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News)와 생각

YS의 3당합당이 역사반란도?

삼 보 2015. 11. 24. 06:01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역사는 흘러야 할 방향으로 흐른다"고 했다. 하지만 그 흐름을 방해하려는 무리들이 박정권 안에 검은 점을 치고 있다. 그 검은 점들이 YS가 배출시킨 정치인들이라면 어찌 할 것인가? YS서거후 “정치적 아들”을 자처하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그렇고, 이인제 의원, 서청원 최고위원 등은 과거 YS의 정치적 후배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朴과 아주 친밀한 유대 관계 속에서 총대를 메고 맹활약 중이다. 역사의 흐름까지 막아 세울 준비를 하며, 국민을 속이려 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경향신문 칼럼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줄곧 고인의 빈소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스스로를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로 일컬으며 ‘상주’ 역할을 자청했다.”고 하며 “누군가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을 자임하고자 한다면, 그 또한 민주주의를 목숨처럼 여겨야 마땅하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김 대표는 어떠한가. 민주주의를 목숨처럼 여기기는커녕 민주주의 퇴행에 선봉대 노릇을 하고 있다. 거짓과 왜곡, 억지와 불통으로 점철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앞장선 게 대표적 사례다. 한국사 교과서는 해방 이후 줄곧 검정제로 발행되다 유신체제에서 국정으로 전환됐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화 강행은 유신의 유물을 되살려낸 것이나 매한가지다. 김 전 대통령이 목숨 걸고 이뤄낸 민주화의 성과를 무(無)로 돌리는 최일선에 김 대표가 있는 것이다.”고 썼다.


   또한 이데일리도 “YS의 역사 바로세우기에는 당시 김무성 민정수석(새누리당 대표)과 서청원 정무장관(새누리당 최고위원), 이인제 노동장관(새누리당 최고위원) 등이 최측근 참모로서 적극 앞장섰다.”고 하며 “현재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총대를 메고 있다. 김 대표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아이들에게 긍정 사관을 심어주자는 좋은 뜻”이라면서 “개혁을 추진하면서 여론에 일희일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민들도 좌편향 역사교과서를 바꿔야 한다는 면에서는 절대다수가 찬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하며 “서 최고위원도 같은 회의에서, “역사교과서를 바꾸는 건 당연한 것”이라면서 “아직 집필도 안했는데, 친일 독재 미화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적었다.


    미디어오늘은 YS의 역사바로세우기에 대해 “전두환-노태우를 법정에 세운 것도 김 전 대통령의 공으로 평가하는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 정세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역사 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전두환, 노태우, 군부 독재 단죄, 조선총독부 철거는 큰 업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고, 같은 당 원혜영 의언도 "고인께서는 12. 12 군사반란의 주역들을 엄중히 단죄하여 역사를 바로잡았고 하나회를 척결하여 정치군인들의 만동을 근절"했다고 평가했다.”고 적으면서 “동아일보는 1996년 12월 칼럼에서 "12. 12는 패악한 군사반란으로, 5. 17과 5. 18은 국헌을 문란케 한 내란으로 재확인됐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힘의 논리가 쿠데타는 성공하건 실패하건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정의의 논리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썼다. 다만, 5. 18 특별법을 제정하고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시켰지만 5.18 관계자 대부분이 사면 및 복권 또는 석방되면서 색이 바랐다.”며 김 전 대통령도 전두환 노태우를 봐주기 했다고 단정하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계속해서 “김 전 대통령은 당초 4. 19의거로 기술됐던 것을 4. 19 혁명으로 변경해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반영시켰다. 5·16 군사혁명도 5·16 군사정변으로 바꾸었다.”며 “근현대사 역사적 재평가 작업은 국정교과서를 검인정체제로 변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더해서 “지난 1997년 12월 고시된 제7차 교육과정에 따라 필수과목인 국사 교과서는 국정으로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는 검정으로 하는 이원체제를 도입했다. 이원체제 역시 교과서 준거안이 정해져 있어 국정체제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당시 근현대사 검정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라는 보수 세력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도입했다는 점을 높이 사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흐르지 않았는데 김무성 대표를 비롯해서 이인제 의원 서청원 최고위원들은 국정화에 강력하게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중이다.

    만일 YS가 3당합당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들이 철새정치인들이라면 朴의 치마폭에 감싸여 어쩔 수 없겠다 싶다가도, 3당합당의 YS변절로 그 천년의 한(恨)이 살아나고 있으니 어찌할 수 없다. YS가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가?


    미디어오늘은 “지난 2009년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현 충북도지사)은 "3당야합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를 결정적으로 왜곡하고 망가뜨린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님의 역사적 범죄"라고 혹독히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저는 당시 통일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의 비서관으로 재직하다가 사표를 내고 실직자의 길을 선택했다"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정책과 노선은 필요 없고 지역당에 줄서는 일만이 유일한 선거운동이 됐다. 3당야합은 군사 쿠데타 못지 않은 나쁜 일"이라고 질타했다.”고 적었다.


    또한 우리는 YS의 서거를 슬퍼하는 것까지만 해야지, 그가 확실하게 실패한 것들은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본다. 朴과 같이 아버지명예를 위해 정치를 하면서, 국민을 눈속임하려 든다면 후세들의 지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프레시안은 “박 대통령은 1998년 정치에 입문했다. 목적은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서였다. 본인이 본인 입으로 명확히 이야기한 사실이다. 과거 인터뷰를 통해 부친을 배신한 정치인들을 향해 독설을 쏟아붓기도 했고, 부친의 유신 철권 통치를 옹호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프레시안은 “박근혜 대통령이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 머문 시간은 약 5분이다. 23일 오후 2시 정각에 서울대 병원에 도착한 후 3층에 자리한 빈소를 찾은 시각이 오후 2시 1분. 박 대통령은 문상을 마치고 2시 6분에 나와 2시 7분에 병원을 떠났다. 청와대가 브리핑한 데 따르면 박 대통령은 "분향하고 영정 앞에 헌화를 한 후 잠시 묵념을 하고 차남 현철 씨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했고 "이어 가족실로 이동해 손명순 여사의 손을 잡고 애도의 뜻과 추모의 말씀을 전"했다. '5분 조문'에 방명록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면서 “박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의 거리는 딱 이 정도다. 무엇이 대통령을 이렇게 무심하게 행동하도록 만들었을까?”라고 적었다.


    5·16혁명이라고 가면을 쓴 단어를 ‘군사정변(쿠데타)’로 바로 잡아준 것에 반론을 재기하는 것 아닌가? YS의 후예들 속에서 朴과 함께하는 이들이 박정희 군사 독재를 어떻게 미화할지도 아주 궁금한 것들이 남아 있다.

    또한 YS의 국가장이 끝나고 나서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YS의 역사관에 동조를 계속 할 수 있을지도 문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YS의 서거는 역사를 재조명하게 만든 충격의 일환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독재자의 딸은 독재자를 혁명의 기수로 만들 것으로 예측하게 한다. 역사반란을 일으킬 자들을 어찌 할 수 있겠는가!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참고가 된 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1232030285&code=990101&nv=stand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6244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F21&newsid=03998326609568672&DCD=A00602&OutLnkChk=Y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1328

http://news.jtbc.joins.com/html/284/NB111002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