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고 또 적다(積多)

이런 보육교사들이 있어 사회는 살 맛 난다?

삼 보 2015. 3. 25. 05:15
얼마 전 인천 어린이 집 보육교사가 어린이 학대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원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결국 보육교사들의 설 자리가 아주 작아지고 있었다. 심지어 보육원 모든 교실 안에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국회에서 발의되고 있었으니 적잖은 사건임에 틀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보육교사로서 어린이를 학대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렇게 큰 비중은 아닐 것이 분명하다. 사회는 악한 이들보다 선한 이들이 아주 더 많기 때문에 유지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뉴스를 타고 나온 것을 본 누리꾼들이 들고 일어나면 보육교사 모두가 아이를 학대한 것처럼 죄인으로 변하고 만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사뭇 다르기에 사회는 이만큼 돌아가는 것 아닐까?

 노자께서는 악한 이를 두고 선한 이의 자료가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선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이들로부터 자신을 반영하여 스스로를 깨우치라고 한 말씀 아닌가! 공자깨서도 세 사람이 같이 가면 분명 그 자리에는 자신의 스승이 있다고 하셨다. 좋은 점이 있으면 배우고 나쁜 점이 있으면 자신을 자각시키라고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씀에 얼마를 우리 속에 두고 살 수 있다는 것인가? 쉽지 않으니 성인의 말씀으로 항상 우리 주위에서 맴도는 교훈이 되는 것 아닌가!

 울산의 모 보육원에서 24일 불이 난 데, 27명의 어린 아이를 1~2분 사이 보육교사들이 대피시키고 돌보는 아름다움이 눈길을 끄는 뉴스다. 다음은 SBS보도 내용의 일부다.


보육교사와 아이들이 놀고 있는 어린이집 교실 창문 너머로 불길이 치솟습니다.

원생 27명이 있던 어린이집의 주방에서 불이 난 겁니다.

어린이집은 곧바로 연기에 뒤덮였고 아직 걷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정옥순/보육교사 : 불이 꺼졌어요. 교실 불이. 그래서 '무슨 상황인가'하고 나와봤더니 저기 주방에서 불이 나서…]  

하지만 밖으로 나가 상황을 확인한 보육교사가 재빨리 창문으로 아이들을 대피시킵니다.

창문 밖에서는 보육교사가 놀란 아이들을 달래고, 다시 안전한 곳으로 데려갑니다.

대피에 걸린 시간은 불과 1, 2분.

소방관도 놀랄만 한 신속한 조치였습니다.

[울산 동부소방서 관계자 : 선생님들이 아주 대피를 잘했습니다. 보통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에이 그걸 왜 누가 못해?' 하지만 실제로 화재가 나면 정말 당황스럽고…] 

소화기를 이용한 초기 진화도 빨라, 소방차가 도착하기 전에 불도 거의 꺼진 상태였습니다.

잇단 어린이집 학대 사건에 보육교사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지금, 이들의 침착한 대처가 더 빛나는 이유입니다.
(SBS;2015.3.24. UBC 서윤덕 기자 )


 사회는 의인들이 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왜? 그야 자신도 그 의인의 성품을 타고 났으니까.
 그래서 맹자의 성선설을 순자의 성악설 보다 더 앞에 두고 긍정을 하는 것은 아닌지! 순자께서도 본시 성선설에 더 비중을 두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순자께서도 공자 철학을 그대로 따른 유교의 근원에 대해 말씀하시기에 인간 본성의 악을 죽이기 위해서는 예의를 갖춘 교육이 인간에게 필요함을 역설하신다.

 요즘에 와서는 그 악한 마음에 대해 분류하기를 인간이기 전에 동물의 근성을 지녔다는 것으로  세분화 시키는데, 그 당시에는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은 올바른 판단을 할 수도 있지만 그른 판단으로 악의 구렁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 인간아닌가?. 동물의 근성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강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그 자태를 달리 할 수 있음이다. 욕심은 동물의 마음을 들어내는 것이고, 그 마음을 억제하는 것을 인간 본성에서 나온 선의 양심으로 보는 것이 맹자 철학 아닌가! 그러나 순자께서는 그 본성의 악을 잠재우기 위해 꾸준히 예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찌됐건 우리 근본은 선을 바탕한 양심을 지닌 동물이기에 남에게 심한 행동을 했을 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잘 못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지 않는가! 이런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월등히 많아 우리는 웃음 속에서 살 때가 있는 것으로 본다. 내 자식이 사랑스러우면 남의 자식도 그 부모에게 있어 둘도 없이 사랑스럽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세상은 아주 순조롭게 잘 돌아 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느낄 때가 얼마나 많이 있겠는가! 내품 속에서 만들어 논 자식이니까! 그 동물적인 근원을 억제할 수 있을 때 인간의 열매가 풍성할 것으로 보인다.

 무슨 일을 하든 우리 본연의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울산 보육교사들 같이 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않을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