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을 열다

흑산도 집단성폭행과 사회적 책임

삼 보 2016. 6. 8. 06:55


    

     조물주가 세상 만물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작품 중에서 인간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하는 것은, 바로 자신들의 몸, 인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 몸둥이를 발가벗기고 나면,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정시하기조차 꺼리는 것이 또 인간이다. 그 또한 인간 내막에 수치심을 준 것도 조물주의 작품인 것이다. 그러나 서로를 아끼며 사랑하는 남녀관계라면, 그 수치심조차 조물주에게 다 되돌려 보내고, 서로를 할퀴며 애욕을 만끽하려고 갖은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게 서로를 사랑하는 끼리는 자신의 몸둥이를 다 주지 못해 안달을 하는 것이 인간이지만, 사랑이 없는 이들끼리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 남녀의 육체관계가 된다고 본다. 사회의 모든 문제가 바로 이 이성(異性) 간의 성문제에서 발생하는 비율이 대부분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 수치와 애욕을 잘도 알면서, 행동으로 지키지 못해 또 스스로 자신에게 피해를 던지며 살고 죽는다. 결국은 다 들어날 것을 알면서 욕정의 순간을 참아내지 못하고 치욕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이런 것을 두고 인간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한다. 이것은 동물로서만 할 수 있는 짓이라고 우리는 스스로 단정 짓고 우리 인간끼리 조물주를 대신해서 벌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솔직히 이 또한 할 짓이 못된다고 본다. 하지만 그마저도 하지 않으면 사회는 엉망진창이 되고 말 것이니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누구보다 수치심에 더 강한 것이 여성이기 때문에 성문제에서는 항상 여성이 큰 피해자가 된다. 물론 극소소이지만 남성을 골려먹는 여성들도 적잖다는 말을 할 이들도 없지 않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그 비례적으로 보면 어찌 여성만 할 것인가!


    우리사회에서 접대 중에서 ‘성접대’라는 말까지 나온 것에 대해 어떻게 사회에서 이해를 하고 있는지도 참으로 의문이다. 인간끼리 아니 남녀 간 그 문제를 두고 아무런 거리낌도 없어 보이는 이 사회가 더 의심스러워서 하는 말이다. 세상은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하지만,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으면 성폭력을 잡아낼 수 없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남자들 중에는 아직도 그런 성접대를 받고 싶어 하며 살고 있고, 여성들 중에도 아무렇지도 않다며 담담한 표정을 짓기에 그런 사회가 그런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못된 근본을 잘라내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데, 사회는 앞으로만 가려고 하지, 불필요한 것을 자르지 않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접대를 자제하지 않으면 사회가 정화될 수 없다고 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한국 접대문화를 바꿔야 한다며 제정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국회를 통과해, 9월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일만 남았는데, 직장인 45%가 3만원 접대비에 대해 불만을 토하고 있는 것도 문제인 나라이다. 술을 마시면서 횡설수설할 때까지 가야, 접대라고 생각하는 국민의 생각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놈의 술을 마시면 정신이 오락가락해지고 인사불성이 되면 결국은 성접대까지 이어지는 나라가 돼야 한다는 것인가? 처음엔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하면 술은 또 술을 부르게 돼, 술이 술을 마시고, 결국 술이 사람을 집어삼킨다는 말이 있다. 이게 대한민국 술 문화인 것이다. 술이 사람을 집어삼켰으니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자기 집으로 가면 아름다운 부인이 기다리고 있는데 정신이 나갔으니, 자기 자신도 가정도 직장도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린 후, 결국 잃어버리고 만다.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도 모 초등학교 교사 A(20대 여성)는 금년 3월 부임해서 지난달 박모(49)인 학부모의 횟집에서 강제로 인삼주 대접을 받고 정신 줄 놓을 때까지 술을 마신 것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결국 술이 문제라는 것이다. 박모는 음주운전을 해서 술 취한 A를 학교 숙사로 대려가 성폭행(강간)을 했고, 술자리 동석했던 학부모 이모(34)도 A가 놓고 간 핸드폰 전하러 갔다며, 벌써 진흙 밭으로 변하고 만, A를 2차로 강간했고, 박모가 김모(39)라는 사람을 시켜, 이모가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니 가보라고 해서 술에 취해 영혼은 온 데 간 데 없고, 몽둥이는 이미 만신창이 된 A를 또 성폭행했는데도, A는 그 다음날이 돼서야 정신을 차렸다고 하니, 누가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도 A는 버려진 자신의 몸을 씻지 않고 경찰에 신고를 해서 DNA를 채취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 대견하다. 누구를 위해서인가? 물론 자신의 굴욕을 참을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사회에 희생물이 될 수 있는데도 버틸 수 있다는 것이 더 대단하지 않은가? 밀알은 썩어야 새싹이 돋는 것과 같지 않은가? 사회는 성폭력으로부터 정화돼야 하기 때문이다.

http://www.ddanzi.com/ddanziNews/102502003


    여성 혼자 타지에서 고생하며 자신의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는 여인에게 몸을 여미게 해주지는 못 할망정, 그 치부를 드러내게 했다는 것이 더욱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기에 - 아니 사랑이라는 단어는 애초부터 그들에겐 어울리지 않기에 세상은 치를 떨고 있지 않은가?

    우리사회는 깊이 생각해야 할 일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성문제에 대해 더 많은 수치심을 갖게 마련이다. 그러나 A는 그 수치심을 물로 씻어 없애는 것보다 경찰이 수사를 쉽고 원활히 할 수 있게 정신을 가다듬었다는 것에 방점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아주 잘 한 것이다. 바로 A와 같은 여성들이 있어야 사회악을 없앨 수 있다고 본다. 분명 여성들은 그런 상황에서 울고 불며, 물로도 씻을 수 없는 영혼에 깊은 상처를 받아 드러눕고 마는데, 만신창이 된 자신의 육신과 영혼을 이끌어 냈다는 것에 더 위로하고 싶다. 사회와 정부는 이런 이에게 상을 줘야하지 않을까본다.

    성접대를 하는 여성과 성(性) 능욕을 당한 이와 어떤 것이 더 여성들에게 치명적일 것인가? 거의 엇비슷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성폭행이 정신적으로 더 큰 장애[trauma]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 마치 일제강제점령기 당시 위안부로 끌려간 여인들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밀알 희생자에 대한 사회헌신의 법 만들어야 한다.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자신의 수치를 딛고 신고한 이들에게는 국가는 포상을 해야 한다고 본다. 마치 위안부할머니들을 회상해야 하지 않을까? 이분들도 얼마나 감추며 살아오셨는가? 우리나라 여인들은 특히 성적인 문제에 대해 감추려들기 때문이다. 경찰에 신고를 하자니 후일 얼굴이 팔릴까 걱정을 하다 그냥 넘어가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그런 것을 범죄자들은 이용한다고 본다. 만일 국가에서 성폭행당한 여성들을 각별하게 도울 수만 있다면 A라는 여성보다 더 확실하게 자신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번 정신적으로 장애(Trauma)를 받게 되면 직장생활도 쉽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 그 보장을 국가는 해야 한다. 국가가 정한 최저임금의 3~5배까지 후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세계 경제10위권 안에 들어가는 국가이기에 그 정도 지원이 크다고만 할 수 없다. 또한 사회를 정화시키고 난 다음에는 더 이상 성폭행이 날 것인가? 물론 완전하게 없어지지는 않을 것도 생각하지만 말이다. 20대 국회는 그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본다. 여성에 대해 사랑하지 않은 이들과의 성문제는 치명적인 것이다. 그 치명적인 문제를 국가는 희생자에게 후원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밀알 희생자에 대한 사회헌신의 법’으로 말하고 싶어진다.


    여성으로서 아주 치명적인 자신의 수치심을 사회에 내놓은 대가를, 우리는 받아주고 위로해야 하며 돌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치욕을 당한 여성에게는 평생을 따라다닐 것을 국가가 치료하지 않는다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가족과 사회가 얼마나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국가는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성폭행만이라도 국가적 차원의 문제로 다룬다면, 여성폄하에 최소한의 보답으로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대신 성폭행 피의자 남성은 국가차원에서 커다란 죄인으로 평생을 이어가게 해야 하지 않을까싶다. 왜? 한 여성을 평생의 고통으로 끌고 갔으니 그도 똑같이 성적인 고통을 당해야 사회적인 악이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성의 고귀함을 고취시키기 위한 목적이다. 조물주가 우리에게 수치심과 사랑 그리고 아름다운 몸을 준 그 귀중함을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사회는 크게 변해야 한다고 본다.


    1960년대 초부터 박정희 군부독재자는 성대접을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와 그 부하들이 아무리 감추려고 했어도, 하늘은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가 그 부하 김재규로부터 총탄에 쓰러질 때 궁정동의 한 안가에서 그는 부하들로부터 ‘성대접’을 받기 위해, 두 명의 꽃다운 여성들과 양주를 따라가며 무르익고 있었다. 그 성대접은 후일 국민의 정신까지 모조리 뒤바꿔놓으며 세상을 성폭력국가로 만들고 말았다. 오직하면 그 딸이 비합법적인 대통령이 돼, 최초 순방국인 미국에 갔을 때,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그 영혼이 나타나서 미국의 인턴 여성을 성추행을 해서, 국가와 국민을 망신의 도가니 속에 집어넣고 뒤흔들면서, 딸이 정치를 엉망진창으로 시작하게 했을 것인가? 그 윤창중이 블로그를 만들고 글을 쓰며 또 세상을 흔들 준비를 하고 있단다. 20대 국회는 한국 성폭력을 더 이상 묵과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강력하게 퇴치할 수 있게 엄격한 법을 제정해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가해자 A 씨가 운영했던 식당 외관. 간판이 내려졌고, 폐쇄된 상태다. (사진=광주CBS 김형로 기자)


  참고가 된 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071028001&code=910402&nv=stand

http://www.nocutnews.co.kr/news/4604399

https://ko.wikipedia.org/wiki/%EC%84%B1%ED%8F%AD%EB%A0%A5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60708315620223

http://news.naver.com/main/read.nhn?oid=055&sid1=102&aid=0000416592&mid=shm&cid=428291&mode=LSD&nh=20160607211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