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모 음

김영삼 전 대통령의 9대 명암(明暗)

삼 보 2015. 11. 23. 05:09

김영삼의 9대 빛과 그림자


 

1

1927년 12월 20일

경남 거제 멸치 어장의 어부아들이 된

김영삼

꿈이 남다르게 커

대통령의 욕망을 찬다


 

27세 3대 민의원 당선

국가 최연소 국회의원

이승만 정권 '사사오입 개헌'반대

자유당 탈당

그 후 30년의 야당생활

민주화의 빛?


 

2

박정희·전두환의 군사독재는

김영삼을 결연한 민주화 투사로 단련

와이에이치(YH)무역 사건

원내 철야농성을 진두지휘하고 진상 규명 백서를 발간

법원은 김영삼 신민당 총재직 정지 가처분 결정

미국 정부에 박정희 정권 지원 중단 요구

뉴욕타임스 인터뷰


결국

의원직 박탈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부산·경남 지역 여론 악화

부마사태를 자아내고

10·26

박정희 축출의 계기


 

3

1983년 광주민주화운동 3주기

민주화 요구 5개항 성명 발표

상도동 자택의 23일

무기한 단식

민주화의 빛?


 

4

얄궂은 만남의 DJ

1970년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

이철승과 손잡은 DJ의 역전승

결과에 승복한 YS

동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

의리의 사나이?


 

 

박정희 치하의 YS와 DJ는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동반자

둘은 너무나 달랐으나 서로를 이해

전두환 치하에선 한 몸

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의 공동의장

85년엔 신민당을 함께 창당해 공동의장

87년 6월 항쟁 승리 

그러나 둘은 달랐다


87년 대선 단일화 실패

국민을 울리고 만다

그리고

지금껏

국민은 뭉칠 수 없다

천년의 한(恨)?


 

5

1990년 1월22일

노태우 대통령,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가

3당 합당 발표

김영삼 변절

영호남의 두 동강

두 겹 천년의 한?


 

6

1993년

어린 김영삼의 꿈을 이뤄

문민정부 탄생

개혁의 시작


 

대통령과 그 가족의 재산공개와 금융실명제

권위주의 잔재 청산으로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 개방

검은돈이 오가던 대통령 안가 철거

국가안전기획부 기능 축소

5·16과 12·12는 ‘쿠데타’

4·19, 5·18, 6·10항쟁은 재조명


 

김진영(육사 17기)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육사 19기) 기무사령관 경질로

하나회 몸통에 상처와 일부 숙청

박정희가 키운 하나회

전두환 노태우가 수령

YS는 그 수령들을 치지 않았다

의리의 사나이?


아니면

수령들에 의해 대통령이 돼서?

결국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YS의 말은 거짓?


 

7

국민의 여론에 밀려

국회가

95년 12월

군사반란에 대한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는 ‘5·18 특별법’ 제정

대법원이 1997년 4월 전·노 두 전직 대통령에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 선고


하지만

YS는

퇴임 두 달여 앞선 97년 12월22일 전·노 두 사람을 특별사면 및 복권

국민을 또 울리고 만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했는가?

자신의 영달만 위했는가?

검은 그림자


8

문민정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1996년 12월)!

급속한 시장개방과 자본 유출입이 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초래한 빌미

1997년 1월 재계 14위 한보그룹의 한보철강 부도

대기업 연쇄 부도 사태

삼미그룹과 기아자동차가 차례로 도산

1997년 한 해 동안 부도를 낸 대기업의 금융권 여신만 30조원

외환보유액 바닥

1997년 11월22일 YS는 IMF에 구제금융 신청

대국민 사과 담화문

그날과 겹친 그의 서거 일


 

9

1997년 차남 현철의 인사·공천·이권 개입 등 국정 농단 의혹

한보그룹 편법대출 의혹 등과 관련해 뒷돈을 받은 ‘상도동 집사’ 홍인길

청와대 총무수석은

“나는 바람에 날리는 깃털에 불과하다”고 항변

‘소통령’으로 불리던 아들 현철의 구속


YS는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 여기고 있다”며 대국민사과

그해 국회 대정부질의

“칼국수 잔치는 끝났다”

YS가 즐긴

칼국수는

결코

희지 않았다



 

*

대통령 취임 당시 83%의 지지율은 6%로 하락하고 있었다.

의리의 사나이가 만든 것?

아니면 어린 나이 꿈에서만

헤매고 있었을까?

영웅이 될 소지는 갖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역사는 결코 잊지 않을 것?


 

이렇든 저렇든

부디 소천(召天)하소서!



1996년 8월 26일 수의를 입고 선고 공판을 기다리는 두 전직 대통령, 전두환과 노태우. 연합뉴스

 


참고가 된 원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62408&PAGE_CD=N0004&CMPT_CD=E0018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18547.html?_ns=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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