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사항

안대희 재산 사회 환원 때늦은 후회

삼 보 2014. 5. 27. 03:48

 

    20세의 약관에 제17회 사시에 합격할 당시 서울대 법대 3학년 재학 중이었다. 그리고 5년 후 25세에 춘천지방검찰청 영월지청 검사로 발령을 받으며 최연소 검사로 시작한 안대희(安大熙1955.3.31~) 전 대법관(2006.7.~2012.7.)이 국무총리 내정자로 돼서 오랜만에 청렴한 인물이 박 정권에 들어서려나 싶어 속내에 희비가 교차되고 있었다. 그런데 총리내정 3일 만에 그도 다른 인물들과 별차 없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25년 서대문구 홍은동 한 아파트에서 재산을 늘리지 않고 차분하게 산 것과 다르게 남산 밑의 회현동 새 대형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는지 모른다.

   2012년 7월 대법관에서 퇴임하자 그해 8월에 변호사안대희법률사무소를 차렸다고 한다. 그 와중에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발탁되면서 제18대 새누리당 대선 후보자 박근혜를 보좌하기 시작한다. 대선이 끝나자 그는 정권에 참여하지 않고 변호사 일에 전념했다고 스스로 말한 내용을 살펴본다.

안 후보자 측에 따르면 안 후보자는 지난 2012년 대법관에서 퇴임한 뒤 2013년 7월 서울 용산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개업 후 올해 1월까지 5개월간 사건 수임과 법률 자문 등으로 16억여원의 수입을 올렸다.

이 중 세금(6억여원)을 제외한 순수입은 11억원 정도다. 그는 6억원여원을 서울 회현동 아파트 매입 자금으로 사용했고 4억7000여만원은 불우아동시설과 학교 등에 대한 기부금으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야권을 중심으로 안 후보가 5개월간 벌어들인 소득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을 해왔다. 11억원은 평범한 변호사가 5개월간 벌기 어려운 액수이기 때문에 '전관예우'로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안 후보자는 이 수입은 변호사 활동 과정에서 정당하게 올린 수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내 소득은 변호사로서 최선을 다한 결과"라며 "30년 넘는 공직생활 동안 많지 않은 소득으로 낡은 집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가족들에게 그동안 미안한 마음이 있어 어느 정도 보상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노력한 측면도 있다"고 해명했다.

또 "공직에서 받았던 과분한 평가가 수임에 도움이 된 면도 있었고 동료 변호사들의 숨은 노력도 컸다"며 전관예우를 일정부분 인정하기도 했다.(뉴시스;2014.5.26.)

【서울=뉴시스】조종원 기자 =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 브리핑실에서 고액수임료와 전관예우 논란 등에 관한 입장표명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이날 안 후보자는 대법관 퇴임 이후 변호사 활동으로 늘어난 재산 11억여원을 모두 사회에 환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4.05.26. choswat@newsis.com 2014-05-26

   {뉴시스와 네이버 인물 검색 중 어떤 것이 확실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네이버 인물검색에는 2012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것으로 나온다. 본인도 네이버 인물검색 연도를 따르기로 했다.}

   불과 17개월 동안 안 총리 내정자는 16억 원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본다고 해도 월 평균 1억의 수임료를 받는 것으로 나온다. 물론 2012년 대선 기간 중 새누리당에서 정치쇄신특별위원장에 겸임한 기간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1년 5개월의 짧은 기간에 16억 원의 수입 중 6억 원을 세금으로 내고, 나머지 11억 원은 그대로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의지를 환영한다. 그런데 왜 국무총리 지명을 받고, 16억 원 수입에 대해 1차 언론보도가 나간 이후, 사회 환원을 할 의지를 보이고 있는가? 만일 총리 지명을 받지 않았다면, 그대로 착복할 생각이 있었다는 것 아닌가? 의심스럽다. 이래서 뒤통수를 맞았다고 표현하는 것 같다.

   위키백과에서 조사한 그의 대법관 시절을 보면 그의 성향은 보수적 사고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안대희는 중앙일보 네트워크 분석에서 대법관 중 전원합의체에서 보수적인 의견을 가장 많이 낸 대법관으로 꼽혔다. 또 김영란 대법관과는 분석에 사용된 판결에서 만장일치를 보인 것을 제외한 18건의 판결 중 16건에서 반대 의견을 내는 모습을 보였다.

대법관으로서 그는 형사 사건과 조세 사건에 있어서 엄격하지만, 여성과 난민·무허가건물 입주자 등의 사회적 약자 보호엔 적극적이란 평가를 하는 언론도 있다.

사형 확정 판결을 내린 것은 70대 어부가 젊은이들을 죽인 '보성 연쇄 살인사건'과 '서남부 연쇄 살인사건' 두 건이다. 자기 스스로 기억에 남는 판결로는 백화점이 남품업자이 고용한 직원들에게 백화점 판촉일을 시키는 관행을 중지시킨 것을 꼽았다. (위키백과에서)

 

 

   안대희는 또 만장일치를 빼면 거의 반대를 했다는 것도 나온다. 대신 약자는 보호하고 형사상 불의를 보지 못 한다는 것도 내비추고 있다.

 

 

   대한민국 특수부 검사로 일하다 쌍용 김석원 회장의 비자금 수사로 인해 검찰을 떠나 삼성그룹의 법무팀장으로도 근무하다 삼성을 떠나 3년 뒤 이건희 일가의 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1958.3.27~)변호사는 안대희에 대해 말한다.

   2003년 3월부터 1년 3개월 간 대검찰청 중수부장이던 안대희는 자신이 겪은 가장 청렴하며, 능력 있고, 강직한 검사인데, 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삼성그룹의 비자금이 한나라당에 전해진 것을 알면서 덮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비자금에 대한 것만 찜찜하게 인간 안대희에게 가려지더니, 이젠 1년 남짓 변호사해서 16억 원 벌어들인 전관예우까지 겹쳐지고 있다. 과거 팔팔한 나이 - 지금도 59세의 창창한 나이지만 - 때 지나온 청렴한 세월이 묻어지고 마는 것 같아 아쉽다. 그가 앞으로 국무총리에 오른다면, 국가 쇄신이 얼마나 될 수 있을까 좀 더 의심스러워 진다.

   세월호 참사는 결코 헛되지 않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안대희 같은 인물까지 돈의 노예에서 허덕였다는 것을 보면서 쓴 웃음이 가시질 않는다. 과연 현 정권에서 안대희라는 인물을 앞세워 국민의 원성을 잠재울 수 있을까? 심히 의심스럽다.

   그도 지금쯤 통탄의 한숨을 내뿜을 지....

  참고가 된 원문

http://news.naver.com/main/read.nhn?oid=079&sid1=100&aid=0002600585&mid=shm&mode=LSD&nh=2014052621024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5261743541&code=910100&nv=stand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40526_0012942988&cID=10301&pID=10300

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C%95%88%EB%8C%80%ED%9D%AC&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99827

http://ko.wikipedia.org/wiki/%EC%95%88%EB%8C%80%ED%9D%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