯은 소쩍새들이 왜 울지 않았겠는가!

글 모 음 2023.02.23

무서운 시간 - 윤동주와 序詩 노래

무서운 시간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 일이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1941. 2. 7.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서시 (노래 고성현, 시 윤동주 작곡 정진채) --- 동영상 https://youtu.be/dXyDvS1ZYfs *** 보아둘만한 2023년 새로운 뉴스 간도 조선인의 삶과 윤동주의 고향을 찾아서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

글 모 음 2023.02.22

김수영의 '풀'과 그 민중의 삶

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도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김수영 金洙暎 김수영의 ‘풀’에 대해 해설은 작자의 말기를 대표하는 시작품으로 그가 죽기 얼마 전에 쓴 것이다. 3연 18행으로 된 이 작품은 ‘풀’과 ‘바람’이 대립관계를 이루고 있다. ‘풀’과 ‘바람’의 반복적인 구조와 효음(效音)을 제외하고 문맥상으로는 어떠한 메시지도 전달받지 못한다. 단순히 ‘눕다’·‘일어나다’·‘울다’·‘웃다’라..

글 모 음 2023.02.21

그 날이 오면 - 상록수의 沈熏(심훈)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 심 훈(沈熏) * 불행하게도 이 작품은 1930년..

글 모 음 2023.02.20

불 사루자 - 春城(춘성) 노자영

불 사루자 아, 빨간 불을 던지라, 나의 몸 위에 그리하여 모두 태워 버리자 나의 피, 나의 뼈, 나의 살! 자아를 모두 태워 버리자! 아, 강한 불을 던지라, 나의 몸 위에 그리하여 모두 태워 버리자 나의 몸에 붙어 있는 모든 애착, 모든 인습 그리고 모든 설움 모든 아픔을 자아를 모두 태워 버리자 아, 햇불을 던지라, 나의 몸 위에 그리하여 모두 태워버리자 나의 몸에 숨겨 있는 모든 거짓, 모든 가면을 오 그러면 나는 불이 되리라 타오르는 불꽃이 되리라 그리하여 불로 만든 새로운 자아에 살아 보리라 불타는 불, 나는 영원히 불나라에 살겠다. 모든 것을 사루고, 모든 것을 녹이는 불나라에 살겠다. - 노자영(盧子泳)

글 모 음 2023.02.19

낙화 - 조지훈

낙화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 하노리*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조지훈 * 주렴(珠簾) 구슬발. 옥렴. 주박. *귀촉도(歸蜀道)- 두견과의 새. 편 날개의 길이는 15~17cm, 꽁지는 12~15cm, 부리는 2cm 정도이다. 등은 회갈색이고 배는 어두운 푸른빛이 나는 흰색에 검은 가로줄 무늬가 있다. 여름새로 스스로 집을 짓지 않고 휘파람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휘파람새가 새끼를 키우게 한다. 한국, 일본, 말레이시아 등지에 분포한다. * 우련 (優憐)- 특별히 가엾게 ..

글 모 음 2023.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