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을 열다

세계여성의 날과 유리천장 파괴

삼 보 2015. 3. 7. 09:44

     세계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여성들이 피해를 보는 이유는 미래를 위해 받아내야 할 자녀들과 가사문제 때문인 것으로 나온다.

   조물주가 아담을 만들어 놓고 인류를 번성하게 하기 위해 이브를 만든 이유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 대해서는 착안을 하지 못한 데서 발생하는 미흡한 조건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조물주께서 어찌 현대문명시대를 생각하기나 했을 것인가! 이제는 인간이 조물주를 능가할 것 같은 두뇌까지 작동시켜 하루 자고세면 또 다른 세상으로 가고 있음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그 두뇌는 여성들에게까지 그대로 이전되면서 남성을 능가하는 능률을 뽐내며, 사회에 다양하고 지극한 영향을 주며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는데, 생물의 번식 작용은 태고 적과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 현실의 걸림돌로 나타나는 것이라 해야 할 것이 있다. 후손을 낳으면 반드시 잘 성장할 수 있게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다.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아주 긴 시간을 할애해야하는 부담이 따른다.


   그러나 과거 동양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상이 끌어 내려오고, 서양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여성보호와 함께, 남성의 영역에 참여시키지 않으려는 남성 우월주의 사상들이 지금껏 삭제되지 않고 이따금 돌출하면서 여성들을 괴롭히고 있으니 그 투명한 장막에 부딪혀, 여성들의 흔한 눈물샘을 자극하게 된다. 미국도 여성의 참정권을 완전 인정한 것은 1920년이 돼서야 확실해진 것으로 본다면 이제 100년도 채 안 된 상태다. 유럽으로부터 전해온 여성 참정의 권리를 인정하려는 노력은 수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남성들의 권위주의(權威主義)에 밀려 투표조차 남편에게 일임하고 가사에만 종사하는 여성으로밖에 인정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면 그 당시 미국 여성들도 힘을 쓰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무능했다고 할까? 그만큼 권력을 휘두르는 남성 정치인들에 의해 희생을 당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지금도 미국에서 가사에만 전념하는 주부를 보고 ‘하우스 와이프(house wife)’라는 표현을 쓰든지, 자신을 소개 할 때 ‘하우스키퍼(house keeper)'라며 웃으며 말하는 습관을 볼 때 역사는 멀리 간다는 것을 이해하게 하지 않는가!


    ‘세계여성의 날’은 1908년 3월 8일 미국의 1만 5천여 명의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정치적 평등권 쟁취 및 노동조합 결성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날을 기념하여 제정한 날로,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2차 여성운동가대회에서 독일의 노동운동 지도자 클라라 제트킨의 제창에 따라 결의한 것이 시발점이다.

   고로 ‘세계여성의 날’은 세계적으로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해방이 됐다는 의미를 갖게 하는 것이다. 다음은 영국 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지가 세계여성의 날에 앞서 세계 여성들의 사회참여도에 대한 남녀 간의 격차를 조사한 내역을 상세히 보도한 연합뉴스의 내용이다.


여성의 사회 참여나 직장 내 승진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하는 '유리천장'을 점수로 매긴 결과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인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지가 8일 세계여성의 날을 앞두고 고등교육과 남녀 임금 격차, 기업 임원과 여성 국회의원 비율 등을 종합해 점수로 낸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100점 만점에 25.6점으로 조사 대상국 가운데 최하위인 28위를 기록했다.


이코노미스트지가 만들어 오는 8일 여성의 날에 앞서 내놓은 이 지수는 공인받지 않았으나 특정 국가 화폐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게 한 이 주간지의 '빅맥지수'처럼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OECD 28개 회원국을 9개 항목으로 조사한 결과 핀란드는 100점 만점에 80점으로 1위를, 노르웨이와 스웨덴이 공동 2위(73.1점), 폴란드(73.1점)와 프랑스(72.1점)가 4-5위를 차지했다. 평균은 60점이다.


한국은 꼴찌에서 두 번째인 일본(27.6점)에 이어 대부분 이슬람 신자인 터키(29.6점)보다도 뒤처졌다.

한국이 최고점을 받은 평가 항목은 평균임금에서 차지하는 순보육비 부문이 유일하며 이는 무상 의무교육 등의 덕분이라고 이 주간지는 풀이했다.

평가 항목 중 남녀의 취업률 차이로 볼 수 있는 '노동 시장 참여율 격차'는 한국이 22%로 터키(42.6%)를 제외하고 최하위였고 1위인 핀란드(2.5%)는 물론 평균(12.7%)보다도 차이가 컸다.


기업 이사회에서 여성의 비율은 2.1%로 노르웨이(38.9%)와 평균(16.7%)보다 크게 낮았고, 일본(3.3%)보다도 떨어졌다. 남녀 임금격차도 36.6%로 평균(15.5%)의 배에 이르렀고, 노르웨이(7%)와 비교하면 다섯 배를 넘었다.

경영대학원(GMAT)의 여성 비율이나 출산휴가 기간, 고등교육 비율 등도 최하위권에 머물렀다.(연합뉴스;2015.3.6.)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란 말은 1970년대 미국 여성들의 사회참여에서 남성들의 거대한 행보에 밀려 힘을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국의 경제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이 처음으로 1979년 여성 승진의 어려움을 다룬 기사에 등장한 것으로 나타난다.(두산백과)

   시사상식사전은 <다양성의 실현>의 저자인 마릴린 로덴이 만든 신조어라고 한다.


   또한 위키페디아(WikipediA)는 1979년 7월 휼렡 팩커드(Hewlett Packard)에서 근무하는 캐더린 로렌스(katherine Lawrence)가 출판의 자유에 대한 여성연구토론회에서 최초로 발설해서 언론매체 밖으로 소개된 것으로 논하고 있다. 당시 휼렡 팩커드는 여성에 대한 활동기회와 저작정책의 증진 사이 충돌의 진행토론의 한 부분을 설명한 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1984년 3월 ‘일하는 여성(Working Woman)'의 전 편집장이며, ‘가족 서클(Family Circle)’의 편집장이던 개이 브라이언트(Gay Bryant)가 뒤늦게 변천하는 직업을 설명하면서 널리 알려진 것으로 되고 있다.[The concept of glass ceiling was originally introduced outside of print media at the National Press Club in July 1979 at a Conference of the Women's Institute for Freedom of the Press by Katherine Lawrence of Hewlett Packard. This was part of an ongoing discussion of a clash between written policy of promotion versus action opportunities for women at HP.(WikipediA에서)]


    어찌되었건 유리천장이란 여성의 펼칠 수 있는 능력을 보이지 않는 투명한 틀로 남성들이 막고서 훨훨 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미국은 요즘 여성뿐 만이 아니라 소수계의 민족에 대해서도 유리천장에 가로막힌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사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유능하다는 것을 사회가 점차적으로 밝혀내고 있는 시점에서 볼 때 여성 인력을 잘 활용하는 것에 대해 깊이 있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조물주가 아담을 만들어 놓고 이브를 만들 때는 강력한 힘보다는 여리고 유약하게 해서 남성으로부터 도움을 받게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머리를 활용해서 힘을 적게 쓰고 많은 성과를 내게 하는 데는 큰 역할을 할 수 있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많다. 대체적으로 힘이 세면 우락부락하게 힘으로만 밀어붙이려고 하지만 여리고 약한 이들은 머리를 써서 보다 효율적으로 일을 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해도 인간의 힘은 그렇게 큰 차이가 날 수 없다. 고로 머리를 쓰는 동물인 것처럼 지혜를 바탕으로 해야 현실에서는 크게 앞서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능력이 막히는 데는 앞서도 말했듯 후세를 기르는 육아에서 남성보다 월등하기 때문에 걸림돌이 되고 만다. 결국 모성애가 그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물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니 꼭 장애라고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여성이 아이를 낳기만 해주면 남성도 잘 기를 수 있게 사회적인 조건이 돼있다고 한다. 결국 남성이 아이를 돌보는 집도 적잖다고 한다. 하지만 똑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부부라면 남성이 밖에 나가 일을 하고 여성은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 구분하는 것으로 나온다. 왜냐하면 남성이 육아휴가를 얻게 되면 승진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 후일 밀리기 때문이라고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우리들의 보편적인 생각도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회사에 공헌한 사람과 몇 년을 집에서 아이를 기르다가 회사에 복직한 사람과 같은 대우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현상이 바로 여성에게 주어지는 것 아닌가? 특히 여성들에게 바로 영향이 가게 될 것이다. 이 문제에서 볼 때 20대에 남녀 승진은 큰 차이가 없지만, 30대부터 남녀 승진은 급격한 차이를 보이고, 40대에서는 더 큰 간격으로 벌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여성의 회사 중역은 희박하다는 결론이 된다.



   그렇다면 제안을 해보자.

   후세를 위해 남녀 같이 기를 수 있는 틀을 주자는 것이다. 대신 업무를 집에서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는 회사가 돼야 할 것이다. 이젠 화상통화가 가능하니 집에서 육아를 하면서도 부부가 함께한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한다. 물론 부부의 회사가 동일하든 다르든 관계는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회사 업무는 연속적으로 집중해서 한 곳에서 해야 더 성과가 있다고 할 사람도 없지 않을 테지만, 잠시 다른 데에 손을 쓰면서도, 착상은 항상 회사와 같이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으로 본다. 육아를 하면서 회사 업무를 병행한다고 해도 투철하고 확고한 기획만 갖는다면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으로 사료하기 때문이다. 대신 항상 창조적인 사고를 갖출 수 있다면 크게 달라질 것도 없지 않을 것으로 인정한다. 대신 회사가 국가 미래를 위해 한 발 물러서줘야 할 일이다.

   결국은 국가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진다.


   지금 청년실업자도 많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청년실신’자들도 어마마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취직을 해서 잘 다니며 결혼까지 다 했는데 후세를 기를 방법이 없어 고생하는 부부가 있다면 회사는 특단의 조치를 취할 방법을 찾게 해야 되는 것이다. 꼭 단체생활을 하는 직장만이 중요한 회사가 아닌 것으로 해야 한다. 모든 생활이 전산 처리되듯 회사 업무도 가정에서 충분히 할 수 있게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기업의 특별한 비밀문서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서구에서는 이런 방법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아이들 유모차가 회사까지 쉽게 들어 다닐 수 있는 건물을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급하게 회사까지 가야 할 일이 생겼다면 유모차를 차에 실코 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두 부부가 동시에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하게 되니 한 쪽은 아이를 돌볼 수 있겠지만, 갑자기 변수가 생길 것을 감안해서 하는 것이다. 또한 후세를 돌보며 자유롭게 직장을 드나들 수 있다는 유토피아(Utopia)적 직장임을 자부하는 뜻에서 건물 자체에 장애자 시설과 함께 쓸 수 있는 입구를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본다.


   여성이 근 10 개월 가까이 자기 분신으로 영양을 주며 같이 호흡을 한 아이이기에 여성을 보호하려는 생각이 있다면, 그 분신까지 보호해줘야 여성은 안심을 하게 된다. 사회는 발전하는 것만 생각했지 여성의 심리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우쳐야 한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여성의 힘이 없었다면 굳건하게 서지 못했다는 것을 다 알면서도 여성의 깊은 심리를 이해하려 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여성이 없는 사회는 윤활유를 치지 않은 기관차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성의 활동은 그야말로 사회의 기름진 윤활유다. 그 윤활유에게 지금까지 함부로 했다면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즉 여성의 마음에 안정이 잡히지 않았다면 그 가정은 파괴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참아내는 것 또한 모성애의 연장선이다. 그래서 남성보다 쉽게 지치지도 않고 잘만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윤활유에 열을 가하면서 장시간 사용하면 서서히 윤활작용을 멈추게 하듯 점도가 낮아지면 파괴되는 것이다. 파괴되는 가정이 많아진다면 그 사회가 올바르게 설 수 있겠는가? 사회는 여성을 안정시키면 시킬수록 사회가 안정을 찾게 되는 것과 같다.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생명체는, 남편도 형제도 그의 부모도 아닌 결국 그가 품고 있던 그 아이다. 그 아이가 예쁘다고 해 줄 때 여성은 날아갈 듯 행복해하지 않든가!

   그 여성이 낳은 아이를 가장 원만하게 기를 수 있는 틀을 마련해 준다면 그게 여성에게 있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그래서 자신이 낳은 아이는 자신 옆에 두려는 욕망이 넘치는 것이다. 사회는 그 순간을 뿌리치거나 외면하면서 여성을 보듬으려고 하니 자꾸만 뒤틀리게 되는 것 아닌가! 모성애는 그 아이가 성숙해진 이후에도 계속 이어가며 죽는 그 순간에서야 놓게 되는 것이다. 그런 모성애를 누가 보듬어야 할 것인가? 사회다. 그런데 지금 사회는 입으로만 여성들을 보듬고 있다. 여성들은 지금껏 참아준 것이다. 더 이상 방치하면 터지기 마련이다.


   박근혜 정권과 국회는 잘 알아야 할 일이다.

   대한민국 엄마들은 지금 열이 나도 아주 단단히 나 있다. 박근혜의 공약남발 때문이다. 어린 아이부터 대학생을 둔 엄마들까지 모두 열이 난 상태 아닌가? 제대로 지켜진 공약이 단 하나도 없다.

   과거 박정희 독재정권이 경제를 살렸다고 큰소리 치고 있지만 절대 아니다. 대한민국 여성들이 없었다면 어림도 없는 소리다. 그런 여성들의 후예를 우리는 지켜야 한다.

   과거 엄마들은 알뜰살뜰한 살림으로 나라에 공헌했다면, 앞으로의 여성은 두뇌까지 바쳐 헌신할 것으로 안다. 그 영리한(smart) 두뇌를 활용하려면 사회는 여성들에게 양보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정부와 경제단체가 나서서 사회구조를 개선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줄로 믿는다.

   다름 아닌 여성의 모성애를 최대한 활용한다면 사회는 온전해질 것으로 믿는다.



하원 대변인 챔프 클락의 딸인 여성참정권 운동가 기네비브 클락, 1914년경.

그녀의 아버지는 수정 헌법 제19조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위키백과에서)



  참가가 된 원문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01&aid=0007449661&date=20150306&type=1&rankingSeq=1&rankingSectionId=102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811636&cid=40942&categoryId=31614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31489&cid=43667&categoryId=43667

http://ko.wikipedia.org/wiki/%EB%AF%B8%EA%B5%AD%EC%9D%98_%EC%97%AC%EC%84%B1_%EC%B0%B8%EC%A0%95%EA%B6%8C

http://en.wikipedia.org/wiki/Glass_ceiling

http://www.upkorea.net/news/articleView.html?idxno=39768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12994&cid=40942&categoryId=32179

http://www.womennews.co.kr/news/81445#.VPoOZ5V0x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