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마음

시위대 과잉진압은 한국정치의 허

삼 보 2015. 11. 17. 06:03

    

   노자(老子)께선 도덕경 제8장에서 최상의 좋은 덕은 물이 갖추고 있는 성질이라시며 “사람이 사는 곳은 땅이 좋고, 마음은 연못처럼 깊어야 좋고, 더불어 사는 것은 어진 것[仁]이 좋고, 말씀은 신뢰가 있어야 좋고, 정치는 다스려야 좋으며, 일에는 능동적인 것이 좋고, 움직임은 시간이 좋아야 한다[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政善治 事善能 動善時].”고 하셨다.

   그 중 ‘정치는 다스려야 좋다’는 말씀은 ‘다스리는 이가 국민을 강제하거나 탄압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즉 국민이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틀을 마련하여 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는 것이 올바른 다스림이라고 본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백성은 거대한 윗사람이 있다고만 알게 된다[太上下知有之]”고 최상의 지도자를 설명하셨다. 그 다음 “차선은 친절하여 그 명예가 있고, 그 다음은 두려워할 인물이고, 그 다음은 지도자를 업신여긴다[其次 親而譽之 其次畏之 其次侮之].”며 제17장에서 군주의 정치에 대해 4등급으로 나눠 설명하신다.

 

   국민은 무엇보다 의식주(衣食住) 해결이 잘 되는 것을 바라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의식주를 마련하는 지도자가 참된 길을 가지 않거나, 과거와 현재 행동이 올바르지 못하다면 그 지도자의 길을 국민은 따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작금의 세계도 올바른 정치를 더 바라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 세계 선진국의 국민은 그 지도자의 과거 역사를 깊이 있게 따지고 검열하여 하자가 있는 이들은 감히 선거 후보자에 등록조차 할 수 없도록 처단하고 만다. 그래서 진실하고 바른 언론의 힘이 꼭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2500여 년 전 노자께서는 군주[王]와 공인(公人)을 성인(聖人)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성인이란 글자그대로 성스러운 사람이니 어찌 거짓이나 부정 그리고 부패와 비리를 지니고 있을 것인가?

 

   미국의 선거가 시작되면 언론들은 아주 바쁘게 쫓아다니며 정치인들의 과거 비리를 샅샅이 캐고 다닌다. 물론 돈을 주고 비리를 캐지 못하게 막는 정치인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거의 모든 언론들은 중립을 지키려고 최선의 노력을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고 돈에 눈이 멀면 하루아침에 그 언론사는 문을 닫게 마련이다. 그래서 유명 언론사들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만에 하나 언론사에서 정치인들의 비리를 적발하게 되면, 여러 신문이 아니라고 해도 그 정치인은 정객이 될 수 없다. 선거권을 쥔 국민이 표를 던져주지 않을 것이 빤한데, 버틸 가치가 있겠는가? 그래서 하차하고 만다. 그게 선진국 언론이다.

 

   지난 토요일 한국에서 민중총궐기대회가 있었다. 백 모(69)씨가 시위도중 소방차 물대포를 맞아 쓰려져 지금까지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뉴스가 있다.

   그 사진들을 보면 소방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많은 언론들이 경찰의 과잉진압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경창청장이 사과를 하든지 아니면 사퇴를 해야 할 정도로 진압이 극심했다. 왜 이런 상황까지 갔을까? 한국 정치인[公人]들은 정치를 잘하고 있는데, 국민들이 괜히 민중총궐기를 하고 있다는 것인가? 그 근본원인이 무엇인가? 한국 정치는 항상 허점이 노출될 때마다 그것을 가리기 위해 앞을 가로막기 때문인 것이다.

   이번 민중총궐기대회가 일어나게 한 원인은 역사교과서국정화를 비롯해서 노동개혁반대, 청년실업 문제, 쌀값 폭락, 빈민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하는 것이 이유라고 했다. 돈 없고 힘없는 이들의 투쟁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 같다. 역사를 왜곡하려는 정부에 반기를 들고 있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왜 한국 정치는 국민을 다스릴 생각을 하지 않고 궐기하게 하려는 것인가? 한국정치는 자신들의 허점을 가리기 위해 상대를 극에 치닫게 하는 못된 관습에서 나온 것이다. 박정희 독재정권의 허점의 악습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음이다. 김종필 전 총리는 “박정희 장군의 제일 아픈 데가 빨갱이 의혹 아니냐?”며 박정희의 허점은 과거 남로당 사건의 허를 실로 막기 위해 5·16 군사쿠데타 세력들이 '혁명공약' 중 첫 번째를 '반공 국시'로 한 것을 토로하고 있었다.

 (더 보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85998&PAGE_CD=N0004&CMPT_CD=E0019

 

 

   새누리당의 이완영 의원은 미국 시위진압을 예로 들면서 시위대의 잘 못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오마이 뉴스는 “16일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 모임인 아침소리에서 "최근 미국에서 경찰이 총을 쏴서 시민이 죽은 일 10건 중 8~9건은 정당한 것으로 나온다, 범인으로 오해받은 사람이 뒷주머니에서 총을 꺼내는 것으로 인식해 경찰이 총을 쏴서 죽여도 그걸 정당한 공무로 본 것"이라며 "이런 게 선진국의 공권력이 아닌가(생각한다)"라고 말했다.”고 하며 그는 “ "미국에서는 (시위대가) 폴리스 라인을 벗어나면 경찰이 그대로 (시위대를) 패 버리지 않느냐"라며 "그게 오히려 정당한 공권력으로 인정받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언론에서도 너무 과잉진압을 부각하는데 정말 선진국은 그런 게 아니다"라고 덧붙였다.”고 보도하고 있다.

(더 보기; 하단 링크를 부탁합니다.)

 

   미국은 국민에게 총기를 소유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고로 시위진압을 할 때 누가 총을 소지하고 있는지 모르니, 규정을 어기면 발포를 할 수 있게 공권력을 주고 있는 것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그 규범이 모호해서 경찰의 손을 들어 줄 때도 종종 있으나, 지나친 공권력을 휘두르면 경찰도 결국 구속된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말 같다. 새누리당은 경찰과잉진압을 합법화하려는 의도가 다분하지 않은가?

   한국 정부는 국민을 다스리는 정치를 하지 않고, 국민을 과격하게 들쑤시고 나서 역공세를 취하려는 것이 역력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평화시위를 하게 해야지 왜 길을 막는 것인가? 길을 막으려면 이완영 의원이 말하는 폴리스라인(Police Line 경찰통제선)을 쳐야지, 왜? 버스로 길을 막아 사람 통행조차 할 수 없게 해서, 시위대가 항의 하는 장면까지 막아버려 언론매체들이 보도조차 할 수 없게 저지하려는 것인지, 그게 의심스럽다.

   원인 제공자가 있어 국민이 항의를 하는 것인데, 왜? 정권을 쥔 자들이 감추려고 하는 것인가! 상대에게 뒤집어씌우려는 공안정치의 근본에서부터 시작된 것을 아니라고 할 것인가?

 

   현재 멀쩡히 잘 배우고 있는 역사교과서를 고치겠다고 하며 왜곡하려는 정권이 나쁜가? 그 위험한 짓을 막아서려는 국민이 나쁜가? 확 트인 길을 버스로 막아버린 것이 잘 못인가? 막힌 길의 장애물을 치우기 위해 그 차벽을 허물어버리려는 국민이 잘 못인가? 길을 막아선 것도 모자라 살상무기와도 같은 소방차 물대포로 사람을 직통으로 쏴, 식물인간으로 만든 공권력이 잘 못인가? 지나친 공권력이라고 항의하는 것이 잘 못인가?

간단하게 경찰통제선(police line) 하나만 설치하면 될 것을 가지고, 지나치게 길을 막아 시위국민의 억울한 가슴을 막아버리니, 권력을 쥔 자들 같으면 가만히 있겠는가? 국민을 충동질해서 법과 질서를 파괴하게 만드는 그 원인을 먼저 캐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조용한 시위를 하게 만들든지, 그 시위조차 할 수 없게 국민의 양심의 권리를 충족시키면 될 것 아닌가! 정부가 올바른 다스림[政治]를 하는데, 왜? 국민은 쇠파이프를 들고, 보도블록을 깨며, 과격 시위를 한다는 것인가? 그리고 이들을 북한의 지령에 의해 보낸 빨갱이 취급을 하며 공안정치가 잘 하는 짓인가!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얻어맞는 것이 이젠 더 좋다고 한다. 그렇다고 얻어맞을 궁리나 하고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왜? 맞아야 하는지 그 이유라도 알고 맞아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한국은 올바른 다스림도 할 줄 모른다. 결국 국가로부터 불이익을 받아 분통이 터지는 국민에게 시위도 하지 말고 죽어지내라하니 이보다 더 원통한 것은 없다.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은 올바른데 써져야 국민은 안심하고 권력을 믿을 수 있는 것이다. 혈세는 불을 끄는데 사용해야 할 소방차를 사라고 했지, 분통이 터져 시위를 하는 국민 진압용 소방차를 사라고 하지는 않았다. 피 같은 돈으로 산 소방차의 쾌속 물줄기를 어떤 정권이 국민의 가슴에다 뿜어댈 수 있다는 것인가?

‘정치는 다스리는 것이 좋다’고 한 것은 국민을 때리라고 한 것도 아니며, 강제와 탄압이 포함돼서도 안 된다는 것을 노자께서는 권력자들에게 설득했다.

 

   그래서 노자께서는 국가 군주와 공인(公人)들에게 무위(無爲)의 정치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군주와 국가 공무원들은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자연스럽게 인류가 살아가야 한다는 의견인 것이다. 왜? 한국 정치는 뒤로 갈 수 없는 소걸음을 국민에게 시키려고 하는 것인가!

   한국 시위대 과잉진압은 한국정치의 허를 막아보려고 한 것이고, 결국은 그 허에 찔린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기사 관련 사진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60750&dable=10.1.1

 

  참고가 된 원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60706&PAGE_CD=N0004&CMPT_CD=E0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