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고 또 적다(積多)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케냐 방문을 보며

삼 보 2015. 7. 26. 06:01
만일 한국의 한 청년이 미국으로 건너와 유학을 하면서 미국 백인 여성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아 그 아이가 후세에 미국 대통령이 돼 한국을 방문했다면 그를 맞이하는 한국 국민은 어떤 환영을 할까? 그것도 한국의 모든 상황이 아주 열악한 시기에 이뤄진 것이라면 말이다. 아마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이 낳은 대통령이라고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지금도 한국의 한 학생이 미국 유수의 대학 ㅡ 아이비 ㅡ 에서 수석을 찾이하면 한국계 신문들이 가만 있지 않는 것으로 볼 때, 그의 한국 방문은 잔치기분을 낼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동아프리카의 케냐(Kenya)에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시니어가 2년 간의 결혼 생활 중 한 아이가 탄생하여 미국의 대통령으로 등극하였을 때  케냐는 한 때 잔치분위기로 휩싸였다는 것을 알게 했었다. 그가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아버지의 나라를 방문했으니 케냐 국민들의 환영은 극에 달했을 것처럼 술렁였으리라. 하지만 아프리카 동부지역은 소말리아를 근거지로 하는 알샤바브 등의 테러 위협에 노출된 상태라 크게 환영할 수도 없는 처지라고 한다.

 다음은 뉴시스 뉴스 일부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케냐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하면서 4박5일의 아프리카 순방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아프리카 순방이 케냐 등 아프리카 국가와의 경제적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나아가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양국간 테러리즘 대응 방안이 주요 논의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아프리카 동부지역은 소말리아를 근거지로 한 이슬람무장단체 알샤바브 등의 늘어나는 위협에 노출돼 있다. 알샤바브는 케냐 파병에 맞서 지난 4월 케냐 가리사대학교를 공격해 148명의 희생자를 내는 등 테러활동의 빈도를 높이고 있다.

이에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2006년 상원의원 시절 '친부의 나라'인 케냐를 방문한 적이 있지만 대통령 자격으로 케냐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이 공항까지 직접 나와 오바마 대통령을 맞이한 가운데 오바마는 자신의 이복동생 아우마 오바마의 포옹으로 환영인사를 받았다.

이후 오바마 대통령은 의붓할머니 등 케냐에 사는 친척들과 함께 만찬 시간을 가졌다.

이번 방문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개인사에 관련해 적극적으로 어필했지만 그는 사실 대통령 취임 전후 여러차례 케냐 친부인 버락 오바마 시니어의 부재에 대한 회한을 드러냈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버지를 마지막 본 것은 10살 때인 1971년 이었다. 하와이 대학에서 유학 중이던 아버지는 캔자스 출신 백인 오바마 대통령의 어머니인 스탠리 앤 던햄과 만나 결혼했고 슬하에 오바마를 두게 된다.

두 사람의 부부관계는 2년 만에 파경을 맞았고 오바마 시니어는 하버드 대학으로 유학, 아들 곁을 떠났다. 케냐의 경제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으로 고통받다가 46세인 1982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에 남다른 감정을 가진 케냐 국민들은 나이로비 거리를 가득 메우고 들뜬 분위기다.

국제위기감시기구 아프리카 지역 담당자인 E. J. 호겐도른은 "케냐 국민들은 오바마 대통령을 미국인으로 보지 않고, 케냐계 미국인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뉴시스; 2015.7.25.)


 만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외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는 하와이에서 성장을 하지 않고 케냐에서 아버지를 따라 성장했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생각해 보나마나한 상상일 것이다. 그렇게 사람의 생애는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말을 하고 싶다. 물론 케냐의 대통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지만 문화와 역사의 차이에 따라 세상은 다르게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영국의 식민지로 1888년부터 1963년까지 75년을 백인들의 생활에 졌어가며 살아온 역사에 비춰본다면 서방세계와 케냐가 멀리 떨어져 있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침략의 생활 중에도 계속 이어지는 케냐의 수많은 종족에 따라 문화와 환경이 다르게 성장했을 것으로 본다면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도 생각하게 만든다. 미국처럼 인권의 차이가 없는 나라에선 누구나 좋은 두뇌를 갖추었으면 쉽게 출세를 할 수 있지만 케냐 같이 하위와 고위 층으로 구분되는 사회에선 46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 아버지의 영향을 받기에 쉬었다고 할 수 없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버락 오바마 시니어가 케냐 공무원 출신이라고 해도 생을 일찍 마감했으니 말이다. 고로 출세를 하려면 모든 환경도 같이 따라줘야 한다는 것이다.

 케냐는 언어에 있어 하위계층은 스와힐리어를 주로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초등학교에서는 스와힐리어를 가르치고 말하지만 중등부부터는 영어로 모든 과목을 강의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대법원에서는 영어를 전용한다고 하며 상류층으로 올라갈수록 언어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5세 이상 문장 해독이 85.1% 남짓이며 특히 여성 문맹률이 높다는 것으로 나오는 것으로 볼 때 남녀 성차별 또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투표권은 남녀 모두에게 주워지니까 서방세계와 다르지 않다고 하지만 말이다.

 케냐의 우수한 두뇌를 가진 한 청년이 미국 하와이로 유학을 와서 한 백인 여성과 정분을 나누다 태어난 아이가 미국 대통령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으리라. 특히 생활의 안정을 찾지 못했했던 스탠리 앤 던햄(오바마 백인 어머니)을 보았을 때 더우기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두 연인들 사이에 태어난 한 남자 아이는 세계의 대통령이라고 불러지는 미국 대통령으로 탄생되면서 최초 흑인이 미국을 지배하고 말았다. 운명의 화신은 그 누구도 모른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