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야기

자연의 영혼과 함께한 잔뮤어, 그 후 100년

삼 보 2014. 11. 14. 10:03

    스코틀랜드(Scotland)에서 1838년 4월 21일 태어나 1849년 미국의 위스콘신의 포티지(Portage, Wisconsin)로 이민을 와 미국인이 된 잔 뮤어(John Muir)는 한 평생을 자연과 더불어 살다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 자연만 사랑하고 자연과 결혼한 이다.(1880년 늦은 나이에 존 스트렌쯜(Strentzel)의 딸과 결혼을 했다) 포티지에 지금도 ‘분수호수농장(Fountain Lake Farm)’이라고 불리고 있는 뮤어의 옛 집은 국립사적지(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승인됐다고 한다.

 

   특히 미국 서부에 있는 시에라 산맥(Sierra Mountains)이 펼쳐진 장관에 더욱 감명을 받았던 뮤어는 오랜 기간 요세미티(Yosemite)와 시에라 원시림들이 즐비한 곳에서 생활했다. 물론 엘로우 스톤(yellow Stone)과 그랜드캐니언(Grand Canyon)에 대한 지대한 관심도 많았지만, 원시림이 우거진 시에라 산맥에서 즐기기를 더 좋아 했던 것으로 보아진다. 그래서 그의 첫 저서도 ‘시에라에서 첫 번째 여름(First Summer in the Sierra)'을 먼저 저술하지 않았을까?

그는 22세에 위스콘신 메디슨 대학교(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에서 대학을 시작으로 완두콩에 대한 연구를 했다고 적혀있다. 후일 자신이 자연을 사랑하게 된 원인이 된 것이라고 집필에 부과할 정도로 처음 자연과 삶을 밀착시킨다.

 

   그는 1914년 12월 24일 생을 마감한다. 폐렴이 사망의 원인이었다. 아마도 과로에 의해 폐에 염증이 생긴 것은 아닌지.

   앞으로 육 주 뒤 그의 기일을 기해서 미국 서부의 로스엔젤리스(Los Angeles, CA)에 있는 UCLA에서 지리학자, 의회 의원, 예술가, 역사학자 그리고 자연환경 보호를 위한 정의의 지도자들과 대담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오늘은 Los Angeles Times가 그 내용과 함께 뮤어의 자연사랑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자연환경보호주의자인 잔 뮤어는 신비적 개화의 집필자로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가 캘리포니아(California, CA) 야생 자연보호구역에서 자연 찬양론자로 홀로 긴 여행을 진행하고 있었던 기간 동안 요세미티 국립공원 체제를 설립하기에 조력했던 것을 구하던 그 집필에 대한 말이다.

   첫 시에라클럽(Sierra Club) 회장을 지냈던 뮤어는 야생세계가 보존되고, 조종되며, 우선되어야 하는 방법에 대해 참고하고 인식하는 것을 구체화했다.

 

   그러나 약간의 비평가들은 그의 죽음 이후 뮤어의 수레바퀴제조인은 가버리고 말았다며 한 세기 동안 세상은 그에 대해 퍽 많이 변화 한 것을 논평하고 있다.

   그는 현대적 관련에 있어 보다 긴 세월의 사람은 아니다.

   “뮤어의 유산은 꼭 지켜가야 한다.”고 잔 크리스텐센(Jon Christensen) UCLA의 주위환경과 환경보존 연구소 역사학자의 말이다. 그는 또 “그것은 유용한 그 어떤 것 이상도 정말 아니다.”고 했다.

 

   크리스텐센과 다른 이들은 뮤어의 신념이 21세기 표면의 환경도전은 덤불의 수염 스캇(Scot)의 형상을 갖출 수 없었던 한물 간 형상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인구증가, 도시발전, 기후변화, 인구학의 변천에서

   뮤어의 최초의 자연에 대한 윤리는 자연보호구역이 사람들로부터 교란되지 않는 하나의 사원처럼 노여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퍽 많은 사람들은 때때로 그 자연의 청순한 맑음 속에서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교훈은 한 세기 동안 보존의 형성을 돕고, 안전하게 지키는 것은 성공한 세대들에 대한 보존지역이 해를 입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연에 대해 지대한 열정을 갖추고 있었으며, 우리가 우리 마음을 소중히 여기는 것만큼 이었다.”고 뮤어의 신봉자며 베이 에어리어(Bay Area) 저자인 메어리 엘렌 하니벌(Mary Ellen Hannibal)이 말했다.

   “그는 한 영혼 속에 경험하고 있는 자연의 직접적 체험과 탁월한 방법의 이념에 결속된 것이다.”라며 “약간의 방법들 속에 자연환경주의는 존 뮤어의 저편에서 움직여 갔다.” “그러나 그는 원시 자연의 일부와 앞으로 방해 받지 않는 쪽으로 움직이는 자연의 힘에 의하게 하려는 주어진 관념의 선두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좋은 이다.”고 했다.

 

  어쨌든 뮤어의 관념은 ‘자연보호구역의 대학들’ 안에 포함된 사람들 즉 요세미티 같은 지역 ㅡ 경외할 전언을 보냈다.

   영혼이 숨 쉬는 공원들은 가치를 구하고 있으며, 좀 더 작은 공간들의 지출에 스며들고 있는 중이다.

   뮤어의 자연환경의 통찰력은 경제적 특혜와 보다 더 고급화한 풍부한 여가선용 시간의 근본이 됐다고 논평했다.

   뮤어가 가장 사랑했던 시에라 산맥의 등산가 같은 이들이나 바위를 타는 등반 객들의 주장에서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도시공원의 창조에서 도시 도로와 야생지역에서 따라가기에 더 많은 이득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한다.

   많은 종류의 자연의 존재, 그것들이 말한다. 원시보호구역은 하나뿐이다.

 

 

John Muir is the patron saint of environmentalism, an epic figure whose writings of mystical enlightenment attained during lone treks in California's wilderness glorified individualism, saved Yosemite and helped establish the national park system.

As the first president of the Sierra Club, Muir shaped enduring perceptions about how the wild world should be prioritized, protected and managed.

But now some critics are arguing that the world has changed so much in the century since his death that Muir has gone the way of wheelwrights.

He is no longer relevant.

"Muir's legacy has to go," said Jon Christensen, a historian with UCLA's Institute of Environment and Sustainability. "It's just not useful anymore."

 

Christensen and others see Muir's beliefs as antiquated in the face of 21st century environmental challenges that the bushy-bearded Scot could not have imagined: population growth, urban sprawl, demographic shifts, climate change.

The debate boils down to Muir's primary ethic: The wilderness is a temple to be left undisturbed, so man occasionally can experience nature in its purity. That precept helped shape a century of conservation, ensuring that there would be unspoiled wilderness for succeeding generations.

"He had a huge passion for nature, such as we should all cherish in our hearts," said Mary Ellen Hannibal, a Bay Area author and Muir devotee. "He holds up an ideal of experiencing nature firsthand in a spiritual, transcendent way."

"Environmentalism, in some ways, has moved beyond John Muir," said Noah Greenwald, endangered species director at the Center for Biological Diversity. "But he was a good guy. He was at the forefront of the notion of setting aside portions of pristine nature and letting natural forces in them move forward unimpeded."

To Christensen and others, however, Muir's notion that immersing people in "universities of the wilderness" — such as Yosemite — sends the message that only awe-inspiring parks are worth saving, at the expense of smaller urban spaces.

 

Critics also say Muir's vision of wilderness is rooted in economic privilege and the abundant leisure time of the upper class.

Rather than accessing Muir's beloved Sierra Mountains as backpackers, skiers or rock climbers, they argue, Californians would benefit more from the creation of urban parks, additional roads and trails in wild lands.

Nature exists in many forms, they say. Pristine wilderness is but one.

 

Rethinking John Muir

사진 오른쪽에서 네 번째 긴 수염의 잔 뮤어, 그리고 왼쪽에서 네 번째가 시어도르 루즈벨트 대통령.(from LAtimes)

 

 

   저자 윌리엄 앤더슨에 따르면, 뮤어는 “땅과 우리가 하나 됨의 원형”이란 표현을 했다고 한다.

   그는 1903년 씨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이 뮤어를 방문하기 위해 서부로 달여 온 것을 뮤어가 레이몬드( Raymond)로 기차를 이용해서 여행하는 중 캘리포니아 오크랜드(Oakland, CA)에서 만나게 된다.

   그들은 요세미티 계곡에서 그릇된 주 정부의 개척에 대해 논평하고 더 이상 산림을 벌채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논의한다. 1906년 4륜 마차를 이용해서 루즈벨트 대통령은 요세미티를 방문한다. 그리고 산세들을 확인하고 자연의 소중함을 인식하게 된다.

 

   뮤어는 자연을 이따금 “집(Home)"으로 표현했다.

지금도 그가 답습했었던 ‘잔 뮤어 트레일(John Muir Trail)'은 미국인들에게 상세하게 알려지고 해마다 그 길의 일부를 따라 등반이 열리고 있다. 주로 요세미티(Yosemite) 국립공원과 킹스캐니언(Kings Canyon) 그리고 세쿼이아 국립공원(Sequoia National Parks)에 걸쳐 있다.

 

 

  참고가 된 원문

http://www.latimes.com/local/california/la-me-rethinking-muir-20141113-story.html

http://en.wikipedia.org/wiki/John_Muir

 

http://en.wikipedia.org/wiki/John_Muir_Tr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