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상 사

미.쿠바 국교정상화와 북한의 현실

삼 보 2014. 12. 19. 09:21

    미국의 턱밑에 자리한 쿠바를 바라보는 미국의 정치인들의 생각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후일 미국의 6대 대통령이 된 존 퀸시 애덤스는 1819~1825년 당시 국무장관을 지내면서 쿠바를 “스페인이라는 나무에서 떨어져나온 사과”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애덤스는 미국이 반세기 안에 쿠바를 병합해야 한다면서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게 만든 중력의 법칙이 있듯 정치에도 법칙이 있다”고 했다. 이런 생각은 쿠바를 바라보는 미국 정치인들의 인식을 대변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쿠바는 1511년부터 1898년까지 거의 400년간 스페인의 식민지로 하고 있었으니 미국이 침을 흘릴만한 땅 아닌가?


   결국 1898년 미국의 메인 호가 아바나 항에서 정박 중에 폭발한 사고로 인하여 발생한 미서전쟁(미국과 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이 패하고서 쿠바는 미국의 군정(軍政)으로 3년의 세월을 보낸다. 그리고 스페인의 마지막 식민지 쿠바는 사실상 미국의 보호령이 되고 만다. 1903년 미국은 쿠바의 관타나모만에 미 해군기지를 설치하고 쿠바 헌법을 수정해 내정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1920년대 미국 회사들은 쿠바 농장의 2/3를 소유하고 있었으니 쿠바 농경지는 미국 땅이나 다름없었다. 미국은 그로인해 1950년대 말까지 쿠바를 쥐고 흔든 것이다. 하지만 쿠바는 민주주의 회복, 경제적 독립, 사회 정의를 내세워 친미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 이 살디바르(Fulgencio Batista y Zaldívar, 1901년 1월 16일~1973년 8월 6일) 독재자를 축출해 낸다.


   쿠바 혁명(1953년 7월 26일 ~ 1959년 1월 1일)은 쿠바의 젊은 인권 변호사, 노동운동가, 군인이자 정치가, 공산주의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 (스페인어: Fidel Castro, 영어: Fidel Castro, 러시아어: Фиде́ль Алеха́ндро Ка́стро Рус, 1926년 8월 13일~), 이에르네스토 게바라, 라울 카스트로(Raúl Castro) 등의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두 차례에 걸친 무장 투쟁을 벌여 1959년 1월 1일 완수한 혁명을 말한다.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고, 1961년에는 그 혁명이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것을 천명한다. 이에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였으나 실패하고 만다. 이로부터 미국과 쿠바의 국교는 차단되고 쿠바에 있는 미국인들의 재산권은 산산조각난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53년이 지나 2014년 12월 17일에 다시 시작하고 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쿠바 혁명 때부터 1993년까지 쿠바의 독재정권을 피하고자 120만명의 쿠바인이 쿠바를 탈출한다. 지금 미국에는 200만 명 정도의 쿠바인들이 살고 있다. 지금 쿠바와 가까운 플로리다 주에 거주 할 정도다.

   바티스타 이 살디바르 독재자를 내보낸 이후 피델 카스트로가 또다시 독재를 감행한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독재 정권도 1989년 소련의 붕괴이후 소련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한다.



   쿠바의 군인이고 혁명가며 공산주의 정치가인 라울 카스트로(스페인어: Raúl Castro, 1931년 6월 3일~)는 2008년 제2대 국가평의회 의장에 선임이 된다. 그의 형 피델 카스트로가 국가평의회 의장을 역임할 당시 국가평의회 부의장과 국방장관을 역임했던 인물로, 쿠바 혁명에 참가한 혁명 1세대인 이가 미국과 국교정상화를 위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17일(현지시간) 장장 45분 이상 통화를 하며 최종 서명한 당사자다. 더 이상 쿠바가 경제난에 시달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오바마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갖고 양국 관계 정상화를 논의했다"며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는 체제 자주성과 국가 주권에 대한 편견이 없는 기반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미국은 그동안 쿠바 고립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했지만, 쿠바 정부가 자국민을 억압하는 명분만 줬다"며 봉쇄정책 실패를 공식 인정하고 말았다.


   이 두 정상이 서명하기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의 중재가 돋보인다. 미·쿠 국교정상화는 캐나다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중재 아래 바티칸에서 진행된 비밀회담의 성과로 알려지고 있으며,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의 업적 중 하나로 기록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까?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쿠바 정책을 수정한 논리가 북한에도 적용될 수 있느냐’는 물음에 단호히 “노”라고 답했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는 “북한은 쿠바와 달리 핵보유국 선언을 했고 미국과의 수차례 대화에도 신뢰를 구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바마의 쿠바 수교 선언이 임기 말 업적 쌓기의 성격이 강하다면, 북한은 단기간에 외교적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미국도 잘 알기 때문에 갑자기 정책을 전환할 가능성은 낮다.(경향신문;2014.12.18.)


   북한과 수교하고 있는 이란, 그리고 쿠바가 미국과 다시 국교정상화로 돌아서고 있다. 단지 북한만 고립된 상태로 봐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을 쿠바에게 했던 방식과 같은 동일방식으로 고립시킬 것으로 보는 것이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아무리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지만 쿠바는 가톨릭 국가다. 그러나 북한은 종교도 신앙도 없는 나라다. 단지 김일성 3대 세습에 충성과 같은 신앙을 갖는다고 해야 할까? 중재해주고 싶어도 중재해 줄 인물이 없다. 만일 있다면 엉터리도 없는 미국프로농구(NBA) 선수로 활약했던 데니스 로드맨이 있다고 해야 할까?

   물에 빠져도 지푸라기라도 잡을 것이 있어야 하는데 잡을 것조차 없는 나라가 북한이다. 거기에 옹고집에 독선과 독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라다. 붙잡아 줄 끄나풀이 전무한 나라이기에 아주 불쌍하다고 해야 할까?

써먹을 수조차 없는 원자탄 하나에 의지하려는 허무맹랑한 국가가 아닌가! 그 같은 민족이 우리와 총부리를 마주하며 겨누고 있으니 우리도 불쌍한 국가다. 북한은 앞으로가 보이질 않아 한동안 오리무중(五里霧中)을 거닐 것만 같다.


오바마·카스트로 “적대 청산” 동시 발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미국이

쿠바와 53년 만에 국교를 정상화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도 이날 국영방송 연설을 통해 양국 간의 국교 정상화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워싱턴·아바나

 | AP·AFP연합뉴스



  참고가 된 원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32&aid=000255492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2182225025&code=970201&nv=stand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2/19/2014121900310.html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2182115035&code=990303

http://news1.kr/articles/?2007149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2181521381&code=970201

http://ko.wikipedia.org/wiki/%ED%94%BC%EB%8D%B8_%EC%B9%B4%EC%8A%A4%ED%8A%B8%EB%A1%9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