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가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다? = 맞다. 1939년 스웨덴 변호사 E.G.C. 브란트는 국제 사회의 유대를 고취하고 군비 축소를 끌어내고자 히틀러를 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하지만 브란트는 나중에 '웃자고 한 일'이라며 후보 추천을 철회했다. 이 사례에서 보듯 노벨상 수상자 후보는 누구나 다 될 수 있다. (연합뉴스;20141.10.6.)
누구든 그 후보 명단에 오를 수 있다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잘 알려진 이들이나 그 명성에 따라 후보군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벌써 한 해가 다 가고 있다는 셈이다. 해마다 그 해 끝 무렵이 가까워지면 노벨상 후보가 밝혀진다. 벌써 수상자 명단이 6일부터 발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각 언론매체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명예에 오를 수 있는 노벨상이 발표된다. 대단한 석학들의 잔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살펴본다.
1866년 다이너마이트(Dynamite)를 발명한 알프레드 베른하르드 노벨(Alfred Bernhard Nobel; 1833.10.21.~1896.12.10.스웨덴 스톡홀름 출생)은 1867년 특허를 내고 산업발전에 잘 써지기를 바란다. 그는 1875년에는 무산화약인 발리스타이트(Ballistite=니트로셀룰로오스와 니트로글리세린 주성분의 무연(無煙) 화약)를 발명한다. 결국 돈 방석에 앉게 된다. 그러나 그가 죽기 전 그는 항상 슬픔에 잠긴 생활을 한다. 산업발전에만 써질 것으로 생각했던 다이너마이트가 전쟁무기로 둔갑한 것에 치를 떤다.
그가 죽기 전 세계 평화를 항상 입으로 되뇌었다. 그래서 노벨 평화상이 더 인기가 있는지 모른다. 그는 죽기 전 자신의 재산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상을 재정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나서 5년 후가 되는 1901년에 첫 노벨상이 수여된다.
당시 최소한 100만 달러 가치의 상금을 1부문 상금으로 고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마다 그 수익금은 차이가 났으니 상금액은 다르다고 한다.
영어로 Nobel Prize, 스웨덴 어로 Nobelpriset, 노르웨이 어로 Nobelprisen이라고 하는 이 상은 금으로 된 메달, 표창장, 그리고 노벨 재단의 당해 수익에 따라 상금이 주어진다.
본래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한 나라였다고 한다. 물론 노벨이 생존할 당시만 해도 그랬다. 그래서 그런지는 확실치 않으나 수상자 발표와 시상식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하지 않고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한다. 이 규칙은 노벨 생전에 원하던 바다.
또한 수상자에 대한 심사와 검열도 상의 부문마다 달리한다.
본 상은 5개 부문으로 구분 된다. 노벨 물리학상, 노벨 화학상, 노벨 생리(학) 의학상, 노벨문학상, 그리고 노벨 평화상이다.
노벨 경제학상은 본래부터 노벨이 만든 것이 아니라 노벨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으로 스웨덴 중앙은행이 제정한 상이며, '알프레드 노벨 추모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으로 명명된다. 이 상의 상금이 100만 달러로 책정이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마다 거의 비슷한 시일에 노벨 경제학상도 수여되고 있다 한다. 노벨 경제학상은 1968년에 첫 시상식이 열렸다.
노벨 물리학상과 노벨 화학상은 스웨덴 왕립 과학관이 담당하고, 노벨 생리 의학상은 카로린스카 의과대학교 노벨 총회에서 결정하며, 노벨 문학상은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노벨 평화상은 스웨덴이 아니라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가 상을 관장한다.
노벨상을 받은 이들이 현재까지 847명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 중 여성이 44명으로 대략 5%를 차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15명이 평화상 수상자인 것으로 비춰볼 때 여성 연구자들의 수상이 빈약하다고 생각하게 한다. 결국 남성들이 거의 휩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해서 대략 23% 정도인 유태인들이 노벨상을 거머쥐고 있다는 점도 주시해야 할 일이다.
노벨상 수상은 받고 또 받을 수 있다. 제한이 없다.
미국 물리학자 존 바딘(John Bardeen, 1908년 5월 23일 – 1991년 1월 30일)은 1956과 1972년 두 차례 노벨상을 받았다. 영국 생화학자 프레데릭 생거(Frederic Sanger;1918년 8월 13일~2013년 11월 19일) 박사가 화학분야에서 1958년과 1980년 두 번에 걸쳐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노벨상을 두 번 받은 이는 현재까지 4명으로 밝혀지고 있다.
노벨상은 한 부문에 한해 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능력에 따라 두 부문도 따로 받을 수 있다.
마리 퀴리(프랑스어Marie Curie) 또는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퀴리(폴란드어: Maria Skłodowska-Curie, 1867년 11월 7일 ~ 1934년 7월 4일)부인은 1903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남편 피에르 퀴리와 공동으로 받았고, 1911년에는 화학상도 받았다.
미국의 화학자 라이너스 칼 폴링(Linus Carl Pauling, 1901~1994)은 195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으며, 1962년에는 핵실험 반대 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노벨상은 취소되지 않는다. 노벨 수상자는 영원하다.
노벨상 규정에 노벨상을 수여한 수상자에 대해 어떤 이의도 달 수 없다고 판에 박았다. 그러므로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은 결정을 철회하거나 변경될 수 없다고 돼있다.
노벨상은 한 부문에 세 사람 이상에게 상을 수여하지 않는다.
20세기가 시작되는 첫 해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온 노벨상은 그동안 우여곡절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세계 최고의 상으로 명맥이 계속 이어가고 있다. 세계 영화인들을 위한 오스카상이 세계에서 으뜸이듯, 과학자들에게 있어서는 노벨상을 꿈꾸며 지금 이 순간에도 과학도들이 열심히 갈고 닦으며 그 두뇌의 한계를 넘어 힘껏 경주하며 연구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 전 수상이 무슨 부문 노벨상을 받았는가?
많은 이들이 평화상으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의 회고록으로 1953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회고록은 문학적 가치가 있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노벨상은 생존자에게만 주어졌다.
하지만 죽은 사람에게도 수여한 적이 있다. 살아생전 노벨상 후보에 올라와 있던 이가 수상 당시에는 고인으로 변했을 때는 그 유족을 통해서 수여했다.
캐나다의 면역학자이며, 세포생물학자로서 인체 내에서 면역체계를 활성화하는 수지상세포의 면역 활동 역할을 규명한 공로로 2011년 랄프 스타인만(Ralph Steinman;1943.1.14 ~ 2011.9.30.)이 생리 의학상 후보자로 올라와 수상자를 발표하기 사흘 전에 췌장암으로 사망하였다. 그러나 유족을 통해 상금과 메달 등이 전달됐다.
노벨상도 주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비평을 받는 일이 종종 있다. 하지만 철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한다. 그렇게 철저한 심사를 거치지만 실수라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노벨상 심사위원들이 히틀러 같은 이에게 평화상을 주자고 할 수 있겠는가. 단지 브란트 변호사의 위트적인 발상이었지 않겠는가! 군대에 들어가는 비용을 축소하려는 속셈이었다고 하더라도 노르웨이의 노벨위원회에서 심사를 했다면, 하나마나로 끝났을 것으로 믿는다.
히틀러가 유태인들을 대량 학살한 것만큼 그렇게 그가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면 지금쯤 그는 영웅 중의 영웅의 반열에 올라 있지 않았을까? 인간의 생각의 한계를 볼 수 있다는 증거다. 자신의 삶이 영원한 줄 착가하는 이들의 환상적 생각 때문에 히틀러 같은 삶도 보지 않는가!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은 일본의 물리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아카사키 이사무 나고야대 석좌 교수(85), 아마노 히로시 나고야대 교수(54), 나카무라 슈지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대 교수(60)의 이름이 노벨상 공식사이트에 올라와 있다.
참고가 된 원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422&aid=0000083565
http://ko.wikipedia.org/wiki/%EB%A7%88%EB%A6%AC_%ED%80%B4%EB%A6%AC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20941&cid=40942&categoryId=3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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