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전 세계에서 키프로스에 이어 자살 증가율 세계 2위라는 통계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4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유럽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전그 후유증으로 세계에서 매년 그동안 참아왔던 여성이ㅜ 40초에 한 명꼴인 80만명 이상이 자살하고, 이중 약 75%가 중간이나 저소득 국가에서 발생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WHO 172개 회원국 중 인구 30만명 이상인 국가의 지난 2000년과 2012년의 자살 사망률을 비교·분석한 이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지난 2000년 인구 10만명당 자살자가 13.8명이었으나 2012년에는 28.9명으로 늘어나 두 기간을 비교할 때 자살 사망률이 109.4%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지난 2000년 자살 사망률이 10만명당 1.3명에서 2012년에는 4.7명으로 늘어나 269.8%의 증가세를 보인 키프로스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것이다. 그러나 키프로스의 10만명당 자살자는 두 해 모두 5명 이하여서 한국의 자살 사망률 증가가 실제로는 더 큰 문제인 것으로 지적됐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서도 한국의 자살 사망률이 압도적으로 1위"라면서 "청소년 자살률이 10만명당 29.1명이고, 65세 이상 노년층의 자살률은 10만명에 80명에 달할 정도로 심각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북한은 2000년 자살 사망률이 10만명당 47.3명에서 2012년에는 38.5명으로 줄어 두 기간을 비교할 때 자살 사망률이 18.6% 감소했다. (연합뉴스;2014.9.4.)
우리나라 자살율은 언급된 것과 같이 OECD 국가 중 세계 1위로 나와 있다.
청소년과 65세 이상 노년 층이 각별히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 대책이 시급하다는 것은 누구나 이해하겠지만 억제하는 방법도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 누구든 생명의 존귀함을 왜 모르겠는가?
청소년 자살율은 잘 알다시피 어른들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날이면 이어지는 입시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청소년의 학교 생활을 어른들은 이해할 수 있는가? 자신들도 과거에 그렇게 공부를 했다고 자싱에게까지 그대로 대물림하는 것 같은 우리들의 입시지옥을 어떻게 해결 할 수 있겠는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9월 4일 서울의 8개 자사고에 대해 패지를 해야 한다고 조치했다. 물론 교육부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할 일이지만,
그 원인은 자사고의 본 취지에서 벗어나 입시위주로 학교 교육이 퇴색하는 것을 우선으로 했다.그로인해 학부모들과 학교가 온통 난라법석이다. 자신의 아이들이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게 된다는 것이 더 마음이 아플지 모른다. 부모의 마음은 자식들이 좋은 밥에 좋은 옷 입고 좋은 학교에 다니면서 우수생이 되는 것을 더 기대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도 숨을 돌릴 틈을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어른들은 대학에 가서 하라며 사춘기 시절 그 순정을 갈기갈기 찢기면서 오직 공부라는 단어에 억매이게 하지 않는가. 그렇게 힘든 생활을 하다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이라도 당하면서 왕따라는 신세로 변하게 되면 살 맛 날 것인가? 어른들의 횡포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즈희들 다 잘 되라고 한 것이라고?
그러나 어린 나이에는 그걸 판단할 수 없으니 어른들이 감싸야 하지 않겠는가?
노인 자살의 원인에서 볼 때 OECD 국가 중 이혼율이 세계 2위라는 것이 더 문제가 되고 있는지 모른다.
이혼은 남은 여생을 가족들과 오손도손 살 수 없다는 벽에 부딪치면서 아까운 목숨을 내던진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적 난관에 부딪는 이들의 최후 선택을 자살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결혼하여 아이들 낳고 평범하게 살아온 인생이라면 부부 간 금실에 큰 장애가 없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65세가 넘는 이들에게 그런 남성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었겠는가?. 아마도 이 세대 남성들도 전 세대와 거의 다름 없이 남존여비 사상 속에서 콧대를 꽤나 높이고 살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한다. 여권 신장이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 것이 얼마나 됐나? 아직도 그 말이 앞에 놓이고 있다는 것만 봐도 우리나라에는 여성 비하하던 그 시절을 잊지 못 할 것으로 본다.
심지어 아들은 학교를 꼭 보내야 한다며 빚을 내서라도 학교에 등록을 했지만, 당시 여자 아이들은 초등학교조차 다니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1948년 재헌 헌법에 교육의 의무가 초등학교로 나오지만 생활고에 부딪쳐 아이를 초등학교조차 못 보낸 가정이 적잖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 때 한 집안에 형제자매가 여럿이었다면 당연히 여자 아이는 남자 형제에게 학교를 양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 과거에는 여성을 비하한 사실이 확실했었다.
그로인해 남성은 우선권과 함께 우월성을 드러내며 여성을 비하하며 심지어 폭력까지 휘드르던 못된 버릇이 만연했으니, 그 후유증이 지금 이혼율로 사회에 던져주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 후유증이 노골화 되면서 여성들은 과감해진다. 남성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려는 욕구를 체우고자 한다. 결국 자식들까지 외면하고, 해방이 되고자 하는 지친 모습을 보이며 과거를 잊으려고 하게 된다. 어떤 남성은 그러한 여성을 백 번 천 번 이해한다며 그녀를 쉽게 놓아주고 만다.
그러나 그 여인을 떠나보내고 나서 여러 가지 점들이 아쉬움이 남는다고 하며 그녀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숫한 기간 동안 그녀를 부려먹은 것에 도리어 미안함에 빠지는 이도 있다고 한다. 결코 사람은 그 옆의 사람이 없어지고 난 이후에서야 그가 얼마나 소중했던 것을 느끼게 되는 동물인 것이다.
한편 그 여인이 떠난 그 자리를 연연해하며, 쓸쓸함과 고독 그리고 좌절을 맛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매사에 의욕을 잃고 과거 그 여인으로부터 해방을 못 하는 즉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는 노예들이 있으니 어찌해야 할 것인가? 하루 하루 생활이 지옥과도 같고 암흑 그 자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뭇 남성들이 있으니 이 일이 사회를 혼돈의 도가니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 아닌가!
그 여인이 그렇게 좋았었다면 처음부터 잘 하든지, 옆에 있을 때 잘 하시지 않고....
어떤이는 술과 함께 다시 결혼하고, 어떤이는 고독과 함께 동거를 하며, 어떤이는 좌절과 함께 하다가 스스로의 목숨까지 아깝지 않다고 내던지고 만다. 어리석은 이 바로 인간이라는 말이 왜 나왔을지 알만 한 것 같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한국은 자살율 2위로 발표를 했지만 잘 따지고 보면 아직도 1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키프로스는 2년 연속 같은 숫자로 이어지고 있었지만 우리는 12년 간 109.4%로 올라왔으니 말이다.
세계 많은 나라들이 여성에 대해 관대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 중 우리로 그랬다. 그 여파가 얼마나 긴 시간이 요망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본 뿌리를 캐서 송두리째 갈아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먼 훗날 여성과 남성의 성이 모호해지는 그 날이 되지 않고서는 여성비하의 성격은 죽지 못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주려는 그 남성이 되지 못하고 여성에게 사랑을 받아야만 되는 것으로 알고 살아왔던 그 과거사들이 다 지워지지 못하는 그날까지 남성은 여성으로부터 더 학대를 받게 되지 않을까?
여성을 아끼고 사랑으로 가까이 가려하지 못하게 하는 그 여성의 정신이 없어지지 못하는 시어니의 기백이 살아 숨쉬는 한 남녀의 미래도 화창한 날씨는 아닐 것이다. 그 어떤 한편이 헌신하고 희생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남녀 모두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게 해두고 싶다. 서로를 아주 깊이 사랑하는 남녀의 그 세월이 올 때 우리나라도 자살율 최고에서 떨어지지 않을까?
삼보
세계보건기구(WHO)는 4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유럽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전그 후유증으로 세계에서 매년 그동안 참아왔던 여성이ㅜ 40초에 한 명꼴인 80만명 이상이 자살하고, 이중 약 75%가 중간이나 저소득 국가에서 발생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WHO 172개 회원국 중 인구 30만명 이상인 국가의 지난 2000년과 2012년의 자살 사망률을 비교·분석한 이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지난 2000년 인구 10만명당 자살자가 13.8명이었으나 2012년에는 28.9명으로 늘어나 두 기간을 비교할 때 자살 사망률이 109.4%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지난 2000년 자살 사망률이 10만명당 1.3명에서 2012년에는 4.7명으로 늘어나 269.8%의 증가세를 보인 키프로스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것이다. 그러나 키프로스의 10만명당 자살자는 두 해 모두 5명 이하여서 한국의 자살 사망률 증가가 실제로는 더 큰 문제인 것으로 지적됐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서도 한국의 자살 사망률이 압도적으로 1위"라면서 "청소년 자살률이 10만명당 29.1명이고, 65세 이상 노년층의 자살률은 10만명에 80명에 달할 정도로 심각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북한은 2000년 자살 사망률이 10만명당 47.3명에서 2012년에는 38.5명으로 줄어 두 기간을 비교할 때 자살 사망률이 18.6% 감소했다. (연합뉴스;2014.9.4.)
우리나라 자살율은 언급된 것과 같이 OECD 국가 중 세계 1위로 나와 있다.
청소년과 65세 이상 노년 층이 각별히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 대책이 시급하다는 것은 누구나 이해하겠지만 억제하는 방법도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 누구든 생명의 존귀함을 왜 모르겠는가?
청소년 자살율은 잘 알다시피 어른들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날이면 이어지는 입시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청소년의 학교 생활을 어른들은 이해할 수 있는가? 자신들도 과거에 그렇게 공부를 했다고 자싱에게까지 그대로 대물림하는 것 같은 우리들의 입시지옥을 어떻게 해결 할 수 있겠는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9월 4일 서울의 8개 자사고에 대해 패지를 해야 한다고 조치했다. 물론 교육부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할 일이지만,
그 원인은 자사고의 본 취지에서 벗어나 입시위주로 학교 교육이 퇴색하는 것을 우선으로 했다.그로인해 학부모들과 학교가 온통 난라법석이다. 자신의 아이들이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게 된다는 것이 더 마음이 아플지 모른다. 부모의 마음은 자식들이 좋은 밥에 좋은 옷 입고 좋은 학교에 다니면서 우수생이 되는 것을 더 기대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도 숨을 돌릴 틈을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어른들은 대학에 가서 하라며 사춘기 시절 그 순정을 갈기갈기 찢기면서 오직 공부라는 단어에 억매이게 하지 않는가. 그렇게 힘든 생활을 하다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이라도 당하면서 왕따라는 신세로 변하게 되면 살 맛 날 것인가? 어른들의 횡포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즈희들 다 잘 되라고 한 것이라고?
그러나 어린 나이에는 그걸 판단할 수 없으니 어른들이 감싸야 하지 않겠는가?
노인 자살의 원인에서 볼 때 OECD 국가 중 이혼율이 세계 2위라는 것이 더 문제가 되고 있는지 모른다.
이혼은 남은 여생을 가족들과 오손도손 살 수 없다는 벽에 부딪치면서 아까운 목숨을 내던진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적 난관에 부딪는 이들의 최후 선택을 자살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결혼하여 아이들 낳고 평범하게 살아온 인생이라면 부부 간 금실에 큰 장애가 없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65세가 넘는 이들에게 그런 남성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었겠는가?. 아마도 이 세대 남성들도 전 세대와 거의 다름 없이 남존여비 사상 속에서 콧대를 꽤나 높이고 살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한다. 여권 신장이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 것이 얼마나 됐나? 아직도 그 말이 앞에 놓이고 있다는 것만 봐도 우리나라에는 여성 비하하던 그 시절을 잊지 못 할 것으로 본다.
심지어 아들은 학교를 꼭 보내야 한다며 빚을 내서라도 학교에 등록을 했지만, 당시 여자 아이들은 초등학교조차 다니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1948년 재헌 헌법에 교육의 의무가 초등학교로 나오지만 생활고에 부딪쳐 아이를 초등학교조차 못 보낸 가정이 적잖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 때 한 집안에 형제자매가 여럿이었다면 당연히 여자 아이는 남자 형제에게 학교를 양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 과거에는 여성을 비하한 사실이 확실했었다.
그로인해 남성은 우선권과 함께 우월성을 드러내며 여성을 비하하며 심지어 폭력까지 휘드르던 못된 버릇이 만연했으니, 그 후유증이 지금 이혼율로 사회에 던져주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 후유증이 노골화 되면서 여성들은 과감해진다. 남성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려는 욕구를 체우고자 한다. 결국 자식들까지 외면하고, 해방이 되고자 하는 지친 모습을 보이며 과거를 잊으려고 하게 된다. 어떤 남성은 그러한 여성을 백 번 천 번 이해한다며 그녀를 쉽게 놓아주고 만다.
그러나 그 여인을 떠나보내고 나서 여러 가지 점들이 아쉬움이 남는다고 하며 그녀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숫한 기간 동안 그녀를 부려먹은 것에 도리어 미안함에 빠지는 이도 있다고 한다. 결코 사람은 그 옆의 사람이 없어지고 난 이후에서야 그가 얼마나 소중했던 것을 느끼게 되는 동물인 것이다.
한편 그 여인이 떠난 그 자리를 연연해하며, 쓸쓸함과 고독 그리고 좌절을 맛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매사에 의욕을 잃고 과거 그 여인으로부터 해방을 못 하는 즉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는 노예들이 있으니 어찌해야 할 것인가? 하루 하루 생활이 지옥과도 같고 암흑 그 자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뭇 남성들이 있으니 이 일이 사회를 혼돈의 도가니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 아닌가!
그 여인이 그렇게 좋았었다면 처음부터 잘 하든지, 옆에 있을 때 잘 하시지 않고....
어떤이는 술과 함께 다시 결혼하고, 어떤이는 고독과 함께 동거를 하며, 어떤이는 좌절과 함께 하다가 스스로의 목숨까지 아깝지 않다고 내던지고 만다. 어리석은 이 바로 인간이라는 말이 왜 나왔을지 알만 한 것 같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한국은 자살율 2위로 발표를 했지만 잘 따지고 보면 아직도 1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키프로스는 2년 연속 같은 숫자로 이어지고 있었지만 우리는 12년 간 109.4%로 올라왔으니 말이다.
세계 많은 나라들이 여성에 대해 관대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 중 우리로 그랬다. 그 여파가 얼마나 긴 시간이 요망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본 뿌리를 캐서 송두리째 갈아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먼 훗날 여성과 남성의 성이 모호해지는 그 날이 되지 않고서는 여성비하의 성격은 죽지 못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주려는 그 남성이 되지 못하고 여성에게 사랑을 받아야만 되는 것으로 알고 살아왔던 그 과거사들이 다 지워지지 못하는 그날까지 남성은 여성으로부터 더 학대를 받게 되지 않을까?
여성을 아끼고 사랑으로 가까이 가려하지 못하게 하는 그 여성의 정신이 없어지지 못하는 시어니의 기백이 살아 숨쉬는 한 남녀의 미래도 화창한 날씨는 아닐 것이다. 그 어떤 한편이 헌신하고 희생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남녀 모두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게 해두고 싶다. 서로를 아주 깊이 사랑하는 남녀의 그 세월이 올 때 우리나라도 자살율 최고에서 떨어지지 않을까?
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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