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修 身)

캣맘 사건과 부모 책무와 현실

삼 보 2015. 10. 17. 04:04

     지금 우리 중 일부는 조선시대의 양반들을 중심으로 한 유교사상 잔재(殘在)가 있다고 하여 공자사상(孔子思想)을 거역하는 무리가 있는 것도 본다. 그러나 조선시대는 우리에게 충효사상을 고취시키게 했음은 물론 형제와 친구 그리고 이웃과 화합하는 사회를 가르쳤다. 특히 부모를 기억하기 위해 제사방식이 그대로 이어지게 했기 때문에 우리는 해마다 찾아오는 조상의 기일을 기억하며 정성스럽게 제물을 바치고, 고유의 명절을 즐겁게 보낸다고 본다. 부모와 조상을 기억한다는 것은 나의 존재를 확실하게 인정하기 위한 수단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로 지금까지 가정사라고 할 수 있는 족보를 중하게 여기는 가정도 있어, 해마다 성균관 대학교 산하 한국족보자료시스템을 찾는 이들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족보까지 미화한다는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가 SBS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자신의 존재를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족보조작까지 등장한다는 현실을 표현한 것 아닌가? 인간이 배가 부르게 되면 명예를 높이려고 하면서 먼저 조상들의 위치까지 높여야 자신이 세상에서 돋보인다는 인간의 욕심에서 발상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사실을 사실로 기록하려는 청렴한 이들도 없지 않다는 것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受信齋家治國平天下)’라는 문구가 적힌 족자나 액자들이 가정 한 가운데 위치한 집을 찾아볼 때도 없지 않다. 나를 먼저 수양해야 가정은 물론 나라와 전 세상이 평화로워진다는 근본도 모두 공자(孔子)를 찬양하는 결론이다. 아무리 스스로를 악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우리의 이념 속에는 공자의 사상의 한 단면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만큼 유학(儒學)은 우리 내면에 잠재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자들의 이념이 갈라지면서 지금은 그 유학도 정통성을 잃어가는 것 같아 슬프다. 하지만 최소한 나 자신과 나를 중심으로 하는 가정은 지킬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나 자신도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회로 변하고 있어 ‘묻지마 폭행’이 도시 한복판에서 번번이 일어나고 있는데 폭행자를 찾지도 못하는 사례도 일어나고 있다. ‘묻지마 범죄’는 물론 ‘묻지마 살인’까지 성행하는 사회에서 하늘에서 날아온 벽돌에 맞아 숨지는 사고까지 일어나는 이 사회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남의 일이라고 가볍게 돌리고 말 일인가? ‘묻지마 범죄’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회의 잔유물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어진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사회로 변하고 있음을 본다. 지난 8일 오후 박모씨(55세)와 이웃집 박모 씨(29세) 두 여성이 용인의 한 아파트에서 길고양이 집을 만들어주다 하늘에서 떨어진 벽돌에 맞아 55세 여인이 숨지고, 29세 여인도 부상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쉽게 말해 날벼락을 맞은 것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캣맘(길고양이 보호자)에 대한 혐오증이 범죄와 관련 있을 거라는 예측들을 하고 수사에 임했으나 16일 밝혀진 것은 어이없게도 만 10세도 안 된 초등학교 학생이라는 뉴스다.

   18층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서 낙하시험을 했다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이다. 아직까지 밝혀진 것은 없지만 의도적인 것은 아니라는 보도이다. 설령 의도적이라고 해도 법에 저촉될 나이 만14세가 안 된 상황이니 법 밖이라고 한다.


   조사내용 중 세계일보 보도내용이다.


 

9일간의 수사에도 이렇다할 단서가 드러나지 않자 같은 동 다른 라인 CCTV 영상도 분석해 조사하던 중 이 아파트에 사는 A(9)군이 사건 당일 오후 4시쯤 3∼4호 라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친구 2명과 함께 옥상으로 올라간 사실을 확인했다. 사건 직후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사실도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조사를 벌이던 경찰은 A군으로부터 자백을 받아냈다.


 

경찰은 A군이 친구들과 학교에서 배운 물체 낙하실험을 해보기 위해 ‘옥상에서 물체를 던지면 몇 초만에 떨어질까’를 놓고 놀이를 하던 중 옥상에 쌓여 있던 벽돌 하나를 아래로 던졌다가 사고를 낸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아파트 옥상에서는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종류의 벽돌도 발견됐다.

 

범행 직전 이들은 3∼4호 라인 옥상에서도 돌멩이와 나뭇가지 등을 아래로 던져본 뒤 5∼6호 라인 옥상으로 건너가 벽돌을 던진 것으로 드러났다. A군과 친구들은 벽돌을 던진 뒤 아래에서 사람이 맞았다는 것을 뒤늦게 인식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벽돌은 A군이 투척한 사실을 확인했으나 함께 있던 친구 2명 중 누군가가 벽돌 투척을 시켰을 가능성도 있어 이들 2명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현재 경찰은 A군과 함께 있던 2명 가운데 1명(11)은 특정해 조사했으나 나머지 1명(9세 추정)은 A군 등도 이름만 아는 사이여서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아직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일행 1명을 찾는 한편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 중이다.

 

경찰은 A군의 진술과 정황 등을 감안할 때 A군이 ‘누군가 벽돌에 맞아 죽어도 좋다’는 식의 미필적 고의로 벽돌을 던졌을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범죄의 의사가 있었다 하더라도 A군은 14세 미만의 형사 미성년자여서 형사 입건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경찰은 전했다.(세계일보;2015.10.16.)


 

    부모는 아이를 돌봐야 할 책무가 있다. 미국의 경우 12세 이하인 경우는 등하교시 부모가 학교까지 바래다주며 원칙적으로 선생과 인수인계를 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은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것으로 임무를 다하고 있는 것 같다.

   유대인은 아이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하지도 않지만 아이에 대한 사랑은 물론 지켜야할 책임에 아주 충실이 한다. 하늘이 준 귀한 보배같이 다룬다. 최소한 성인이 될 때까지 말이다. 저들은 아이들을 하늘이 준 선물로 생각하며 보호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절대적으로 소유하려고 하지 않고 보호하는 것으로 알고 산다고 한다. 고로 아이가 탄생하면 먼저 100만 달러짜리 보험부터 든다고 한다. 그리고 부부가 동시 퇴근해서 아이를 돌보는데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그 아이를 돌보아주는 것을 의무로 하며 산다고 한다. 아내가 주방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있을 때 아버지는 아이와 함께 숙제는 물론 아이의 일거수일투족까지 돌봐주는 것이 부모의 일이다. 아이로부터 눈을 떼지 않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라고 한다.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얼마나 될까? 국가는 14세 이하인 아이들에 대해 헌법으로 정해야 할 때가 지났는데 아직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우리의 고유사상도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의 책임과 의무로 알고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변해가고 있음을 생각지 않은가? 부모의 책임과 의무가 그저 끝이 없는 것으로만 알고 있지, 성인이 되면 날개를 펼 수 있게 조치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실정이다. 최소한 만14세 이하의 아이들을 부모가 법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 법은 안 지키는 사람에게 써먹는 것이다. 잘 지키는 사람에게는 법이 필요 없다. 아이를 온전한 교육을 시킬 수 없는 부모라면 국가의 지시와 명령에 복종하게 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은 학교에서 도덕적 교육을 내던지게 만든 지 오래다. 말로만 인격을 세우고 있다. 선생의 인품은 날로 추락하고 있다. 가정에서도 부모와 같이 식사를 하며 밥상머리 교육을 하는 가정은 이제 50%대로 떨어진 상태다.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한지 오래다. 부모의 말을 ‘잔소리’라고 폄하하고 있는 어린이로 변한 가정이 태반이라고 한다. 부모는 책임감을 잊고 살며, 아이들은 부모를 떠나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을 언제 다 가르쳤는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부모와 선생을 ‘꼰대’라며 탈출하려고만 하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국가 정치인들을 원망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인가! 세상이 제멋대로 돌아가니 국법이라도 튼튼해야 할 것 아닌가? 朴은 물론이거니와 교육부와 새누리당이 아이들 역사교과서를 제 비위에 맞게 고치려고 하는 세상이다.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려고 할 것인가? 슬픈 세상에 사는 아이들이다. 하지만 잘 못 된 정부를 잘 못됐다고 인정하지 않고 빗나가는 가정은 사회에서 고쳐줘야 한다. 국법을 고쳐야 한다.{이 글을 만들고 있는 지금 참으로 괴롭습니다}


 

    유교사상을 나쁘게만 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양반사회가 아니다. 그러나 ‘돈이 양반이다.’고 부자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무리들이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금전 앞에서도 당당한 부모가 된다면 아이들이 부모를 잘 따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아이들의 피는 검붉지 않고 맑아 정의에 강하다는 것을 알면 말이다. 부모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아닌지 요즘 아이들이 더 잘 안다면 틀리다고 할 것인가? 그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다면 부모자격이 없다고 본다. 고로 사회가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A군의 잘 못은 그 부모에게 연결돼야 한다고 본다. 이를 발판으로 국회는 소년법을 고쳐야 할 것으로 본다. 아이를 잘 못 가르쳤다면 부모는 사회적으로 망신을 당해도 마땅하다고 해야 아이들 돌봄에 최선을 다할 것 아닌가! 이런 것이 인권에 침해가 된다고 할 수 있는가? 부모는 아이들을 소유하는 이들이 돼선 안 되고, 보호하며 가르쳐 인성을 만들어주는 대리인이 돼야 한다고 본다.



  참고가된 원문

http://news.naver.com/main/read.nhn?oid=056&sid1=102&aid=0010235557&mid=shm&mode=LSD&nh=20151016214422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10/16/20151016003477.html

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503250100308230020180&servicedate=2015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