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을 열다

이산가족상봉을 왜 없애지 못했나

삼 보 2015. 10. 22. 04:38

     미국과 소련의 정상 회담 마지막이 되던 1989년 12월 “세상은 이제 냉전이 끝났다.”고 했다. 미국은 소련에 대한 봉쇄 정책을 종결짓겠다고 했고, 소련은 핵무기 감축에 서명했다. 개혁과 개방이라는 소련의 지도자 고르바초프가 새로운 대외 정책을 발표한 결과였다. 소련은 더 이상 동유럽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으며, 소련은 공산당 이외의 다른 정당을 허용하겠다며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치 질서를 발표했다. 같은 해 헝가리를 시작으로 동유럽 모든 국가 민중들이 봉기하고 나섰다. 1917년의 러시아혁명 이후 탄생된 소비에트연방(소련)이 70여년의 세월 속에서 사라고 있었다. 결국 공산당 정권은 무너졌으며,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는 형태로 독일이 통일되었다. 1991년에는 소련이란 말은 없어지고 러시아를 비롯한 14개 공화국으로 분리되기에 이르러 진다. 이것을 ‘소련붕괴’라고 했다.

   이로 인해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들이 해체되든지, 사회주의가 약화되면서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 큰 타격을 주고 있었다. 그 때 북한의 김일성은 북한만의 사회주의를 내걸고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으나 경제가 크게 악화되어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그리고 3년 후 1994년에 김일성이 사망한다.


    세상은 기회가 왔을 때 잡지 못하면 새로운 기회가 올 때까지 수많은 국화꽃을 피워내야만 한다. 수많은 천둥도 울려야 한다. 1989년부터 지금까지 26년 동안 수많은 국화꽃이 피고 졌으며, 수없는 천둥이 치고 갔어도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 남북통일이다. 정치인들은 지금도 ‘남북통일’이라는 단어를 입에 물고 살지만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쓰는 단어일 뿐이지, 국민을 위한 진정한 속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4·19혁명 이전의 이승만 정권도 북한 김일성을 갈기갈기 씹고는 있었지만 통일을 해낼 능력은 없었다. 남한 살림도 제대로 꾸리지 못 하면서, 그저 경무대 밖으로 쫓겨날까 전전긍긍하며 김일성을 씹고 또 씹으면서 살기 바빴다.

   1961년 일개 육군 소장 박정희가 월권을 부리며 쿠데타를 일으켜 18년간의 독재를 이어가면서 이후락 당시 정보부장을 북한에 비밀리에 방문시켜 놓고 김일성과 잡담이나 하고 온 것을 보면, 겉으로는 국민들에게 통일 운운하며 독재정치를 위한 공안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으로 뿌리를 박아 버린 상태였을 뿐이다. 그 18년을 민주화에 전력했다면 북한이 지금 ‘북한식 사회주의’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의심치 않을 수 없다.

   박정희 독재정권을 그대로 이어 받아서 뒤를 이은 군부독재 전두환과 노태우의 13년 통치가 무엇을 낫게 했는가?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노태우 정권 중에 소련이 붕괴되고 동독이 서독으로 흡수 될 때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1987년 6월 민주화를 위해 거리로 뛰어나가서 겨우 얻어낸 것은 우리 손으로 투표할 수 있는 선거권을 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결국 박정희부터 시작된 독재정치에서 빠져나올 수 없어 전전긍긍한 것이 한국 국민의 삶이었다. 그 정치만 온전한 민주주의 정치를 했었다면 북한이 지금 저 위치에서 장거리로켓을 무슨 수로 날릴 수 있으며, 원자탄을 날리겠다고 으름장을 칠 수 있다고 보는가?


    수많은 국화꽃이 지고 또 졌고, 수없는 천둥이 울리고 또 울렸어도 우리는 빨갱이와 종북 타령만하고 있다. 그리고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교과서를 정권을 쥔 측에서 ‘좌편향’이라고 한다. 북한 김씨 일가를 찬양하는 빨간 물이 들어가 있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면서 국민의 절반을 갈라 이념전쟁을 시키며 한국사만 국정교과서로 하겠단다. 독재정권을 쥐고 공안사범을 만들려고 하고 있던 그 시대 그 역사를 그대로 이어지게 하고 있다. 이승만이 ‘독재정치’라는 것을 국민에게 가르쳤다면 그 실행은 박정희가 했다. 그리고 독재국가의 병폐가 그대로 이어지는 것을 이어가기 위해 보수정치인들은 쾌거를 부르고 있는 중이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기 위해 지금 한국의 극우세력들은 독재정치 인들의 산물인 공안정치를 지금 이 순간에도 자행하려는 것을 보며 산다. 말만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며 말이다.


    세계적으로 분단된 국가는 오직 한반도 국민뿐이다. 통일될 수 있었던 좋은 시절 다 보내고도 모자라, 아직도 공안정치만을 앞세우려는 우익세력의 한국 정권과 피로 강산을 물들이겠다는 북한 정권이 독재란 어떤 것인가를 놓고, 독재자 아버지를 닮아가려는 남북정치인이 한반도에서 설치고 있는 나라뿐이다. 그 정치인들은 이산가족 상봉시키는 것에 대해 아주 크게 생색을 내고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 휴전 65년 동안 이산가족상봉이 지금까지 20회에 이르고 있다니 너무도 미미한 사람들이 상봉한 것 같다. 물론 이산가족상봉이라는 단어가 벌써 없어져야 했는데도 아직도 그 단어만 기다리고 있는 이산가족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서러운데 저 정치인들은 생색을 내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불쾌한 일이다. 그래도 남북 이산가족이 만나 울고 웃고 하는 것을 보며 가슴이 찡하다. 특히 결혼 6개월 지나 1950년에 헤어진 한국 이순규(85) 할머니와 북한 오인세(83) 할아버지의 재회를 보며 이념이 낳은 슬픈 씨앗을 맛보게 하는 것이 더 마음에 와 닿게 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로 가르는 언론, 정치, 교육과 사회인들의 그 심리를 어찌 이해를 하겠는가만, 자신의 명예와 영달을 위한 욕심이라면 칠판에 써 논 것 지우듯 단숨에 지워버리고 싶다. 제발 사람은 사람으로만 보라하고 싶다.

    ‘이산가족상봉’을 우리는 왜 진작 없애지 못한 국민으로 남아야 했는가.

 '새색시로 돌아간 할머니' 남측 이순규 할머니(왼쪽)가 북측의 남편 오인세 씨를 만나 미소 짓고 있다. (THE FACT)


  참고가 된 원문

http://news.tf.co.kr/read/photomovie/1594594.htm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236650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582444&cid=47322&categoryId=47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