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사항

오바마 히로시마 방문과 리틀 보이

삼 보 2016. 5. 12. 04:53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시간 오전 8시 15분에 최초의 핵무기인 "리틀 보이"가 일본 본토 히로시마 상공 580m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미국이 히로시마를 목표로 한 까닭은 이전까지 공습을 한 적이 없는 도시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뜻은 일본 본토에서 히로시마가 전쟁에서 제외되고 있었기에 원폭의 처녀시험에 가장 적절한 곳이라는 뜻 아닌가?


    미국은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두고 핵실험을 한 것이 분명하다. 미국 공군의 폴 티베츠(Paul Warfield Tibbets, Jr., 1915년 2월 23일 - 2007년 11월 1일; 미국 육사를 나온 공군 조종사) 대령이 조종하는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Enola Gay)호는 원폭을 투하하기 위해 준비기 됐다. 그리고 에놀라 게이 옆에 2기의 동료 공군기가 있었다. 한 대는 원폭이 터지는 장면의 촬영을, 다른 한 대는 과학적 측정을 하기위해, 결국 세대의 비행기가 함께 티니안 섬의 미 공군 기지에서 오전 2시 45분을 기해 출발했으니 말이다. 무기는 비행 중에 핵탄두를 장착하였으며, 승무원들은 목표 지점에 도착하기 30분 전에 안전장치를 제거한다. 일본은 3대의 공군기가 본토에 접근하는 것을 추적하고 공습경보를 발효했다가 곧 취소한다. 이처럼 소규모 편대가 위협이 되리라고는 감히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국 폭격기를 방해하기 위한 일본 전투기도 보내지 않았다. 티베츠와 장장 7시간을 날아온 비행기는 일본 전투기의 방해도 받지 않고 가볍게 원폭을 투하하고 만다.


    고도 9,750m 상공에서 투하된 폭탄은, 자동 폭발 고도에 도달하기까지 꼭 57초가 걸렸다고 한다. 폭탄이 내뿜은 검은 구름은 18㎞ 상공까지 치솟고 있었다. 폭발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1.6㎞ 이내 모든 것은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총면적 11평방 km에 화재와 파괴가 일고 말았다. 모든 건물의 90%p 이상 거의 파괴되고 말았다. 일본 당국은 폭발 당시 히로시마에 약 25만 5,000명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으나, 7만 명이 초기 폭발로 인해 사망하고 말았다. 그 후 방사능 피폭은 이어져, 1945년 말까지 거의 이와 비슷한 숫자의 사람들이 더 사망하게 된다.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사망과 질병은 오늘날까지도 끊이지 않고 있다고 본다. 히로시마 단 한 군데에 대한 위력인 것이다.


    일본이 1941년 12월 8일 하와이 진주만에 정박해 있던 미 해군 태평양함대를 기습적으로 선제공격하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며 태평양전쟁이 시작된다. 그리고 4년 후 히로시마에 이어 8월 9일 나가사키까지 원폭을 투하하며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고 말았다. 원폭의 피해가 이렇게 클 줄 미국 국방성도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길고 긴 세월의 전쟁을 종식시킨 티베츠는 영웅이 되고 만다.


    미국은 그 원폭의 피해를 사실상 고심한 것으로 안다. 그동안 가겠다고 했다가 안 간다고 했다 말이 많았는데,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계획이 확정됐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최초 원폭지를 방문하는 것이라고 한다. 미국 측은 '모든 무고한 피해자들'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물론 한국인 원폭 피해자도 염두에 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 평화공원 방문을 했을 때, '원폭 사망자 위령비'만 찾고 말 것인가? 아니면 대략 200m 떨어진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까지 찾아 갈 것인가? 확실하게 해야 할 것이다. ‘원폭 사망자 위령비’만 찾고 만다면 일본의 태평양전쟁을 시인하며, 미국의 사과로 인정하는 셈이 되고 말 것 아닌가 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 미국과 일본은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을 두고 미국의 사과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정부는 그와는 다르게 언급하고 있지만 일본 정권도 미국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을 대환영하고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이 포함하는 것인가?


    일각에서는 이번 히로시마 방문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역점 정책 추진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해석을 내고 있다고 한다. 특히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막고,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끝내기 위한 국제사회의 압력을 더하게 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거다. 그러나 북한이 얼마나 그에 호응할 수 있을 것인가? 미국도 지금 상태로선 그 능력이 다한 것 같은 느낌만 주고 있다고 생각지 않은가?

    좋다. 어쨌든 일본 군국주의가 빚은 천인공노할 태평양전쟁의 대가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희생된 것은 분명하다. 단지 그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만 하면 될 것이다. 더 깊게 생각할 틈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

    일본 정권의 아베 신조 총리도 하와이 진주만 방문을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고 하니 미일 간 화해의 태도로만 이해하고 싶어진다.

    일본의 태평양 전쟁으로 수많은 영혼을 앗아간 전쟁을 어찌 쉽게 잊어버릴 수 있을 것인가?



2003년 당시 폴 티베츠(출처 위키백과)



http://www.voakorea.com/a/3325851.html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00168&cid=43082&categoryId=43082

https://ko.wikipedia.org/wiki/%ED%8F%B4_%ED%8B%B0%EB%B2%A0%EC%B8%A0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5/12/20160512003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