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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풀'과 그 민중의 삶

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도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김수영 金洙暎 김수영의 ‘풀’에 대해 해설은 작자의 말기를 대표하는 시작품으로 그가 죽기 얼마 전에 쓴 것이다. 3연 18행으로 된 이 작품은 ‘풀’과 ‘바람’이 대립관계를 이루고 있다. ‘풀’과 ‘바람’의 반복적인 구조와 효음(效音)을 제외하고 문맥상으로는 어떠한 메시지도 전달받지 못한다. 단순히 ‘눕다’·‘일어나다’·‘울다’·‘웃다’라..

글 모 음 2023.02.21

그 날이 오면 - 상록수의 沈熏(심훈)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 심 훈(沈熏) * 불행하게도 이 작품은 1930년..

글 모 음 2023.02.20

불 사루자 - 春城(춘성) 노자영

불 사루자 아, 빨간 불을 던지라, 나의 몸 위에 그리하여 모두 태워 버리자 나의 피, 나의 뼈, 나의 살! 자아를 모두 태워 버리자! 아, 강한 불을 던지라, 나의 몸 위에 그리하여 모두 태워 버리자 나의 몸에 붙어 있는 모든 애착, 모든 인습 그리고 모든 설움 모든 아픔을 자아를 모두 태워 버리자 아, 햇불을 던지라, 나의 몸 위에 그리하여 모두 태워버리자 나의 몸에 숨겨 있는 모든 거짓, 모든 가면을 오 그러면 나는 불이 되리라 타오르는 불꽃이 되리라 그리하여 불로 만든 새로운 자아에 살아 보리라 불타는 불, 나는 영원히 불나라에 살겠다. 모든 것을 사루고, 모든 것을 녹이는 불나라에 살겠다. - 노자영(盧子泳)

글 모 음 2023.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