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修 身)

교육부 나향욱, "개와 돼지 국민"

삼 보 2016. 7. 10. 04:13

     국가가 국가로써의 호흡을 원만히 못하고 민주주의에 금을 내고 있을 때 국가 수장을 온전하게 뽑아 놓지 못한 국민을 원망 할 때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국민을 개와 돼지로까지 생각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나도 그 국민의 한 세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을 개·돼지로 인정한 교육부 고위공무원이 있다고 한다. 그것도 교육을 관장하는 교육부에서! 그 같은 생각을 하는 공직자들과 일부 정치인들은 차치하고, 국민은 국가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나 이해하는 것인가?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개와 돼지들의 나라라는 말 아닌가? 그(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47))가 그렇게 말했다.


 

    7일 저녁 경향신문 기자 및 경향신문 정책사회부장과 교육부 대변인, 대외협력실 과장 등과 서울 종로의 한 식당에서 저녁식사 도중 나향욱은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며,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고 말하면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에 대해 가슴 아파 하는 것은 위선이다.”라고 했단다. 저녁식사를 어떻게 하면 술에 취할 정도로 한다는 말인가? 말이 안 된다. 교육부는 해명 같지도 않은 변명으로 ‘취중’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고위공직자(국장급;2~3급 정도)가 기자(경향신문)들과 같이 식사를 하면서, 아무리 말실수를 한 것이라고 해도, 국민을 ‘개와 돼지’로 언급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99%p의 민중은 개·돼지로 보고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백분율(百分率; Percentage)까지 써가면서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11조는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나향욱은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를 공고히 해야 한다.’라는 의지로 국가 헌법을 무시하고 있다. 한 마디로 99명이 낸 세금으로 먹고 살면서 그 99명의 노고를 치하하기는커녕 개와 돼지들과 같이 동급이 될 수 없다는 뜻을 발표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문교부 정책을 기획하는 인사의 사고(思考)인 것이다. 또한 그 한 사람의 뜻으로 돌리기에도 마음이 허락지 않는다. 이날 그 식사자리에는 교육부 대변인, 대외협력실 과장과 함께 경향신문 정책사회부장, 교육부 출입기자와 함께한 상견례 식사자리였다는 점에서이다. 교육부기자만 동석한 것이 아니라, 신문사 정책사회부장이 같이하고 교육부 대변인과 대외협력실 과장이 있는 자리에서 언급한 말이니 그 말의 무게가 어떻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은가?


 

    많은 이들이 지금 대학교 입시과정에서도 특권층 자제들에 대해 지극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교육부 상황을 비판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부는 수시입학과 정시(수학능력시험)입학으로 나눠 놓고, 정시에 자신이 없는 특히, 특수층 자제들의 입시를 돕고 있는 교육부의 관행이 도마에 올라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미룬다. 수시입학은 특기시험과 함께 사회봉사점수제를 미국으로부터 들여와 가산시키는 방식을 쓰고 있다. 물론 미국은 그 사회봉사점수를 중요시하고 있으나 부정을 위한 방편으로 활용하지는 않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한국 교육부와 각 대학은 편견이 동원되고 있다는 의혹을 품게 하는 것으로 본다.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신의를 저버리게 만들고 있는 교육부제도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까지 도래되고 있음을 보고 있잖은가? 특권층이 없다고 할 수 없는 한국교육사회에 나향욱이 지금 불을 붙이고 있다. 그의 두뇌에서 나오는 기획은 한국 교육의 근본을 뒤바꾸게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미룬다. 그가 금년 3월부터 그 자리를 지켰다고 하지만, 그 이전부터 그는 청와대는 물론, 교육부 속에서도 업무를 보고 있었으니 그 책임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 자신의 한 개인에 의해서만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국의 교육계는 아주 오래 전부터 상위권만을 위한 정책을 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곪은 교육부의 상처가 지금 터진 것이다. 세상은 머리만 좋아야 잘살 수 있는 것인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그 해답을 엉뚱하게 가르치는 것으로 안다. 인간의 명석한 두뇌만이 세상을 휘어잡을 수 있다는 방식만을 가르치는 중이다. 어떻게 하든 최고만 되는 것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기는 것이 곧 법이라고 말이다. 이게 한국 교육부의 지향점 아닌가? 그러니 머리를 싸매고 1등에 눈이 먼 세상으로 가고 있잖은가! 결국 사회를 부패시키는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도덕불감증(moral hazard) 나라가 되고, 안전불감증에 걸려 무감증의 나라가 돼가고 있는 중이다.


 

    사회가 잘 돌아가려면 정치꾼(선거에서 승리자이나 국민 지도능력 없는 사람)을 뽑을 것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 살 수 있는 정치가를 뽑아야 하는 데 국민들은 잘 알려진 얼굴과 인물에만 관심이 많다. 거짓말을 잘하고 ‘척하는 자’에게만 관심을 둔다. 왜냐면 그 사람 됨됨이를 파헤치려는 노력이 하기 싫어서다. 평소에는 자신의 삶에 대해 불평을 하면서, 자신의 대리인을 뽑을 때는 무감증이 된다. 그리고 자신에게 특혜나 줄 사람이나 없나 하며 눈을 돌리기 때문에 사회가 병이 든다.


 

    공자(孔子)께서도 “참 사람은 덕을 생각하지만, 소인은 땅(살 집)에 관심을 두고, 참 사람은 형벌(법)을 생각하지만, 소인은 은혜받기를 생각한다[君子懷德 小人懷土 君子懷刑 小人懷惠].”라는 말씀을 했다.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머리가 명석한 것은 노력만으로 되지는 않는다. 천부적인 재능이 겸비해야 한다. 하지만 도덕적인 것은 배우고 행동으로 익히면 가능하다고 본다. 사회에서 탁월한 두뇌로 출세를 했다고 할 수 있는 나향욱의 삶이 얼마나 행복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고 있던 도덕적 해이함은 한 순간 지옥으로 떨어지게 만들고 있는 것을 본다. 국가가 얼마나 그의 두뇌를 감싸 줄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국가가 아무리 감싸준다고 해보았자, 그의 영혼은 이미 크게 병든 상태라는 것이 판명됐다. 평소 그는 몸을 올바른 도리에서 가다듬으며 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도 우수한 머리만이 세상을 거머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미지=경향신문 보도 갈무리)


  참고가 된 원문

http://www.nocutnews.co.kr/news/4620185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709_0014208514&cID=10301&pID=10300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27068&cid=42140&categoryId=42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