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사항

박원순 서울 시장을 바꿔야 할까?

삼 보 2014. 3. 22. 06:25

     2011년 9월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에 나왔을 때만 해도 박원순(朴元淳; 1956년 3월 26일 ~ )의 인기도는 10%에도 오를 수 없을 정도로 미미했다. 그러나 그의 능력은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하면서, 민주당과도 단일화에 성공했다. 거기에 미미한 야권까지 단일화 시키더니 투표율은 48.6%에 지나지 않았으나, 단숨에 53.4%를 얻어, 새누리당 후보 나경원 의원의 46.21%를 가볍게 꺾고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됐다.

   그리고 그를 민주당에서 흡수하려했다. 민주당에서 그의 능력을 이해한 부분으로 본다.



   박원순은 대한민국의 변호사이자 사회운동가이며 지금 제35대 서울특별시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태어난 곳은 경남 창녕군 장마면 장가리이다. 일찍이 중학을 졸업하자 고등학교는 서울로 올라와 경복 고등학교에 지원했으나 아깝게 합격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듬해 경기고에 입학했으며, 1975년에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다. 1학년 재학 중 유신체재를 반대하다 긴급조치위반에 걸려 제명당한다. 후일 단국대학 사학과로 옮겨 1985년 졸업했지만, 그 사이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사법연수원 제 12기를 수료하고,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재직했다. 아주 짧은 기간 공직에 있었을 뿐, 1982년 변호사로 변신한다. 1986년에는 역사문제 연구소를 열었다. 그리고 1991년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시작하여, 미국의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에서 객원연구원으로 활동까지 하면서 내실을 튼튼히 다진 인재라 해야 할 것이다.



1995년에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를 결성, 소액주주 권리찾기 운동과 총선 낙천ㆍ낙선 운동 등을 벌였으며, 2002년에는 아름다운 재단과 아름다운 가게, 2006년에는 희망제작소를 만들어 각종 사회운동을 펼쳤다. 희망제작소 등에서는 '조직의 창의성을 높이고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나이나 직급이 방해되면 안 된다.'는 소신에 따라 상임이사라는 직함보다는 '원순 씨'라는 이름으로 불리길 원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박원순 [朴元淳]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당시 여권에서 그를 폄하하다 못해 흑색선전에 인신공격은 극을 달렸다. 그러나 진실은 거짓을 이기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별도의 준비기간도 없이 당선 다음 날(2011.10.27)부터 서울 시장 직을 수행해 나가면서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재건축 아파트 소형 평형 확대로 인해 2012년 2월29일 서울광장에 1500여명이 모여 시장을 규탄했다. 심지어 국토해양부 장관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주택정책은 친 서민정책이 아니다. 서울 서민을 결국 서울 밖으로 몰아내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35층 이상 아파트 건축도 허가가 나지 않고 있다.

결국 서울 생활을 접고 수도권으로 분산되고 있음도 본다.

   하지만 이런 정책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는 생각도 없지 않다.


   수도 서울로 집결한 인구 집중현상은 1960대 후반 서울 구로공단이 시작되면서 지방에서 이주 농가가 서울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결국 서울의 인구포화현상은 세계적 고민거리에 다가간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의 인구가 최고 1000만이 넘어설 때가 있었다. 그래도 계속 인구가 서울로 밀려오는 것은 지방과 교육, 상업, 교통 등 월등한 차이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북한과 적대관계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000만에 가까운 인구를 유지하고 있는 수도 서울과 북한 사정거리는 불과 50km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산에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것은 솔직히 두렵지 않은데, 서울에 113층 건물이 들어선다면 그날부터 서울시장은 발 뻗고 잘 수 없을 것으로 본다.

   쉽게 생각하면 미국 911 테러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서울에 고층 건물 재한하고, 넓은 평수 아파트 건설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 할 일은 아닌 듯싶다.



   박 시장이 잘하려고 하는 것은 시민들의 고충을 최대한 다 들어보겠다는 뜻이 있어 좋다. 이명박 서울시장 당시 청계천 복원, 서울광장 개장, 서울 대중교통 체계 개선 등에 기여하였다는 것이 눈에 들어오고, 오세훈 시장의 한강르네상스가 생각하게 할지 몰라도, 박 시장은 ‘전임 시장들이 하다 남겨서 사회적 논란이 됐던 각종 현안들을 푸는데 즐겼다’며 표현하고 있다.


   2년 5개월의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닌 사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도 서울 시립대 반값등록금을 만들어 냈고, 여러 가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 그를 시민들이 이번 6·4지방선거로 끌어내고 새로운 시장을 둔다면 그가 발 벗고 나선 2년 8개월이라는 세월이 헛될 것 같아 하는 말이다.

   물론 그가 아니라도 서울 시장을 할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 시민을 위해 최대한의 그의 열정을 받친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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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뒤쪽에 쌓여있는 저 서류들이 시장 실을 어지럽게 하는 것만큼 열심히 일했다는 증거 아닐까? 서울 시민들이 6월 4일 판가름할 일이지만 좋은 시장이 당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재발 정치에만 눈이 어두워 시장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할 사람은 피했으면 한다.




참고가 된 원문

http://media.daum.net/politics/newsview?newsid=20140321211506681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no=492679&table=sisa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38379&cid=2971&categoryId=2971

http://ko.wikipedia.org/wiki/%EB%B0%95%EC%9B%90%EC%88%9C#cite_ref-46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53&articleId=27416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4031813094691448&outlink=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