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국민이 구태 정치에서 빠져나올 수만 있다면 하며, 새로운 인물이 나오기만 바라던 차에,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의사도 없던 안철수 당시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이 뜨기 시작했다. 수많은 이들은 그의 정치 입문에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며 학자는 그저 학문에 열중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여론은 들끓었고, 그해 8월에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서울시장에 안철수가 관심을 보인다는 말을 흘리고부터이다. 9월 4일에 주요 언론사들은 당사자의 의견과는 관계없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안철수의 지지율은 50%대를 보이며 압도적이었다. 공식적인 출마 선언도 없이 안철수는 구름을 타고 있었으니 가히 새로운 인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 흥미로운 문제는 안철수는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무소속의 박원순과 불과 10여분 회담하더니, 박원순의 생각은 자신의 생각과 같다며 박원순을 밀기로 한 무조건 양보였다.
당시 안철수는 “오늘 존중하는 동료이신 박원순 변호사를 만나서 그 분의 포부와 의지를 충분히 들었다.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면서 시민사회 새로운 꽃을 피운 분으로서 서울시장을 누구보다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아름답고 훌륭한 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리고 “저에 대한 기대도 우리 사회 변화의 열망이 저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소중한 우리 미래 세대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겠다.”라 했다. 또한 단일화 조건에 대해서도 안철수는 “아무런 조건도 없습니다. 제가 출마 안 하겠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대로 꼭 시장 되셔서 그 뜻 잘 펼치시기 바랍니다.”라며 흔쾌하게 말하고 끝냈다. 구태정치인들과는 아주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박원순은 단일화에 대해 “두 사람 모두 시장 직 자리를 원한 게 아니다. 진정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상식적으로 이해 안 되는 결론이 나온 것”이라 했다. 박원순은 또 안철수에 대해 “아무리 신뢰관계가 있다 해도 저보다 10배나 더 되는 지지도를 갖고 있던 분이 정말 아무 조건 없이 ‘더 잘 할 수 있다’고 하는 한마디로 양보한다는 게 사실 또 믿기 어려운 그런 일이다.”며 “안 교수가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의 어떤 공공적인 이익을 위해서 해왔던 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태도였다고 본다.”라며 안철수의 사고를 띄우고 있었다.
안철수의 양보로 박원순은 야권단일화에서도 1인자로 뛰어올랐고,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제35대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그리고 그는 36대 서울시장직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한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은 안철수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와 정치권의 각성을 향해 “정치권에 올 것이 왔다. 정치권이 발전적으로 변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국민들은 많은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고, 특히 정치권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 변화욕구가 아마 안 교수를 통해 나온 것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한다. 이것을 여러 시각에서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이것을 정치권이 발전적으로 변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근혜는 기자들이 안철수의 지지율이 자신을 넘어섰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자극적인 질문에 대해 “병 걸리셨어요?”라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안철수는 불과 4년 사이 가시밭길에서 오가고 있는 중이다.
2012년 18대 대선에 앞서 안철수에 대한 여론의 관심에 대해 언론들은 ‘안철수 신드롬’, ‘열풍’ 등의 표현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안철수가 서울시장 후보에서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인 이후, 언론은 차기 대선 여론조사 대상에서 안철수를 포함시킨 것이다. 안철수는 새누리당 박근혜와의 1:1 가상대결에서 43.2%를 기록해 40.6%를 기록한 박근혜를 앞서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박근혜가 차기 대선 지지율 2위를 기록한 것은 처음이라고 언론은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었다. 심지어 휴대전화 여론조사는 안철수 59.0%, 박근혜 32.6%로 심하게 더 벌어지고 있었다. 특히 야권 후보들 중 지지율 31%를 기록해 2위를 차지한 문재인 16%보다 두 배 가량 앞서고 있었다.
안철수는 20~30대 젊은층과 대학생, 화이트칼라, 호남지역에서 60% 이상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서울지역에서도 54%의 지지율을 보여 박근혜를 넘어섰다. 하지만 안철수는 2012년 대선 출마에 관한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았으니 태도에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2011년 9월 7일 안철수는 출근길에서 차기 대선 출마여부를 묻는 기자들에게 “가당치도 않죠. 사실. 생각해볼 여유도 없고...”라고 말했던 것이 치명적이라면 치명적인 발언인 것이다. 이어 서울 강남지역 총선 출마설이 돌자 2011년 12월 1일 기자회견을 열어 “제3당 창당이나 강남 출마설 등 여러 가지 설들이 많은데 분명한 것은 그럴 생각도 없고 그럴 가능성도 없다.”했고 대선 출마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정치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후일 알려지고 있다. 언론은 과거 안철수의 발언을 쥐고 흔들어 땅에 떨어트리고 있었다.
다음은 위키백과의 내용이다.
민주통합당 문성근 최고위원은 2012년 1월 25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해 “대선 후보로 뛸 생각이 있다면 민주통합당 경선에 나와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012년 4월 16일 중앙일보는 안철수가 제19대 총선 이전 대선 출마 결심을 굳혔다는 보도를 냈으나 안철수의 측근은 이를 부인했다.
같은 해 7월 19일 안철수는 정치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 국가 중대사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아는 범위내에서 서술하였으며 정치권에서는 비록 책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발간으로 정치적 야심을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책 출간 하루 전 7월 18일 SBS의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 녹화 작업을 했으며 7월 23일 방송되었다.
같은 해 9월 19일 안철수는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였다. 각종 여론조사시 유력한 대권주자였으나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과정에 여러 가지 마찰이 있었으며 2012년 11월 23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후보직 사퇴를 선언하였다. 이후 안철수는 민주통합당 후보인 문재인을 돕겠다고 선언하며 민주당과 독자적으로 선거운동을 하였으나 최선을 다하여 지원하였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문재인은 2012년 12월 19일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 박근혜에게 패배하였다.(위키백과)
우유부단(優柔不斷)했던 그의 정치 성향은 그의 지지율을 서서히 갉아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겐 특단의 정치개혁이 머릿속에만 있었지 행동으로 옮겨가지 못했다고 본다. 2013년 4월 노원 병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돼 금뺏지를 달고 국회에 입성해서, 그해 11월 28일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 추진위원회(새정추)의 출범을 알렸다. 2014년 2월에는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신당창당작업에 나섰으며, 3월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합당을 모색, 3월 26일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하면서 공동대표가 된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은 2014년 7월 재보선에서 참패하고 이후 대표직을 사퇴하고 물러섰다. 그리고 백의종군하는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참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는 필요할 때 새로운 정치개혁은커녕 기득권층과 같이 휘말리고 있다는 촌평이다.
문재인 대표 사퇴에 안철수 의원이 앞장서고 나서는 것을 보며 위태하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결국 그 위태한 발언은 한계를 넘고 만 것이다. 또한 안철수 그 본인의 자존심도 탈당에 한 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고로 문 대표가 마이웨이를 이어가는 것에 항의하며 이젠 자신이 탈당을 발표하고 있는 중이다. 길을 잘 못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의 지지율은 문재인(15%) 대표에게도 뒤진 지금 10%에 불과한 상태다. 4년 사이 40% 이상이 달아났으니 본인도 촉박하게 느끼고 있으리라. 그 국민 10%가 안철수의 재기를 노리고 있다고 본다.
문병호 전 비서실장이 손학규 전 고문을 만나 합류를 한다고 해도 과거 국민의 기대치엔 어림도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와 삶은 잡을 때 확 거머쥐지 못하면 후일 크게 후회하는 법이다. 안철수가 새로운 개혁을 할 수 없다면 아까운 인재가 정치적으로 또 매장돼가는 것을 보게 될 것 같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왼쪽)와 안철수 의원. 한겨레 자료사진
참고가 된 원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sid2=269&oid=001&aid=000805020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2132251355&code=910402&nv=stand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6578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21574.html?_ns=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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