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가 서열 2인자가 새롭게 등장했다. 그것도 여당이 아닌 야당에서 태어났으니 감회가 색다르다. 더군다나 박정희 군부독재자의 딸이 18대 대선에서 비합법적으로 대권을 거머쥔 탓에, 그녀의 권한을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때문인지 더욱 더 가슴이 울렁이고 있다. 서열 2인자인 정세균(66) 국회의장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다.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의 6선 의원인 정세균 국회의장은 1950년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개안들에서 4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고 한다.
다음은 Sjb news.com이 2012년 5월6일자 보도한 정세균의 어린 시절과 청년시절의 자료이다.
정세균의 지인들은 그의 이름 앞에 ‘진촌’이라는 별호를 붙여 부른다. ‘진짜 촌놈’과 ‘진안 촌놈’의 줄임말이다.
그는 6.25 발발로 포연이 자욱하던 1950년 9월, 장수군 장계면 개안들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지금은 폐교가 된 진안군 동향면 능길초등학교와 주천면에 있는 주천고등공민학교를 다녔다. 그 시절은 모두 가난했다. 정규중학교가 아닌 고등공민학교의 월사금을 내지 못하는 아이들은 진학을 하지 못했고, 친한 친구 한명도 그랬다. 이른 아침 들판으로 소를 끌고 나가던 그 친구는 외면했다. 그때 막연하게 정치를 생각했다. 돈이 없어도 최소한의 공부는 할 수 있는 세상, 가난해도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을 생각했다. 동네 담벼락에 국회의원 선거 포스터가 붙을 때마다 유심히 살펴봤고, 그 일이 지금의 정세균을 있게 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어린시절, 소꼴을 베러 다니고, 몸에 부치는 나뭇짐을 메고 뻘뻘 땀 흘리던 고생스런 기억이 많다. 고등학교는 세 군데나 옮겨 다녀야 했다. 무주군 안성면에 있는 안성고등학교를 6개월도 채 못 다니고 전주공업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러나 인문계 학교를 다니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어느 날 전주신흥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을 무턱대고 찾아갔다. “전주공고에서 1 등을 한번도 놓친 적이 없는 정세균이라고 합니다. 신흥고등학교를 다니고 싶은데 장학금을 안 주시면 학교에 다닐 형편이 못됩니다. 장학금을 주시고 전학을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용기가 가상해서인지 장학생으로 입학을 허락했고 신흥고는 개교 100년 만에 처음으로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군부독재가 유신으로 치달리던 1971년, 촌놈의 서울 상경기는 시작되었다.
법학도지만 실제로 공부보다는 고려대신문사 일에 거의 매진했다. 유신의 발톱이 드러나던 시기에 고려대 총학생회장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안았다. 군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와중에 우리는 다가올 민주조국의 희망을 노래하고 꿈꾸며, 악몽같던 시기를 견뎌냈다. 당시 이화여대 영문과를 다니던 아내 최혜경을 만났다. 대학졸업 후 쌍용그룹 계열사인 종합상사에 입사하여 시멘트 영업부터 시작해 기계부품, 신발 등 소위 ‘라면에서 미사일까지’라는 국제영업의 최일선에서 일했다. 미국지사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선진 정치 경제의 현장을 체득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95년 18년간의 실물경제 현장 생활을 마감하고 정치 일선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96년 4월 11일 첫 번째 국회의원 도전에서 상대후보를 40%의 표차로 따돌리면서 의정단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15대 국회부터 내리 18대까지 당선됐고 이번 19대 총선에서 정치적 실험에 성공했다. 그동안 정책위의장, 원내대표, 대표 등 주요 보직을 맡아 합리적인 리더십으로 당을 이끌었다. /서울 = 강영희기자 kang@sjbnews.com
1974년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이후, 1978년 쌍용그룹에 입사한 것만 나타나고 있다.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서 사법시험을 왜 보지 않았겠는가?} 후일(1995년) 쌍용그룹 상무이사로 있을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였던 김대중의 정계 입문 제안을 받고 1995년 김대중의 특별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한다.
문제는 그의 학구열(學究熱)이다. 청년시절 쌍용그룹의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쌍용그룹의 종합상사 주재원 시절, 뉴욕대에서 행정학을 전공했고, LA 주재원 시절엔 페퍼다인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한 것이다. 그리고 1995년까지 쌍용그룹에서 수출 관련 업무를 맡기도 했다. 그의 성품이 온화한 것이 좋아 보인다.
위키백과에서는 2009년 12월, 2006년 참여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 재직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인사청탁 개입여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고만 적혀있다. 하지만 2010년 09월 17일자 미디어오늘은 “동아일보는 정세균 전 민주당 대표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 2만 달러를 수수한 의혹이 있다는 보도와 관련해 정정보도문을 게재했다. 동아일보는 정세균 전 대표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도 패소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의 행적 중에서는 특이한 비리가 나타나지 않아서 좋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18대 국회까지 국회의원 4선까지 역임했다. 참여 정부 시절 2006년 2월부터 2007년 1월까지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이 창당되기 전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의장으로 활동했고, 2008년 7월 6일에 통합민주당의 대표로 선출됐다. 정세균은 2009년 7월 24일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처리에 반발하여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의원직 사퇴서를 낸 뒤 원외에 머물러오다 제5회 지방 선거의 승리에 힘입어 다시 국회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해 8월 2일에 7.28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했다.(위키백과)
*1996년부터 15대와 16대 2선은 전북 무주·진안·장수 지역의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17대와 18대는 임실을 더 추가해서 담당하여 국회의원의 임무를 수행했다.
19대와 20대는 정치 1번지라고 하는 서울 종로 지역구 의원이다.
그는 국회의장 수락연설에서 “지금까지 국회는 갈등의 조정자가 아니라 조장자라는 여론의 질타를 받아 온 것이 사실”이라며, “국회의장으로서 유능한 갈등 관리와 사회통합의 촉매 역할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에게 짐이 아닌 힘이 되는 국회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했다.
또한 "20대 총선 민심으로 만들어진 여소야대, 다당체제 하에서 국회의장에게 부여된 막중한 소임에 최선을 다해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를 만드는 데 모든 역량을 바치겠다"고 하며, "이제 국회도 책임정부 이상으로 책임의회를 지향해야 한다"며 "단순히 견제하고 감시만 하는 역할에서 머무르지 않고 국정의 당당한 주체로서 부여된 권한을 적극 행사하되 그에 따른 책임도 함께 지는 협치의 모델을 정립해 나가겠다"고 했다.
정 의장은 9일 오전 열린 더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총 121표 중 71표를 얻어 문희상·박병석·이석현 의원을 누르고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됐으며, 오후 본회의에서 실시된 국회의장 선출 투표 결과 출석의원 총 287명 중 274표를 얻어 당선됐다.
국가서열 2인자인 국회의장 인물평에 대해 확실하게 나타난 것이 없다는 것은 아직도 정세균이라는 인물이 세상 밖으로 크게 나타나지 못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가난을 무릅쓰고도 학업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에 국회의장까지 올라섰다고 본다.
‘진촌’은 고려대학교를 접수했고, 국회의원을 6번이나 접수 하는 중, 정치 1번지를 두 번 접수했으며, 20대국회전반기까지 접수하고 말았다. 그의 석학으로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한국에서 법을 공부했고, 미국 뉴욕대에서 행정학을 공부했으며, LA에서 경영학도 공부했지 않은가?
2년 동안 국회를 어떻게 운영해 가느냐에 따라 국민의 마음을 크게 살 수만 있다면 진촌은 또 대한민국까지 접수? ‘참신하고 진정한 대통령을 모십니다.’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에 참가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대 국회 전반기 의장에 선출된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의장이 회의진행을 알리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출처; 강원도민일보)
참고가 된 원문
https://ko.wikipedia.org/wiki/%EC%A0%95%EC%84%B8%EA%B7%A0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0830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786582
http://www.s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1343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609_0014139760&cID=10301&pID=1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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