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고 또 적다(積多)

홍콩이 민주를 다시 찾을 수 있다면?

삼 보 2014. 10. 2. 11:45
  1840년 아편전쟁에서 중국이 영국에 패하고 떼준 땅에서 민주주의가 성행하고 있었다. 중국 본토는 공산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그 가운데서 영국의 지배가 그 주민들에게 있어서는 본토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그러나 세상은 제국주의자들의 횡포를 더 이상 들어줄 것이 없어지자 영국도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중국으로부터 얻어낸 그 본토까지 영국령화 시키려던 단꿈은 다 어디에다 버리고 결국 홍콩까지 중화인민공화국에 넘겨줘야 했다.

  홍콩이 영국령에서 주권이 중국으로 편입된 1997년 7월1일 이후 홍콩의 명칭도 바뀐다.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로 불러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 긴 이름을 언제 다 부르겠는가? 세상은 영국령이던 그 시절에 쉽게 부르던 이름 그대로 부르고 있다. 지역적으로 중국 본토 남녘에 나타나 있는 홍콩 섬과 주롱반도 그리고 신게 등 235 도서의 총 넓이는 1,104.3평방km로 서울 넓이의 1.8배 크기라 한다. 그 안에 대략 700만 명이 227만 9천 가구 정도가 살고 있다. 언어는 중국 광동어를 사용하며 수 많은 이들이 자신의 업을 위해 영어를 구사한다. 정치 제도는 '일국양제(one country two systems=자본주의체제와 사회주의 체제가 공존하며, 경제적 독립을 보장하는 제도로서 1998년 덩샤오핑이 개혁과 개방논리를 제시하며 유래가 된 홍콩만의 제도)'를 실시하고 있으며, 행정수반은 5년의 임기를 한 번 더 연임할 수 있다. 

이번 사태가 일어난 것도 이 행정수반의 2017년에 있을 직접선거 방식에서 불거졌다.  입후보자를 친 중국 인사로 제한하기로 했다. 덩샤오핑이 깊은 고뇌 끝에 일궈낸 '일국양제'가 하루 아침에 께질 것을 내다본 홍콩 주민들의 반발이 시작된 것이다. 홍콩은 1989년 베이징의 천안문  사태 당시 홍콩 700만 국민 중 100만 명 이상이 궐기한 사실이 있다. 일요일마다 빅토리아 공원에 모여 중국대륙의민주화를 기원하며 지원했으나 그해 6월4일 새벽 인민해방군이 천안문에 탱크로 무장한 채 학살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그 진압으로 인해  세계사는 천안문 사태를 만행으로 몰아놓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중국의 민주화는 꺾이고 말았다.

  지금 홍콩의 10만 군중이 휏불을 밝히며 중국 대륙까지 번질 수 있는 불씨를 홍콩에서 서서히 지피고 있음을 보고 있다. 사람이 배가 부르면 두려움도 없어지는 법, 지금 홍콩의 국내총생산(GDP)은 2008년 기준으로 2,155억 달러에 달하며, 1인당 국민소득이 39,892달러(2008년 기준) 으로 나와 있다. 저들이 요구하는 것은 홍콩 속의 인물이 행정수반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과거 영국이보여 줬던 민주주의로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정수반 선거에서 입후보자를 친 중국계가 아닌 홍콩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인물까지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입법부 의원이 60석인데 30석은 직접선거를 통해서 30석을 선출하고, 간접선거를 통해 30석이 선출되는데 그들은 모두 친 중국계가 장악하고 있다. 임기는 4년으로 돼있다. 국회까지 중국계가 장악하고 있는데 행정수반도 중국계가 장악해야 한다니 국민들이 좌중할 리 없을 것은 당연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법부도 지방법원, 고등법원 그리고 대법원까지 고루 가추고 있어 항소와 항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로 되는 것 아닌가? 홍콩이 1997년 7월1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 아니면 포기해야 하는가를 가늠하기 위해 지금 10만 여명의 군중은 우산을 들고 체루액을 막으면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한다.

  홍콩의 민주화가 성립돼가는 것을 본다면 우리도 새로운 국면으로 갈 준비를 해야 할 것이며 중국을 비롯해서 북한까지 그 여파가 침투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은근히 홍콩 국민의 사투에 힘을 실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민주주의 생활 속에서 살고 있던  이들이 하루 아침에 공산체제적인 사회주의가 물들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