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을 열다

민주주의 막는 적폐5봉과 모르쇠 법

삼 보 2017. 1. 18. 03:43

      경향신문 ‘향이네’는 ‘민주주의 가로 막는 적폐 5봉을 넘어’라는 카드뉴스를 내보내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생각할수록 적폐 5봉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대담하게 기안을 한 향이네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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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전걸육(虎前乞肉) - 무모하게도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일 - 을 하려고 하는 이들을 보는 국민의 심정은 어떠할 것인가! 짜증! 바로 그 왕 짜증나게 하는 인물들 아닌가?

    국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그 앞에서 ‘모른다’는 말로 빠져가려는 자세가 마땅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보시라! 호랑이 앞에 놓여 있는 고기를,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구걸하려고 한다는 말인가! 그러니 ‘모른다’는 말로 얼버무리려고 하는 것이다. ‘모른다’는 말은 크리스천들의 죄를 피해가는 방법 중 하나라고 했다. 죄를 숨겨주면서 ‘모른다’는 말로 사람의 생명을 구해주는 역할에 주로 쓰고 있었지 않나. 그러나 ‘모른다’는 말은 지식과 관계가 되기 때문에 실지로는 사람을 감춰놓고 모른다고 한다면 죄가 성립된다고 생각하게 한다.


    죄인이 교회로 들어왔다는 지식이 없어, 즉 죄인이 숨었는지 몰랐을 때는 가능한 답이 된다. 하지만 죄인을 숨겨둔 것이 자신이라면 ‘모른다’는 답변은 죄가 된다고 해야 옳지 않겠는가?

    일반적으로 상식이 없어 모른다고 하는 것과 상식이 있는데 모른다는 말은 천지차이가 아닌가?

    정치나 사회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디케이[DK(don't know)]층’도 갈라지고 있다. 정치를 알면서 귀찮아서 모른다고 하는 그룹과, 관심이 없어서 모른다는 그룹, 그리고 정말 몰라서 모른다는 그룹으로만 나눠도 세 그룹이 된다.

하물며 정치를 하는 사람이 정치를 모른다고 했다면, 귀찮아서 무성의하게 대답을 했을 것인가? 그건 의도적일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은가? 의도적인 발언은 죄가 되는 것 아닌가!


    최순실이 헌재에 나와 자그마치 130여 번이나 ‘모른다’는 말로 사람들을 질리게 했다. 김기춘을 비롯해서 우병우, 조윤선, 이재용, 이영선, 윤전추 할 것 없이 박근혜 측 증인들은 거의 ‘모른다’는 말로 대중 즉 국민을 우롱했다고 아니할 것인가?

    시대는 21세기로 달려가고 있다. 법정에서도 이젠 방향을 틀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할 것인가? 이젠 더 이상 ‘모르쇠’를 두고만 볼 수 없다고 본다. 성경에 의지 할 것만이 아니라, 인간들이 영악해진 것만큼, 법도 그 한계를 뛰어넘어야 할 때가 된 것 아닌가? 어찌 눈에 보이는 증거와 증인의 확실한 발언만이 물증이 된다고 할 것인가! 양심을 버리는 죄악을, 눈과 귀를 연 상태로 보고 있으면서 말이다.


    이고위감(以古爲鑑) - 옛 것을 거울로 삼는 것 - 을 어찌 소홀히 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시대에 따라 변천하고 있는 인간의 영악함을 법이 따르지 못한다면, 옛 성현의 말씀을 거울로 삼키는커녕, 현실의 법까지 말살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 깨닫고 있는 것 같다. 국회는 잘 기억하기 바란다. 진정 대한민국과 그 국민의 영원한 미래를 위할 것이라면, 시대를 역행하는 법이 아니라 시대와 같이 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모르쇠 답변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것을.

    민주주의를 막아 세우는 인물들을 두고만 볼 수 없다. 헌재는 이번 기회에 새로운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까! 반드시 적폐5봉들을 영어의 몸으로 만들어야 국민의 한이 풀리지 않겠는가!


  출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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