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사항

광복 70년 발전된 한국과 퇴보정치

삼 보 2015. 8. 16. 12:02

    미국과 당시 소비에트 연방이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고를 울리면서 한국과 독일을 두 쪽으로 갈라놓고선 제국주의 습성을 잊지 못하고 쾌제를 부르고 있었다. 그것도 모른 이승만 정권은 미국으로부터 강냉이가루와 밀가루 그리고 분유를 받아오면서 국민에게 큰소리쳤다. 이것만이라도 얻어온 것이 얼마냐고! 허기진 국민의 배를 미국의 잉여농산물로 조금이라도 채웠으니 당연 감사해야 했다. 고로 정말 어려웠던 이들은 배급을 받아가면서 머리를 90도 각도로 하며 '고맙습니다!'를 두 번 세 번 하며 받아갔다. 더군다나 6.25 한국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더할 나위 없게 빈곤은 이어지고 고아와 과부들로 세상은 득시글거리고 있었다. 그 누가 만든 짓인가! 모두가 다 우리들의 탓 아닌가? 들쥐의 속성을 갖고 살았던 그 민족의 얇은 귀 때문 아닌가! 이념이 이렇게 무서운 것인지 모르고 공산주의를 따랐지 않은가! 물론 그 뜻은 지상낙원과 맞바꿀만한 뜻이 깃들어 있어 생각이 깊었던 이들도 "얼싸 좋구나"를 부르짖으며 따라갔다. 북조선을 향해서.


  하지만 김일성 집단은 남쪽에서 올라간 두뇌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자신들의 이념에 맞게 공산주의 정강을 마구잡이로 고치고 갈아서 자기들 뜻에 맞춰가고 있었다. 결국 배반을 당한 이들은 정신을 차리려고 했으나 시간은 많이 흘러버렸고 최후에 가야할 곳은 아오지 탄광 숙청의 길에 들어서야 했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김일성 가문의 왕조시대를 만들게 했지 않은가? 그리고 70년이 흐른 지금, 북한은 김일성 3대 세습에서 고모부를 기관총 사살시키고 있지 않은가! 고모는 어디로 갔는지 그 흔적도 없다. 이념의 덫에 걸린 한국의 실정을 이용한 우리 정부도 정치 후퇴에만 거듭하게 했지 않은가?


  강냉이를 얻어다 독재를 해온 이승만 정권이 물러간 후 기회를 노리던 친일의 혈청이 짙을 대로 짙어 감히 말로서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의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자 자그마치 5대에 걸쳐 독재정권을 이어가며 국민을 농간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민주화를 깡그리 파괴한 전두환과 노태우 두 괴물 같은 인물이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국가를 흔들며 장장 12년 간 국민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었으니 군사정치 3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강냉이가루 얻어다 독재정치 12년까지 합하면 광복 70년 중 42년을 독재에 시달린 국민의 정신이 올바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 28년 중에도 민주주의가 들어서게 한 정치는 겨우 10년 남짓이었다. 18년은 정권잡기에 눈이 어두운 이들이 또 한 번 국가국민을 기만한 세월이었다. 그 민주화에 들어선 정부도 국민의 생각과는 판이하게 다른 길로만 가려했다. 북한 김정일 정권에다 오만가지를 다 퍼다 나르곤 했다. 결국 북한은 우리 혈세까지 가져가서 2차는 물론, 3차까지 원자탄 실험을 한 것이다. 국민은 또 한 번 열화같이 불이 붙고 말았다. 국가 정치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그런데 경제는 세계 10강 대열에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 국민성이 워낙 부지런하니 그 성과가 얻어진 것이다. 부지런한 국민성이 뒷받침을 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경제성장은 가당치도 않을 일이다. 그런데 일부 국민들은 제 힘으로 일궈낸 경제 성장을 박정희 독재자에게 그대로 바치려고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없지 않은가? 그 일례로 멕시코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보다 월등히 앞서가던 1970년대 멕시코 경제가 지금은 어떤가? 게으름을 그대로 보여주는 민족은 상위권에서 물러나 있지 않은가! 박정희 같은 정치인이 멕시코에 없어서 그렇다고요? 할 말 없어진다.


  멕시코는 1946년부터 매 6년마다 평화적인 권력 이양이 이뤄지며 중앙집권제를 확립해 나가기 시작했다. 군부정치를 축소하고, 중립화에 기하면서 중남미 국가 중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된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었다고 본다. 해마다 6%p 이상 경제를 성장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경제 성장이 신통치 않은 것은 그 국민성에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물론 고산지대가 많고 더운 기후관계도 있지만 말이다. 특정한 정치지도자란 무엇을 뜻할 것인가? 독재자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디아스(Diaz) 같은 독재자도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초반 정치와 판이하게 달라진 1946년 이후 당시 경제는 정치가 안정적으로 이끌어 갈 때 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하는 말이다.


  어찌 됐건 한국은 지금의 상황을 제외하고 해마다 좋은 경제성적을 올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모든 것이 국민성이다. '빨리 빨리'의 성격을 이제 세계에서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 노동자들이 아직도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일을 많이 하는 나라임을 밝혀지고 있다. 일이야 많이 할수록 국가 경제에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좋은 것 아닌가! 그러나 일한 만큼 사용자로부터 제대로 받지 못하는 임금이 문제인 것이다. 그게 정권을 쥔 자들이 사용자 편에 붙어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게 놔두고 있기 때문이라면 아니라고 할 사람은 누가 될 것인가!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국민들이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월등히 많다고 한다.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것만큼 더 큰 복이 따를 것으로 본다. 그 모든 것이 경제의 뒷받침이 없진 않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빈익빈부익부로 가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세월이 흘러가면서 자살자들이 더 늘어가는 것은 왜 일까? 뭔가 부족해지는 현실을 만족하게 해 줄 수 있는 매개체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 정치를 보면 달라질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여전하지 않은가? 그것을 고쳐야 할 사람도 자신이다. 그 자신을 고칠 수 있어야 한국 정치가 바꿔질 것으로 본다. 좀 더 진지하게 자신이 갖추고 있는 국가 정치관을 들여다봐야 할 때라고 본다.


  다음은 JTBC 보도내용을 읽어본다.


477억 원.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즉 GDP 규모입니다.

세계 최빈국에 해당하는 초라한 수치였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GDP는 1485조 원을 기록했습니다.

무려 3만1000배 이상 증가한 수치로, 세계 13위에 해당합니다.

또 같은 기간 1인당 국민총소득은 67달러에서 2만8180달러로 420배 이상 뛰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활상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먼저 승용차수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광복 직후인 1946년엔 1천대 정도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575만대로, 1만5000배 이상 늘었습니다.

1944년 2555만km 정도였던 도로의 길이도, 지금은 무려 1억 641만㎞에 달합니다.

1980년대 초반 300명 정도였던 이동통신 가입자는 2012년 전체 인구수보다 많은 5235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된 이후 해마다 출국자수도 폭증해, 지난해에만 1608만 명이 해외로 출국했습니다.

 

이처럼 폭발적인 경제 성장 덕분에 한국인의 기대 수명도 크게 늘었습니다.

1970년엔 61.9세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20년 가량 늘어난 81.8세가 됐습니다.

이제는 고령사회를 우려할 정도입니다.

황무지에서 반도체와 조선업의 신화를 쓰는 등 우리 경제의 외형이 빠르게 성장해 온 이면엔, 어두운 그림자도 많습니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수가 1983년 8.7명에서 2013년 28.5명으로 급증했습니다.

또 빈부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도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JTBC;2015.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