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自 然)

환태평양 불의 고리와 일본 지진

삼 보 2016. 4. 18. 05:48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위에 600개 이상의 활화산이 치솟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고르게 분포된 것은 아니다. 화산의 80% 이상이 태평양 남서쪽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필리핀, 일본, 캄차카 반도, 알류산 열도를 지나 북아메리카 서부와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으로 이어지는, 즉 태평양을 둘러싼 환태평양 조산대(造山帶)에 분포하고 있다.

    그 분포된 형상이 마치 고리와 비슷하다고 하여 이를 '불의 고리(ring of fire)'라고 명명(命名)했다는 거다. 지구의 또 다른 화산대로는 유럽의 알프스 산맥에서 히말라야 산맥까지 이어지는 지중해·히말라야 화산대, 인도네시아 중심의 섬으로서 수도 자카르타가 있는 넓이 13만 4000평방km의 땅에 인구 대략 1억 1천만 명의 본섬인 자와(Jawa)섬과 수마트라(Sumatra) 섬 화산대를 이어, 아프리카 동부의 지구대에서 아라비아(Arabia) 반도에 이르는 동아프리카 화산대 등으로 나뉘고 있다. 이 같이 활화산대가 일부 지역에 띠를 형성하며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이유는, 지각 판끼리 만나는 경계면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화산대는 지진을 동반하며, 90℃ 이상의 온천이 뿜어져 나오는 지열 지대와 일치하는 것으로 미루어, 화산활동이 활발한 지역은 지구의 각 판구조 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이다.


     화산활동은 육지에서보다 해저에서 더 활발한데, 해양 중심부에는 지구에서 가장 길고 크게 놓인 중앙 해령(海嶺) 화산대가 있다.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 중앙에는 총 길이 약 6만 5,000㎞나 되는 중앙해령(中央海嶺)이 있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서로 지각 판이 나누어 갈라지면서 새로운 지형이 생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슬란드라는 나라는 대서양 중앙해령에 위치한 때문에 매년 국토가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고 한다. 나라 한가운데에 있는 길게 갈라진 틈으로 마그마가 계속적으로 열하분출(裂罅噴出fissure eruption= 지각 깊이 갈라진 기다란 틈에 따라 분출 ) 하면서 땅덩어리를 양쪽으로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란다.


     * 한편, 해저 화산대에서 화산 분출로 생성된 현무암은 중앙해령에서 멀리 떨어진 곳일수록 생성 연대가 오래된 것임이 밝혀졌다. 이는 후에 해저확장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네이버 지식백과)


     지구는 구 모양을 하고 있으나, 여러 조각의 지각 판들로 나눠져 있는 것이다. 이 지각 판들은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이 조금씩 움직이면서 지구에 여러 가지 변화들이 일어나게 한다. 그 중 한 가지가 이번 일본과 에콰도르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땅을 온통 크게 흔들어 놓고 마는 자연의 힘을 이루는 지진판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유난히 더 자주 발생이 잦은 지역이 있다. 이 지역들을 연결하면 띠 모양이 되는데 이런 지역을 ‘지진대’라고 부르고 있다. 바로 이번 지진이 일어난 환태평양 지진대인 것이다. 이는 ‘불의 고리’라고 말하는 화산대를 지진대로 바꿔 말하는 것으로 동일한 지역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알프스-히말라야 지진대가 형성된다. 이러한 지진대는 주로 지각 판과 지각 판의 경계선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의 고리’는 한 쪽에서 지각이 흔들리고 나면 다른 한 쪽에서 연속적으로 지각이 흔들리게 된다는 이론이다. 고로 14일 태평양판 중의 일본판이 흔들린 이후 남아메리카의 에콰도르의 나스카판이 흔들리면서 진도7.8의 대 지진피해를 에콰도르 에 때리고 말았다. 일본 구마모토를 흔든 지각판은 불의 고리를 따라 또다시 16일 오전 1시 25분경 일본 구슈의 구마모토 현을 초토화시킨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연합뉴스는 “미국 지질조사국(USGS) 등에 따르면 남태평양의 바누아투에서 지난 3∼14일 규모 6.4에서 6.9에 이르는 지진이 네 차례 발생했고, 필리핀에서는 15일 새벽 남부 민다나오 섬 해안에서 규모 5.9의 지진이 일어났다.”고 보도하고 있다.


     국민일보는 “2000개가 넘는 활단층이 존재하는 일본은 단 한순간도 지진의 위협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다. 1923년 관동대지진(규모 7.9∼8.4)으로 최소 14만2000여명이 사망했고, 1995년 한신대지진(규모 7.3) 때는 6434명이 목숨을 잃고 4만3000여명이 부상했다. 2011년 3월 발생한 규모 9.0의 동일본대지진으로는 1만5000여명이 사망하고 2700여명이 실종됐다.”고 보도하고 있다.


     매일경제가 보도한 일본 구마모토 현의 참상을 본다.

    17일 이틀새 규모 6~7을 기록한 두 차례 강진이 덮친 일본 구마모토현 마시키마치는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골목 곳곳은 폭격을 맞은 듯 지붕이 통째로 무너진 주택과 담장 파편으로 어지러웠다. 반쯤 무너진 채 힘겹게 버티고 서있는 2층 목조주택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무너진 주택을 멍하니 바라보던 한 노인은 “이런 지진은 평생 처음”이라며 한숨지었다. 시키마치 야구바(면사무소) 옆에 설치된 자위대 구호캠프에는 물과 생수, 의류를 배급받기 위해 나온 주민들로 긴 행렬이 이어졌다. 구마모토현을 비롯한 규슈 전역을 덮친 강진 사망자 41명중 절반에 가까운 20명이 마시키마치에서 나왔을 만큼 피해가 컸다.

     악몽은 16일 토요일 새벽 1시25분에 시작됐다. 이틀 전인 14일 규모7의 강진에 놀란 주민들은 여진에 대비했지만 찾아온 것은 본진(本震)이었다. 기상청은 “14일부터 이어진 여진은 16일 강진의 전진(前震·전조)이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1995년 고베대지진과 맞먹는 진도 7.3의 강진에 가뜩이나 약해진 지반과 목조건물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내렸다. 파편이 가득한 집안을 둘러보던 50대 여성은 “첫 강진 때는 괜찮았지만 두 번째 강진에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다”며 몸서리쳤다.


     강진은 점점 동진해 마시키마치에서 28km 떨어진 아소산 인근 미나미아소마치까지 덮쳤다. 지반 붕괴와 무너진 토사로 가는 길마저 차단된 미나미아소마치에서는 7명이 사망했고 11명이 행방불명됐다. 설상가상으로 강진이 덮친 16일 오전 아소산에서 분진이 100m 정도 치솟는 소규모 분화가 발생했다. 기상청은 “지진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지만 인근 주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4일 이후 400차례가 넘는 여진에 부상자는 2000여명을 넘어섰다.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일본 정부는 자위대 2만5000명을 투입해 대대적인 인명구조작업에 나섰다. 지난 14일 시작된 강진은 구마모토와 아소산 부근, 그리고 오이타현 3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매일경제;2016.4.17.)


​  출처; 국민일보


      구마모토에 있는 아소신사[阿蘇神社]는 일본 전국에 분포된 약 450개의 아소신사[阿蘇神社]의 총본사라고 한다. 일본 아소지방[阿蘇地方] 개척의 조상이며 진무천황[神武天皇]의 손자인 다케이와타쓰노미코토[健磐龍命]외 12명을 신으로 모시고 있다는 곳인데, 다케이와타쓰노미코토의 자식으로 초대 아소국조[阿蘇国造]로 임명된 하야미카타마노미코토[速瓶玉命]가 양친을 제사지낸 것이 시작이 아소신사의 역사라고 한다. 아소신사 대궁사[大宮司]를 세습하며 이 지방의 일대 세력가가 된 아소씨[阿蘇氏]는 하야미카타마노미코토의 자손이라 칭하고 있다는데, 신사는 히고국[肥後国]의 일궁[一宮]으로 숭배를 받으며, 광대한 사령(社領)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의 규슈 정벌 때 사령을 몰수당하기도 했단다. 그 후 새롭게 영주가 된 가토키요마사[加藤清正]와 호소카와씨[細川氏] 등이 사령을 기증하고 사전[社殿]을 수리하거나 건립했다고 하며, 세 개의 신전(神殿)과 배전[拝殿], 누문(樓門) 등이 있었는데 이번 지진으로 인해 크게 손실된 사진이 보이고 있다. 저들은 역사를 손실한 것이라고 크게 실망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너진 아소 신사  (출처; 매일경제)



     불행 중 다행히 한국 관광객 330명을 잘 대피시켜 큰 피해는 없었다고 하지만, 구마모토 현지 동포 1200명 에 대한 확실한 뉴스는 아직 없다는 것 같다.

     지난 2011년3월11일에 있던 일본 대지진 당시 한국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일본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지진에서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의지를 상실한 것 같다. 아마도 그 당시 우리의 진실을 일본이 좋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과 일본과 한국 간 이질의 골이 국민의 마음을 크게 억압시키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웃인데’ 하는 생각만 갖는 것은 무엇인가! 한일 간은 평생 아주 커다란 간격의 골이 흐르지 않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그보다 에콰도르의 피해가 더 크니 그 쪽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더 약하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 아니겠는가?



 


  참고가 된 원문

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oid=009&iid=24692549&sid1=104&aid=0003715824&mid=hot&cid=1040862&ptype=021&nh=20160417193614

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6/04/17/0602000000AKR20160417019751009.HTML?template=2085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523046&cid=47340&categoryId=47340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473995&cid=51778&categoryId=51778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350478&cid=40942&categoryId=39951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522943&cid=47340&categoryId=47340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500699&code=11141700&cp=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