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사항

고 백남기 농민 사인과 서울대의사

삼 보 2016. 10. 4. 04:17

     한국 의사를 두고 두산백과는 먼저 “조선 말기인 1885년(고종 22) 2월 29일 서울 재동에 최초의 서양식 근대 병원인 광혜원(廣惠院)이 설립되었고, 1899년 지금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자리에 대한제국 관립의학교가 설립되어 의사를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고전적 의미에서 의사란 의료를 업으로 하는 사람을 통칭하였으나, 오늘날 한국에서 의사는 의료법상의 의료인의 일종이다.”고 적고 있다.

    의사는 쉽게 말해 병을 고치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의사의 역사를 두산백과는 다음과 같이 나열하고 있다.

   의사라는 직업이 발생한 것은 마법의술(魔法醫術)이 성행했던 때 병마를 쫓기 위해 주술을 했던 마술사에서 유래된다. 7000년 전 바빌로니아나 이집트에 이미 직업으로서 의사가 존재하였다.


   옛 중국에서 ‘德’라 하면 그 내용을 행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즉, 정자(正字)인 ‘醫’의 성립은, 아래 부분인 ‘酉’는 ‘酒’로서 약물요법을 뜻하고, ‘酉’를 제외한 윗부분은 용기에 들어 있는 날카로운 칼날을 손으로 잡으려는 상태를 나타내며, 이는 외과적 수술을 하거나 약물로 질병을 치료하는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醫’란 외과적인 수술을 하거나 약물로 질병을 치료하는 사람을 말한다.

   고대 바빌로니아나 이집트에서 의사는 마술사를 겸하였으므로 일반인에게는 두려운 존재였다. 그리스에서 의업은 자유업이었으며, 일정한 시설이나 경험이 있는 선배로부터 수업을 받았다. 이 때는 아직 전문분과는 볼 수 없었고, 의사는 1명이 전과(全科)를 겸하고 있었으며, 인격이 높고 학식이 뛰어난 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자유업이었으므로 한편으로 매약상인이나 사이비 의사가 횡행하여 그로 인한 폐해도 많았다. 중세에는 승의(僧醫)의 활약이 눈에 띄게 되고 승원의학(僧院醫學)이 발달하였다. 10세기경 아랍에서 개업의는 조합을 결성하여 서로의 권리를 유지하기는 했으나 의료의 내용은 과학적인 것은 아니었다.


   르네상스 이후 종교적인 의료가 쇠퇴하고, 과학적 의료가 급속도로 발달했으나 의료비가 비싸서 서민은 비용이 싼 비의사(非醫師)의 진료를 받는 것이 보통이었다. 13세기에 들어와 의사를 양성하는 대학이 설치되었다. 한 예로 1252년 파리대학이 설치되어 의사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18세기는 ‘의사의 사회적 지위의 황금시대’라 하는데, 이 때는 이상주의적 시대사상으로 인하여 의사들이 의업을 단순한 영리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천직으로 삼아 숭고한 이상을 지니고 환자에 접했다. 가정의(家庭醫)가 생긴 것도 이 시대였으며, 의사법이 제정되고 사회적 지위가 법적으로 확립된 것도 이 시대였다. 이 때까지 이발사 역할도 함께했던 외과도 의사의 정식과목에 추가되고 내과의와 외과의는 동등한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두산백과)


    머리를 자르는 것도 신체의 일부를 수술하는 것으로 알던 인류가 이젠 다르다. 그만큼 세상이 다르게 변하고 있다는 증거 같다. 그 반면에 인체에 대한 신비함을 더 알려주는 현대 의학에도 적잖은 문제점이 발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은 점차적으로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을 의료계에서 이어가려는 것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고로 인간의 수명은 날로 길어지고 있다. 하지만 혼수상태로 삶을 늘린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특히 뇌사(brain death) 상태로 있었다면 회생이 불가하지 않은가?

    서울대학교 병원의 고 백남기(1947~2016; 이하 고인) 농민 주치의 백선하 교수는 말한다. 생존당시 고인은 뇌사가 아니라고 발표한다. 다음은 경향신문이 보도한 내용의 일부이다.


   응급수술 후 환자의 의식 상태는 큰 변화가 없었고, 뇌간 반사 소실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수술 2-3주 후 신경학적인 검진에서 뇌간 반사는 여전히 없었으나, 통증에 대해 피하고자 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뇌 기능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2015년 12월 2일 뇌파검사 및 뇌전산화단층 촬영을 시행하였고, 뇌부종 및 전반적인 심한 뇌기능장애를 보였습니다. 이에 뇌사상태는 아니지만 지속적 식물상태에 부합하는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경향신문;2016.10.3.)


    그렇다면 고인은 회생 가능할 수도 있었을까? 그건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서울대병원 특별위원회(자체 설립)는 주치의 백선하 교수의 의견을 존중하여 병사로 된 사인을 바꿀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대신 특위 위원장인 이윤성 교수는 자신 같으면 외인사로 했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다음은 연합뉴스의 보도내용이다.

   백씨의 주치의인 백선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치료·진단서 작성 관련해 어떤 형태의 외압도 없었다"며 "의료인으로서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 기준은 환자의 생명과 건강"이라고 해명했다.

백 교수는 논란이 된 사망진단서를 자신이 불러주는 내용에 따라 전공의(레지던트)가 작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원회의 이윤성 위원장(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은 백씨의 사망진단서에 사망의 종류가 '외인사'가 아니라 '병사'로 기재된 데 대해 사망진단서 작성 지침에 어긋난다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사망 원인의 판단은 담당 의사 재량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급성신부전이 외상에 의한 급성 경막하출혈인 것은 맞지만, 주치의가 헌신적인 치료를 해 상태가 안정된 이후 합병증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병사로 기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통계청과 대한의사협회의 공식적인 지침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해명이다.


   통계청이 대한의사협회와 함께 발행한 '사망진단서 작성안내' 책자에는 "외상의 합병증으로 질병이 발생하여 사망하였으면 사망의 종류는 외인사입니다"라며 "질병 외에 다른 외부 요인이 없다고 의학적 판단이 되는 경우만 병사를 선택합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통계청은 이 책자에서 전신화상을 입은 이후 치료 중에 패혈증으로 사망했다면, 사망의 종류는 '병사'가 아니라 '외인사'라고 구체적인 기재 사례까지 들어 설명했다.

   이 위원장도 "만약 내가 주치의였다면 '병사'가 아니라 '외인사'로 기록했을 것"이라며 "외인사로 표현하는 게 사망진단서 작성 원칙에 더 적합할 수 있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그러나 지침과 어긋난 사망진단서 수정을 권고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 위원장은 "사망진단서는 의료기관이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작성하는 문서이므로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강요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당시 환자 가족들이 적극적인 치료를 원치 않아 체외 투석 등 치료가 시행되지 않았고 그것 때문에 사망했다고 봤다"며 "환자가 최선의 진료를 받은 후에도 사망에 이르렀다면 '외인사'로 표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 가족이 체외투석 등에 동의했다면 환자가 연명할 수 있었는데 해당 치료를 하지 못해 백씨가 사망에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유족들은 주치의 해명에 납득할 수 없다며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백씨 장녀 도라지씨는 3일 저녁 반박 기자회견을 통해 "사고 당일 이미 수술 불가 결론이 난 상태였는데 백 교수가 와서 수술을 하겠다 했다"면서 "백 교수는 '연명치료를 하다 보면 장기부전으로 돌아가실 것'이라면서 실제 벌어진 일을 그때 예상을 다 하셔놓고 인제 와서 '가족이 연명치료를 거부해 병사에 이르렀다'고 주장하시니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연합뉴스;2016.10.3.)


    백선하 교수와 고인 유가족 간 불협화음이 가져온 사인(死因)으로 변하고 있지 않은가? 수명연장을 위해 체외투석 등을 해야 마땅한데 유가족이 동의하지 않아, 사인을 물대포에 의한 외인사가 아니라 급성신부전증으로 변경시켰다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의사의 속 좁은 소견이 수많은 이들을 흥분케 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교 100여 명 학생들의 의견은 외인사로 배웠는데, 병사로 사인이 바꿔진 것을 두고 선배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365명 선배들도 외인사라고 배웠고, 그렇게 진단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백선하 교수 한 사람이 지금 의학계는 물론, 고인의 유가족과 사회단체 그리고 전 국민과, 아니 전 세계 의료진과 대항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니 외부세력에 의한 진단으로 인정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가슴을 펴서 슬픔 속에 있는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서울대학교 병원은 빨리 찾아내기 바란다.


서울대병원과 서울대 의대 합동 특별조사위원장인 이윤성 교수(왼쪽)와 고 백남기 씨 주치의였던

백선하 교수가 3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참고가 된 원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01&aid=000872472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0032207025&code=940100&nv=stand&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top2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33919&cid=40942&categoryId=31858

http://news.donga.com/3/all/20161004/80602567/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0031909001&code=94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