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사항

훈민정음이 국보 특호가 될 이유

삼 보 2016. 6. 1. 05:32

    

      세계 77억 인구 중 3분의 1 정도가 쓰고 있는 세계어(World Langage)로 알려진 영어! 대단한 언어이다. 그 영어를 언어학자들은 어떻게 인정하고 있을까?

     세계언어백과는 “영어의 명칭 English의 어원은, 앵글족이 사용하던 고대영어 '앵글리쉬'(Ænglisc)로부터 유래한다. 이 고대영어는 5세기부터 형성되었는데, 르네상스를 거치며 라틴어, 그리스어 어휘를 대량 수용하다가 성서의 보급으로 영어는 널리 전파된다. 그리고 영국인들이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이주하면서 사용자수가 획기적으로 증가했다.”며, “계통적으로는 인도유럽어 > 게르만어족 > 서게르만어에 속하며, A부터 Z까지 26개의 알파벳 문자로 표기한다.”고 적고 있다.


     국어국문학자료사전은 알파벳(alphabet)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기호체계의 하나. 언어의 음을 표기하는 데 쓰이며 이들 문자는 특정한 방법으로 배열, 기억된다. 알파벳의 어원은 그리스 자모의 최초의 두 자의 명칭 알파(alpha)와 베타(béta)의 결합이다. 본래 그리스 자모를 가리키는 말이었다가 라틴 자모에로 전용되고, 지금은 그 외의 많은 언어에 대해 문자생활의 기본단위가 되는 음소문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서구 제국어의 자모는 라틴 자모에서, 러시아 자모는 그리스 자모에서 파생 분지된 것이나, 문자의 형태 및 자수(字數)에 있어 다소의 차이가 있다. 알파벳을 구성하는 문자들은 각각 음소적(音素的) 단음(單音) 표시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그 음이 반드시 음소에 해당하는 유일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영어의 a로 표시되는 음에는 [a∙æ∙ ]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비록 1자 1음의 경우라도 강세(强勢)나 음조 등에 따른 상위점은 무시되기 때문에 각 문자의 음의 표기는 결코 엄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알파벳은 현존 문자 가운데 가장 발달된 인위적인 표기 체계로서 음과 문자와의 관계는 규약적 · 인습적인 것이며,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이것이 회화문자(繪畵文字)∙표의문자(表意文字)와 성격을 달리하는 점인데, 회화문자는 문자와 표상(表象)된 사물 사이에 직접적 · 본질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알파벳의 역사는 음절 문자로 씌어진 미케네 · 크레타 비문(碑文)이래 2천 몇백 년이 되며, 이에 비하여 놀라울 정도로 변화가 적다. 이 기간 동안의 변천은 비교적 소상히 밝힐 수 있으나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리스 이전의 역사로, 헤로도투스(Herodotus)에 의하면 그리스인인 자신은 그들의 알파벳을 페니키아에서 차용해 온 것으로 믿고 있다고 전한다.


   이에 관해서는 학자간에 이견이 분분하여 고대 에게해 문명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 자모 명칭 알파 · 베타 · 감마 · 델타 등으로 그리스어에 있어서는 무의미한 것이며, 셈어의 어원을 나타내는 일이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예를 들면 헤브라이어에서 aleph∙beth∙gimel∙daleth는 각각 '황소 · 집 · 낙타 · 문(門)'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 자모는 페니키아에서 직접 그리스로 수입된 것이 아니라 셈어족에 속하는 문자에서 유래한다고 말할 수 있다(Taylor는 Aramaic 기원으로 보고있다).

   다음의 문제는 셈 이전의 역사이다. 최근까지 그 기원을 구명치 못하고 있었으나 1906년 시나이에서 발견된 각문(刻文)을 영국의 이집트 학자 가아디너(A.H. Gardiner)가 판독, 1916년 이것이 셈 자모와 이집트 상형문자와 중간 단계를 보이고 있음을 발견, 알파벳의 이집트 원산설(源産說)을 다시 제기한 것이다. 학자들간에는 이것을 이집트 문자와는 독립된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으나, 이집트 상형문자와의 관계가 아주 분명하므로 가아디너의 설을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시나이 문자는 표음문자로 쓰인 듯하며, 문자가 표현하는 대상의 이름으로 불리어지게 된 것은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이것이 알파벳의 원형이다. 즉 이집트의 상형문자는 셈 문자에서 어떤 대상의 명칭의 어두음(語頭音)을 나타내는데 쓰이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소(牛)'를 표현하던 이집트의 상형 문자로써 소(牛)를 나타내는 셈어 단어 'aleph'의 어두음 'a'를 표현하는 방법인데, 이를 아크로포니(acrophony)라고 한다.

   알파벳은 대체로 1자 1음의 순수한 표음문자로서 적은 수의 글자로도 비교적 정확히 언어를 묘사할 수 있어 문자로서는 최고의 발달단계를 보이고 있다. 셈 자모는 이러한 장점 때문에 급속도로 사방에 전파되었는데, 그 한 분지(分枝)가 동으로 뻗어 인도의 여러 자모를 낳았으며, 다른 한 가지가 페니키아 · 아람 자모로 되고, 후자가 나뉘어 헤브라이 자모, 아라비아 자모 등을 낳았으며, 그 중에서 그리스의 알파벳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리스 자모는 그리스 본토에서 식민지로 확대되어 서(西)그리스 자모는 이탈리아 남부의 식민지 마그마 그리스에 전해져 라틴 민족 및 에트루스카에 채용되고, 서력 기원경에는 로오스하(河)를 거슬러 올라가 갈리아에도 전해졌으며, 라틴 자모는 5세기경 성 패트릭에 의해 갈리아에서 아일랜드에 이르게 되었다.

   한편 동(東)그리스 자모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되어 나아가 슬라브 자모를 낳았으며 오늘날 러시아 자모의 선조가 되었다. 고딕 자모도 동일한 계통의 것이나 룬 문자와 라틴 자모에서 몇 자를 차용한 것이다. 대체로 서력 기원경에서부터는 그리스계의 자모는 포교(布敎)와 더불어 전유럽에 광범하게 전파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라틴 민족에 의해 만들어진 라틴 자모는 소위 로마자가 되어 현재는 전세계에 보급되어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알파벳 [alphabet] (국어국문학자료사전, 1998., 한국사전연구사)


    결국 알파벳은 이집트의 상형문자와 셈어족들이 물체의 앞 글자를 따다 음소문자(音素文字)를 만든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쉬울 것 같다. 그 알파벳을 영국의 앵글족이 들여와 표음문자로 사용한 것이 영어가 된 것으로 쉽게 풀이를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글 한글의 근본은 입 속에서 만들어지는 혀와 입, 이와 입술의 구강의 형태와 소리가 부딪히는 모양에 따라 만들어지는 형상이, 문자의 모형들이 과학적으로 풀이를 하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로 언어학자들은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주 순수한 단음문자(單音文字)의 표음문자라고 하는 것이 한글의 특징이다.


     이 귀중한 한글을 일제강점기 때 일본 학자들은 세종대왕이 창제를 한 것이 아니라, 고대 글자 모방설, 고전(古篆) 기원설, 범자(梵字) 기원설, 몽골문자 기원설, 심지어는 화장실 창살 모양의 기원설까지 내세우며 한글 비하를 역설했다. 얼마나 비열한 인간들인가? 그래서 저들은 훈민정음(訓民正音) 해례본(解例本)을 찾아 불사르기에 혈안이 됐다는 거다. 그러나 결국 저들은 그 일을 완전하게 다 처리를 하지 못한 것 같다. 간송미술관(국보 제70호)에 그 한 본이 있고, 얼마 전 국보 70호보다 더 오랜 것이 발견됐다.


    국보 제70호는 1940년까지 경상북도 안동군 와룡면(臥龍面) 주하동(周下洞) 이한걸(李漢杰)가에서 소장됐던 해례본은 그의 선조인 이천(李蕆)이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세종으로부터 직접 하사받은 것이라 한다. 이 책이 발견되어 간송미술관에 소장되기까지에는 김태준(金台俊)이라는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주의 국문학자로부터 숨은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발견 당시 예의본의 앞부분 두 장이 낙장되어 있었던 것을 이한걸의 셋째 아들 용준(容準)의 글씨로 보완했는데, 용준은 안평대군체(安平大君體)에 조예가 있어, 선전(鮮展)에도 입선한 서예가였다는 것이다.


    20대 국회에 들어와 1996년부터 벌써 20년 동안 국보 제1호로 지정된 남대문[崇禮問]을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바꿔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의견이 입법 청원되어 국회에 제출했다는 소식이다.




    위의 사진은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등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민원실에서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1호 지정을 위한 국회청원서를 제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대로 국어문화운동실천협의회 회장, 노 원내대표, 혜문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이날 노 원내대표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국보 1호인 숭례문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1933년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에 근거해서 최초로 지정된데 이어 1962년 '문화재보호법'에 근거해 일괄 재지정 되면서 '국보 1호'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며 "한글은 우리 국민들 모두가 최고로 여기는 문화유산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창조성과 과학성을 인정받은 문자다. 한글 창제의 의미와 그 해설을 담은 훈민정음 해례본은 우리나라 국보1호로 손색이 없는 문화유산이다"고 밝혔다. (2016.5.31/뉴스1 sowon)


    숭례문이 그 장소나 흔적만을 가지고 국보로 한다는 것도 실제로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고 본다. 2008년2월 10일 채종기라는 한 시민이 방화를 해서 그 다음날까지 불에 타서 그 목재와 기와부분은 거의 소실된 상태이다. 또한 잘 알다시피 남대문으로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조선 수도를 장악하고 입성한 문이라고 해서, 일제강점기 당시 남대문을 조선 고적(古蹟)1호로 치적하고 있었다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결국은 우리의 문화유산임에는 틀리지 않다.

    일반적으로 국가 보물에 번호를 매긴다는 것은 그 귀중함보다 관리를 위해 쉽게 처리하는 일처리 과정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그 중요성에 따라 순차적으로 국가나 지방관서 훅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국가보물의 서열이 나타나지 않겠는가?


    만일 남대문을 제외시키고 훈민정음 해례본을 국보 제1호로 한다면 남대문의 번호는 몇 번을 매겨야 할 것인가? 대단히 혼란스러울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훈민정음은 우리글의 과학성이 담긴 아주 귀중한 유산이다. 유네스코에서 1997년 10월 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있지만, 국가보물번호를 1번으로 한들 누가 뭐라 할 말이 있을 것인가? 하지만 그동안 유지해오던 숭례문의 국보 1호도 어찌 귀하다 하지 않겠는가? 모든 것 그대로 두고 훈민정음은 우리 뿐 아니라 세계 유산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고로 훈민정음은 ‘국보특호’로 하든지 그저 <국보>로만 하여 모든 보물의 최상의 자리에 두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본다. 훈민정음은 유산 중의 유산이다. 그게 국보특호에 대한 이유가 안 된다고 할 수 있을까?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가 발음기관을 상형()하였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간송미술문화재단, 출처;위대한문화유산)



  참고가 된 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5312241025&code=940100&nv=stand

http://news1.kr/photos/view/?1956706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92&contents_id=47119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85437&cid=58250&categoryId=58250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56244&cid=40942&categoryId=34709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96026&cid=41708&categoryId=41711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78582&cid=42192&categoryId=58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