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을 열다

6억 원의 현상금과 비분의 유병언

삼 보 2014. 5. 26. 06:27

    금년나이 73세로 알려진 유병언(兪炳彦;1941.2.11~) 현 청해진해운의 회장은 일본 교토에서 한국인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제가 패망한 직후인 1945년 8월 가족들과 함께 한국으로 귀국한다. 부모의 고향인 경상북도 대구에 정착하게 되면서 대구 성광고등학교 학창 시절 그의 학업 성적은 우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지 몰두하는 성격과 함께 뛰어난 손재주를 가졌다는 평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인 독립 선교사 딕 욕(Dick York)이 운영하는 성경학교를 수료하면서 신앙생활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 큰 획을 그을 사람을 만난다. 1962년부터 권신찬(權信燦, 1923~1996)목사가 대구에 개척한 교회에 출석하게 된다. 그의 신임을 얻고 1966년 그의 딸 권윤자와 결혼한다.

   1972년에는 미국 국제 복음주의 동맹 선교회(TEAM) 산하에 있던 공산권 선교 방송국인 극동방송에서 설교 프로그램을 맡고 있던 장인 권신찬의 추천으로 유병언은 극동방송 부국장 자리에 올랐다. ‘은혜의 아침’이라는 프로를 진행하면서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런 연유로 이들의 교단은 세칭 구원파로 알려지게 된다. 권신찬은 기성교회에서 행하는 예배 의식, 십일조 헌금, 장로집사 제도, 주일성수, 새벽기도 등이 율법적이라며 비판했고, 율법과 죄책감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며 설교했다. 이들의 설교 방식과 신학은 비판의 대상이 되며 1974년 권신찬과 그의 추종자 10여명과 함께 유병언도 극동방송에서 물러나고 만다.

   이들이 교단의 형태를 갖춘 것은 1981년 11월 21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 서울교회당에서 전국의 책임자 248명이 모여, 변우섭을 책임자로 선출하고 기독교복음침례회라는 명칭으로 창립총회를 열고, 문공부에 등록하면서부터이다. 유병언은 1981년 12월 권신찬과 함께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를 정식으로 출범시키고 전도인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목사다. 그리고 기업인이다.

   유병언은 1976년 봉제완구 제조 및 수출업체인 삼우무역(三友貿易, 삼우트레이딩)을 인수하여 기업인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1979년 주식회사 세모를 설립하면서 건강식품, 선박제조, 자동차부품, 건설 등 9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종합 기업으로 성장시킨다. 세모라는 이름의 의미에 대해 유병언은 안정감을 주는 모든 도형의 기초인 삼각형을 의미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구약성경 출애굽기의 유대인 지도자 모세의 이름을 뒤집었다는 말이 있다. 전두환 정권(1980~1988) 당시인 1986년에는 선박 사업 경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강 유람선 사업권을 취득하여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노태우 정권(1988~1993) 시절 1990년 선착장에 정박 중이던 세모 유람선 2척이 태풍으로 떠내려 온 경쟁업체 유람선과 충돌해서 표류하다가 마포대교 교각을 들이받고 침몰하여 유람선을 정박하던 세모 직원 14명이 사망·실종했다.

   유병언은 1991년 5월에는 한강 유람선 사업에서 철수한 원광해운 유람선 2척을 인수하여 한강 유람선을 독점 운항하게 되었고, 이 당시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과 연루되면서 유병언이 구속 수감된다. 이듬해 오대양 대표 박순자로부터 자금을 받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들로부터 헌금을 상습 횡령하였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4년 확정 판결을 받고 복역하고 말았다. 김영삼 정권(1993~1998) 당시인 1995년에는 세모에서 해운사업부를 쪼개어 자회사 세모해운을 설립하고, 서해안과 남해안 20여개 항로에 총 27척의 여객선과 화물여객선을 운항하는 대한민국 최대의 연안여객선 업체로 성장시켰다. 이후 무리한 투자 후유증으로 경영난을 겪다가 1997년 부도 처리되고 만다.

 

 

   부도가 난 이후 세모의 해운 사업은 1998년 온바다해운(2006년 경영난으로 폐업)을 거쳐, 김대중 정권(1998~2003) 당시인 1999년 3월 그의 아들들에 의해 설립된 청해진해운으로 승계되게 된다. 세모의 한강 유람선 사업은 2004년 세양선박에 매각되었으며, 경상남도 고성군에 있던 세모의 조선사업부는 2005년 7월 주식회사 천해지로 분사된다. 이후 유병언은 대외적으로는 기업 활동을 중단하였고, 한동안 대한민국에서 행방이 묘연해지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의 호 아해(兒孩)에서 따온 이름으로 미국에서 사진작가와 동시 사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의 사진 작품은 보통 아마추어 수준의 사진 작품들로,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 등 유럽 각지에서 개인 전시회를 열면서 런던 교향악단을 초청하는 등 금력으로 주목받은 것으로 나온다. 심지어 전시회를 성사시키기 위해 거액의 후원금을 제공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루브르 박물관 전시회를 위해서 유병언은 110만 유로(약 16억 원)를 기부했으며, 베르사유 궁전 분수 재단장 사업비로 140만 유로(약 20억 원)를 부담한 것이 밝혀졌다. 또한 천해지는 2012년 국제사진전을 주관하는 ‘아해프레스 프랑스’와 사진 예술 작품을 파는 ‘헤마토 센트릭 라이프 연구소’에 각각 14억 원, 12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나와 있다. 헤마토 센트릭 라이프 연구소 포럼에는 전 대통령 이명박과 전 서울시장 오세훈, 그리고 여야 현역 국회의원 등이 참석한 것으로 구원파는 공개하고 나섰다.

 

 

 

구원파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유 전 회장의 포럼과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의 명단을 공개했다.

구원파에 따르면 헤마토센트릭라이프연구소 포럼이나 유 전 회장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주요 인사는 ▲찰스 윈저 영국 왕세자 ▲앙리 루아레트 루브르 박물관장 ▲밀란 크니작 전 프라하국립미술관장 ▲이명박 전 대통령 ▲오세훈 전 서울시장 ▲성 김 주한 미국대사 ▲전·현직 기관장 ▲다수의 여야 현역 국회의원 등이다.

 

 

이들에게 제공된 선물 내역은 녹차 사탕과 녹차, '아해' 사진 달력, 시집, 초콜릿 등이라고 구원파는 전했다.

이태종 구원파 임시 대변인은 "검찰은 행사 초청 인사 및 선물 내역과 관련한 자료를 이미 압수해 갔다"며 "현재로서는 검찰이 더 잘 알 수 있는 내용"이라고 말했다.(뉴시스;2014.5.25.)

 

 

 

   위키백과에서는 그의 직업을 종교인이자 기업인, 사진작가로 내놓고 있다. 그러나 한편 그의 사진작품의 평은 아마추어 수준으로 논하고 만다. 무엇보다 그의 목사 직위는 세간의 구설에서 크게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그를 추종하는 구원파 신도들이 적잖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를 옹호하는 응원자들이 대단하다. 그를 따르는 인물이 있는 만큼 그의 덕이 따른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다수의 의견에는 그를 사형까지 시키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정말 그렇게 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에서 그를 감싸고 돌봤다고 하지만 그런 내용이 확실치 않다. 그가 붕괴한 것은 김대중 정권과 김영삼 정권 당시였으며,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고부터 그의 아들들의 명의로 재조명되고 있음을 본다. 물론 청해진이 김대중 정권부터 시작된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의 아들 명의로 시작하고 있다. 물론 매달 1000만원씩 유병언이 청해진해운에서 수령한 것이 증명되고 있으나, 김대중 정권에서 청해진에 대해 특혜를 주었다는 내용을 찾을 수 없다.

그러니 유병언은 꼭 검거가 돼야 할 인물임에 틀리지 않다. 확실한 내용을 알기 위해서도 그를 잡아야 한다.

 

 

   5월 22일 5,000만원 현상금이 붙었던 유병언에게 3일 만에 10배의 현상금으로 둔갑하면서 그의 수배에 더욱 큰 관심을 갖게 한다. 그러나 항간에서는 벌써 해외로 도피했다는 말까지 나오면서 16일부터 유병언과 그의 두 아들 그리고 딸까지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에 요청했으며, 인터폴은 지난 16일 이들에 대한 적색수배를 내렸다고 한다. 유병언에게 5억 원의 현상금과 큰아들 유대균(43)에게도 1억원의 현상금으로 올라 두 인물을 동시에 검거하면 6억 원의 현상금을 받게 된다.

   5억 원 현상금 유병언에 대해서는 사상 처음 이라고 한다. 그만큼 그의 비리는 크게 나타나고 있다. 그의 현상금만큼이나 정부기관도 또한 얽히고 설켜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정권의 힘으로 약자만을 짓누른다면 구원파 신도들의 원성은 쉽게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정말로 희생을 치를 사람도 없지 않을까 우려도 된다. 또한 구원파라고 하는 저들의 신앙인들도 심히 걱정이 된다.

 

 

   우리에게 종교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믿어서는 안 되는 신앙을 믿은 신자들도 똑 같은 인류임을 말하고자 한다. 어디까지나 유병언과 그의 장인 권신찬의 꾀임에 신도들이 호응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나 이번 유병언의 죄과에 대해 피해를 보면서도 교주를 도피시켰다는 죄과를 받아야 할 4명의 신도와 함께 전 교도들의 삶이 걱정된다. 그들은 그들 나름 그 신앙을 취했을 때 특단의 이해타산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게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십만 명의 신도가 전국적으로 퍼져있다고 할 것인가? 그만큼 유병언이라는 한 인물은 그 신도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념이 무서운 것이다. 그러니 정부도 칼자루만 잡고 있다고 기독교복음침례회를 쉽게 정복하려 할 것인가. 그러나 무능력 정부를 국민들은 사시(斜視)로 보고 있음도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국민의 힘을 부채질해서 정부쪽으로 끌어들이려고만 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런 문제는 지금 구원파에서도 잘 하고 있음이 드러나지 않는가? 국민의 힘을 더 많이 끌어드리는 쪽이 유리하기는 할 것이다. 그래서 정부의 입김에만 옳다고 할 수 없으니 더욱 안타깝다.

 

   정부는 근본을 먼저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통령비서실장 김기춘, 그리고 대통령도 세월호 국정조사에 출석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유병언도 비통하고 분개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                                  유병언 부자 현상금 6억원

  참고가 된 원문​

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2&cid=984650&iid=1084121&oid=003&aid=0005865694&ptype=01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5252209335&code=910203&nv=stand

http://www.nocutnews.co.kr/news/4030248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95823&PAGE_CD=N0004&CMPT_CD=E0019

http://economy.hankooki.com/lpage/society/201405/e2014052601284993780.htm

http://ko.wikipedia.org/wiki/%EC%9C%A0%EB%B3%91%EC%96%B8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51245&cid=1623&categoryId=1623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40523_0012937675&cID=10201&pID=1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