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생활

에볼라와 한국 의료대원 감염 의심?

삼 보 2015. 1. 3. 05:36

    에볼라바이러스(Ebolavirus)에 감염됐을 경우 치사율이 최고 90%에 이른다며 2014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에볼라! 아직 치료약은 물론 예방 백신조차 찾아내지 못해 세계를 두렵게 하는 에볼라! 세계 의료진들은 에볼라바이러스와 불꽃 튀는 사투를 벌리고 있는 중이다. 과연 그 전염병의 병원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2014년 3월 기니를 시작으로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나이지리아의 라고스 등 서아프리카 쪽 국가를 중심으로 무섭게 번진 에볼라(Ebola) 바이러스란 무엇인가?

   1976년 에볼라가 처음 발병한 이래, 1994년 아이보리코스트(Ivory Coast)에서 단 한 명만이 발병한 적이 있었다는 전례가 있었으나, 지난해처럼 대대적인 발병은 나타나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4년 발병된 1만6000여 명의 감염자 중에서 절반에 가까운 7900여 명의 사망자를 낸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그러나 WHO는 실제 사망자 숫자는 집계된 것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판단된다고 말하고 있다.

  

   치사율이 높은 에볼라 바이러스이지만 공기로는 전염되지 않고 감염자의 피, 땀, 침 등 체액이나 환자의 분비물, 그리고 몸의 조직과 감염자 접촉을 통해서 전염된다고 한다. 그러나 예방을 신중히 한다면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전염병의 정식 명칭은 에볼라출혈열이라고 명하고 있다. 필로바이러스(Filoviridae=일반적으로 말할 때는 Filovirus) 과(科), 에볼라바이러스(Ebolavirus) 속(屬)에 속하는 에볼라 바이러스는 처음 발견된 아프리카 콩코 민주공화국의 에볼라 강(江)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기 시작했다.

   감염된 사람의 체액은 물론 분비물과 혈액 등에 직접 접촉했거나 감염된 침팬지, 고릴라, 과일박쥐 등의 동물과 접촉했을 때도 감염이 된다. 지난해 시작된 에볼라 출혈열 발생 원인도 두 살배기 어린이가 속이 빈 통나무 속에서 놀다가 그 속의 과일박쥐로부터 바이러스가 옮은 탓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 이 아이는 2013년 말에 숨졌다고 중앙일보는 보도하고 있다.


  다음은 중앙일보 보도내용 중 일부이다.


에볼라의 초기 증세는 다른 전염병과 증세가 비슷하다. 이 때문에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즉각 파악하기 힘들다. 환자 가족과 주변 사람, 의사·간호사 등 의료 인력이 에볼라에 감염될 위험이 크다. 특히 의료진이 에볼라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개인보호장비(장갑·마스크·가운 등) 미착용 등으로 병원 내에서 감염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잠복기에는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는다. 환자의 체액과 접촉하지 않는 이상 일상생활이나 여행에서 감염될 가능성은 적다. 공기로 전파되지 않기 때문에 에볼라 환자와 같은 비행기나 배를 타고 여행했다고 해도 에볼라에 감염될 확률은 아주 낮다.


◇에볼라 증상과 치사율=감염 초기 증상은 열·두통·근육통·목감기 등으로 말라리아·장티푸스·콜레라 등 다른 질병의 증상과 비슷하다. 환자들은 38.3도 이상의 고열에 시달린다. 이런 초기 증상을 지나면 구토·복통·설사로 이어진다. 증세가 심해지면 전신에 출혈이 나타나면서 면역 체계가 파괴된다. 신장과 간 기능 장애가 발생하고, 백혈구와 혈소판 숫자가 줄어든다. 보통 2~21일(약 3주) 정도 잠복기를 거치게 되며, 본격적인 발병 후 1주일에서 10일 사이에 쇼크나 혼수상태, 출혈 등으로 사망한다. 뚜렷한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치사율이 아주 높다. WHO에 따르면 치사율이 25~90%에 이른다. 하지만 지난해 발병 사례를 보면 감염됐다가 다시 살아나는 환자도 있어 실제 치사율은 50~70% 수준이다.


◇에볼라의 예방과 치료=환자가 발생하면 철저히 격리해서 2차 감염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직 예방 백신이나 치료약도 아직 완전히 개발되지 않았다. 생존자들 가운데는 발병 즉시 병원으로 옮겨져 탈수를 막는 치료를 받아 살아난 경우도 많다.

지난해 발병 당시에는 에볼라 생존자의 혈액을 수혈해 치료한 사례도 있다. 서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 중 에볼라에 감염됐던 미국 의사 켄트 브랜틀리는 본국으로 이송되기 전 자신이 치료했던 14세의 에볼라 생존자 소년의 혈장을 주입받았다. 1995년 콩고에서 에볼라가 발병했을 때 이 ‘수혈요법’으로 환자 8명중 7명이 살아남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지맵(ZMapp)'’으로 불리는 에볼라 치료제가 사용되기도 했다. 이 약은 임상시험도 거치지 않고 브랜틀리 박사에게 투여됐다.(중앙일보;2015.1.2.)



   세계는 지금 에볼라바이러스와 치열한 전쟁 중이다. 한국도 그 전쟁에 참가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정부도 긴급구호대를 꾸리기로 했고, 에볼라전쟁에 참가한 것이다.

   2014년 12월13일 의사 4명과 간호사 6명 등 에볼라 긴급구호대 1진 10명은 영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12월15일부터 19일까지 이들은 영국 런던 근처에 있는 우스터 에볼라 대응훈련소에서 소정의 대응 훈련교육을 끝내고 12월 21일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도착했다. 22일부터 28일까지 현지적응훈련을 했다. 그리고 29일부터 시에라리온 수도 프리타운 인근의 가더리치 지역 에볼라 치료소(ETC)에서 본격적인 진료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그 10명의 대원 중 한 대원이 감염된 환자의 채혈과정에서 주사바늘이 세 장의 의료용 보호 장갑을 찢으면서 검지 부위를 스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다음은 경향신문 보도내용이다.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에볼라 환자를 치료하던 국내 의료진이 에볼라 바이러스에 노출됐다. 정부는 이 의료진을 독일로 이송·격리해 최대 21일의 바이러스 잠복 기간에 감염 여부를 지켜보기로 했다.

보건복지부와 외교부는 지난달 30일 오전(한국시간) 시에라리온 수도인 프리타운 인근 가더리치 에볼라 치료소(ETC)에서 긴급구호대 1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국내 의료진 10명 중 1명이 중증 환자를 채혈하는 과정에서 주삿바늘에 노출됐다고 2일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채혈하는 과정에서 환자가 몸을 움직이는 바람에 주삿바늘에 의해 3겹의 장갑이 찢어지면서 왼손 검지부분이 바늘에 닿았다”며 “현재 고열·구토 등 감염 증상을 보이지 않지만, 감염 위험성이 0%라 할 수 없어 의료계획에 의해 이송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료진은 미국의 에어앰뷸런스를 타고 3일 오전 독일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돼 오는 20일까지 감염 여부를 확인받을 예정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세계보건기구(WHO) 등의 협조에 따라 독일에서 최상의 진료를 받게 될 것”이라며 “이 의료진의 건강상태와 별개로 긴급구호대 2·3진은 당초 계획대로 파견될 것”이라고 밝혔다.(경향신문;2015.1.2.)



   만일 병원체 잠복기 최장기간 21일 동안이 지나서 이 대원에게 아무 이상이 없으면 고국으로 이송될 것이고, 천의 하나 발병이 된다면 독일에 남아 병이 완치될 때까지 치료를 받게 될 것이라고 한다.

   지금 세계 의료진들은 에볼라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한 몸이 된 것을 볼 수 있다.

   앨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1875~1965, 독일계의 프랑스 인) 박사가 1913년부터 아프리카의 가봉 공화국의 랑바레네((Lambarene) 밀림지역에서 열대병 병원을 설치하고 현지 흑인에 대한 의료 활동을 하며, 신학적이면서 철학적인 그의 사고를 음악과 함께하며 아프리카에 봉사정신을 심고, 세계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했던 슈바이처의 삶이 되살아난 것 같다.


   슈바이처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신학과 철학에 심취한 그는 스트라스부르크대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아프리카를 다녀온 프랑스 선교단체로부터 아프리카 생활고를 듣고 난 그는 의사가 되기를 결심한다. 그리고 1913년 모교에서 의학박사가 된다. 자신을 보좌해 줄 사회 활동가인 헬레네 브레슬라우와 결혼한다.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 오지로 찾아 나선 그들은 정치인들의 욕심에 굴복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가 됐다. 1914년 세계1차 대전에서 프랑스는 가봉을 점령했고, 1917년 독일 국적을 지닌 슈바이처는 전쟁포로까지 된다. 하지만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7년 이 지난 1924년 슈바이처는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와 크나큰 역경을 딛고 병원을 짓는데 성공한다. 1952년 노벨평화상의 상금으로 나환자병원을 설립하는 그의 아프리카 사랑은 남달랐다. 그는 90평생을 살았다. 그 평생을 살면서 병원체로부터 얼마나 많이 노출됐을 것인가? 그러나 그의 항체는 병원체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병을 고치는 의사들이 전염병 감염자나 환자를 두려워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세계 각지의 의료진들이 참가하는 에볼라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대한민국도 빠질 수는 없을 것이다. 기어코 승리를 해야 할 것 아닌가?



  연합뉴스에서



  참고가 된 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1021732331&code=940202&nv=stand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0102_0013391133&cID=10101&pID=1010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sid2=257&oid=001&aid=0007334398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27238&mobile&cid=51007&categoryId=51007#TABLE_OF_CONTENT1

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5/01/02/16410236.html?cloc=olink|article|default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16487&cid=40942&categoryId=34253

http://en.wikipedia.org/wiki/Filovirid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