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마음

임병장 현장검증과 동정심

삼 보 2014. 7. 9. 08:10

    몸이 작으면 몸이 큰 사람들과 같이 서기를 싫어한다는 통례가 있다. 아마도 동물의 근성에서 나오는 일종의 자각지심이 아닐까 본다.

   현장검증을 하는 임병장의 사진들은 수사관들에 비해 소년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저런 체격으로 군 생활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먼저다. 남들이 다 하는 의무이니 그도 마땅히 해야 대한민국의 남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행동에서 다른 병사들보다 뒤진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하는 동정심도 없지 않다.

   아직 범행에 대한 확실한 동기가 결론지어지지 않았으니 뭐라고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왜 총을 이용해서 5명의 동료 병사들을 숨지게 했으며, 또 다른 병사들을 다치게 했는지 아쉬운 점이 많다.

지난 6월21일 오후 그 시간(8:15경)에 강원도 고성의 22사단 GOP 총기 난사의 주범인 임병장이 범행을 하기 전 단 몇 번만이라도 큰 숨을 쉬어가며 마음을 돌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도 한다.

   현장검증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이 그의 말처럼 “분노에 휩싸여 있어서...”라는 것을 참을 수 있게만 해줄 수 있었다면, 그 보다 한 걸음 앞서 그렇게 되게 만들지만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 아닌가?

   왜? 인간은 분노해야 하는 것인가? 왜? 분노하게 만드는가?

   신(God)이 인간을 만들 때 아주 잘 움직일 수 있는 동물로 만들었다. 그러니 당연히 동물의 근성이 있다. 그 근성 속에는 질투, 오만, 분노, 협잡 등을 부여하면서 힘을 넣어주었다. 그러나 또 한편 참을 수 있는 기관을 만들어 주셨다.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은가? 왜냐하면 인간보다 더 큰 동물들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위해서다. 그 능력 속에는 세상만물을 다 흡수할 수 있는 힘도 부여하셨다. 그러기에 그 흡수력 속에는 사랑을 주어 신의 영역을 그대로 이어받게 만들었다. 그 사랑이 크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며 상대를 위해 최선을 다하여 보살피게 된다. 그 큰 사랑이 만들어지면 사람들끼리도 그 사랑에 기울게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유명인들 중에는 사랑의 향취가 물씬 풍기고 있지 않은가?

 

 

   내가 남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닌 내가 남의 아픔을 감싸주며 그 아픔을 내 아픔으로 하는 인물이 왜 없겠는가?

   미국 100달러지폐 속의 인물을 보기로 한다.

   사진 밑에 프랭클린(Franklin)이라고만 적혀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17 ~ 1790.4.17)이다.

 

  from WikipediA

 

 

   정규학교를 다닌 것은 8세부터 2년간에 걸친 것을 제외하고 모든 학문을 독학으로 이룬 인물이다.

   그는 평생을 통하여 자유를 사랑하고 과학을 존중하였으며, 정치와 외교에도 관여하고 신문사를 경영한 인물이다.

   그는 교육에도 전념을 다해 필라델피아 아카데미 창설, 도서관 설립, 미국철학협회 창립 등 폭넓은 교육 문화 활동에도 최선을 다했다.

   또한 자연과학에도 관심을 가졌으며, 지진의 원인을 연구해서 발표하는가 하면, 고성능의 ‘프랭클린난로’라든가 피뢰침을 발명하기도 했다. 1752년 연(鳶)을 이용한 실험을 통하여 번개와 전기의 방전은 동일한 것이라는 가설을 증명했고, 전기유기체설(電氣有機體說:electric fluid theory)도 제창했다.

  다음은 인물세계사에서 일부 가져왔다.

42세 때인 1748년에 벤저민 프랭클린은 사실상 사업에서 은퇴했으며, 이후로는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면서 여러 가지 분야의 관심사를 추구했다. 84년에 달하는 그의 인생에서 이 후반기야말로 가장 큰 영광과 명성을 얻은 시기였다. 이 시기에 그가 추구한 관심사로는 우선 과학 연구를 들 수 있는데, 역시나 본인의 성격에 걸맞게 지극히 실용적인 측면에서의 연구였다. 가령 이전의 난로에 비해 열효율을 크게 높인 일명 ‘프랭클린 난로’의 발명이 그러했으며, 번개와 전기의 관계를 탐구한 유명한 실험도 그러했다.

 

 

프랑스의 정치가 튀르고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2대 업적을 다음과 같은 명언으로 요약했다. “그는 하늘에서 번개를 훔쳤고, 군주에게서 권위를 빼앗았다.” 과학과 정치라는 양대 업적뿐만 아니라 워낙 여러 가지 방면에서 시대를 앞서 가고 유행을 선도했으므로,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 “세계 최초,” 또는 “미국(아메리카) 최초”라고 단언할 만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이야말로 토머스 제퍼슨과 함께 미국 역사상 으뜸가는 팔방미인, 또는 르네상스맨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랭클린은 젊어서부터 머리가 좋기로 유명했으며, 말년에 이르기까지 총명함을 잃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노년의 너그럽고 여유로운 외모를 묘사한 초상화로 유명하지만, 젊은 시절에만 해도 그는 종종 남을 비판하고 빈정거린다는 이유로 지적을 당하기도 했다. 프랭클린은 20세 때에 첫 번째 영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앞으로의 삶을 위한 4가지 실천 계획을 세워 철저하게 준수했으며, 이후 인쇄업자로 성공한 다음에는 다시 한 번 자신이 평생지켜야 할 13가지 덕목을 선정해서 역시 철저하게 준수했다.

 

 

절제, 침묵, 질서, 결단, 검약, 근면, 성실, 정의, 온건, 청결, 침착, 순결, 겸손이라는 각각의 덕목에는 “배부르도록 먹지 말라” “쓸데없는 말은 피하라,” “결심한 것은 꼭 이행하라,” “말과 행동이 일치하게 하라” 등의 구체적인 실천사항이 있었고, 이행 여부를 확인하는 체크리스트까지 만들었다. 따라서 프랭클린의 인격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이런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형성되었다고도 할 수 있으며, 그의 계획과 덕목은 오늘날까지도 각종 자기계발 이론의 근간으로 널리 전파되고 응용된다.(인물세계사 ; 박중서 글 중에서)

   인생에 있어 시기를 세분화 한다면 초년기, 청년기, 중년기 그리고 말년기로 나누게 된다. 그 중 군대 생활은 청년기 중 가장 싱그러운 시기로 들어간다. 그 시기에 선임자들로부터 받는 시련은 적지 않은 충격으로 봐야 한다. 그 시련을 잘 받아내면 프랭클린처럼 스스로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아도, 사회에 나오면 인격형성에 큰 수양을 받은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특히 최전방 근무를 한 병사들은 눈빛도 달라지고 인성훈련도 좋아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참아야하는 고통은 물론, 학교생활에서 쌓게 될 교육에 그만큼 지장을 받게 되니 군대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젊은 청년에게 국방의 의무를 짓게 하고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라가 통일이 된다고 해도 지금 상황으로 볼 때 국방의무는 먼 장래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는 눈이 많다.

 

 

   그렇다면 군대생활을 보다 잘 수행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런데 이번 임병장 총기난사사건으로 자식을 군대로 보내야할 부모들의 가슴속에는 더 큰 부담을 안고 있을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아들을 가진 부모들은 국가에 헌신할 생각을 하며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대신 참된 인물이 돼서 군대를 잘 이수 할 수 있게 협조해야 하지 않을까?

   철저한 인성교육은 물론이며 참신한 마음가짐을 갖게 해야 할 것으로 본다.

   군대도 사람들이 사는 집단이니 내가 옆의 전우와 어떻게 친해질 것인가를 생각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말한다. “사랑 받고 싶다면, 사랑해라 그리고 사랑스럽게 행동하라(If you would be loved, love and be lovable).”고 했다.

   먼저 논했듯이 사랑이란 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 사랑이다. 내 동료에게 내 모든 것을 주는 것이 먼저이다. 그게 사람을 포용하는 힘이다. 내 동료의 말이 틀리지만 않는다면 긍정하는 것이 먼저다. 내 의견을 내세우는 것은 최후의 일이다.

   군대 생활은 단체 생활이다. 그 단체에서 섞이지 못한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남자의 세계는 무섭다. 그 무서운 세계에서 잘 섞일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절대적으로 이웃 동료에게 흉을 보거나 업신여기는 일은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웃음이 나와도 참을 줄 아는 사람으로 길러내야 한다. 그리고 진정성을 보이는 참신한 인물이 돼가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스럽게 행동하며 이웃 동료들을 즐겁게 해주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노자(老子)께서도 인간의 도를 기르는 데는 “그 예리함을 꺾고, 그 갈라짐을 해결하고 그 광채를 조화롭게 하며 그 티끌[사람]들과 함께 한다[挫其銳 解其粉 和其光 同其塵].”고 도덕경 제 4장에서 타이르신다.

   예리한 것을 보이려 하지 말고, 사람들을 갈라 논 것을 화해시킬 줄 알며, 남들보다 더 빛나게 하려는 것보다 조화롭게 한다면, 당연히 모든 이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공자(孔子)께서는 제(齊)나라를 부강케 한 현 대부(賢大夫=어진대부) 안평중(晏平仲)을 설명하면서 “안평중은 사람을 잘 사귀었다. 오래 사귀면서도 그 사람을 존경했다[晏平仲 善與人交 久而敬之].”라고 공야장(公冶長) 16편에서 인격적인 사귐을 칭찬하셨다.

   보통 처음 사람을 사귈 때는 어렵게 만난다. 그 처음 만나던 것을 생각하면서 끝까지 유지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인격을 존경한다면 첫 만남과 같이 항상 같은 마음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만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서로가 허물이 없다고 막대하게 된다면 이때부터 금이 갈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문제는 남녀관계도 똑 같다.

   공자께서 “어진 사람을 보면 나도 그 같은 사람이 될 것을 생각하며, 어질지 못한 사람을 만나면 마음속으로 자신을 성찰한다[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고 리인(里仁) 17편에서 말씀하신다.

   나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 성찰이 없이는 이웃을 쉽게 대할 수밖에 없다. 나보다 못한 이들이라고 생각이 간다고 해도 나를 고쳐나가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임병장의 왜소한 체력을 보면서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러나 조금만 나를 버렸다면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본다.

  어차피 동이의 물은 흙 위에 뿌려졌다.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그래서 더 동정심이 간다.

  세상을 달리한 동료의 영혼들과 그 당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왜 슬프지 않겠는가? 현장검증을 하는 동안 임병장은 수시로 울컥거리며 현장검증을 했다고 한다. 모든 일 다 지내놓고 보면 후회될 일이 어디 한두 가지 뿐이랴! 그래서 오랜 수도생활을 한 스님들은 입에 “다 부질없는 짓”이란 말을 달고 산다. 화려했던 생활도 즐거웠던 일들도 그리고 슬프고 괴로워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태풍도 다 부질없는 짓으로 된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죽일 수만 있다면 성(聖)도 이룬다고 하지 않는가! 불쌍하다. 그리고 가엽다.

 

 

  앞의 두 수사관 사이에 있는 이가 임병장. 바지까지 큰 것을 입었는지 더 작아 보인다.

  노컷뉴스에서

 

 

  참고가 된 원문

http://www.nocutnews.co.kr/news/4055627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40709_0013034294&cID=10304&pID=10300

http://news.naver.com/main/read.nhn?oid=001&sid1=100&aid=0007003340&mid=shm&mode=LSD&nh=20140708215038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59361&cid=40942&categoryId=34318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5&contents_id=5366

http://en.wikipedia.org/wiki/Benjamin_Franklin#mediaviewer/File:New100front.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