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사항

노벨문학상의 밥 딜런의 문학?

삼 보 2016. 10. 14. 04:14

      우리나라 음악계에서도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이 나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흐르는 아침이다. 이따금 대중가요를 즐기면서 가사들이 예와 다르게 많이 달라진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MBC에서 아직도 내려놓을 수 없는 시청률을 자랑하고 있는 복면가왕을 보고 있노라면, 화면 좌측 하단에는 항상 가사가 이어진다. 그 가사들을 다 기억을 할 수는 없지만, 시적 감상에 젖게 하는 글 내용이 있어 감탄할 때가 없지 않았다. 이젠 대중들 눈높이가 얼마나 높아져 가고 있다는 것인가! 곡의 섬세함만이 아닌 가사까지 영혼을 달랠 수 있는 경지에 닿아야 대중들 가슴을 열 수 있단 말이던가! 과거 한 번 듣고 웃어넘기던 대중가요와 판이하게 변해버린 우리 사고(思考)가 이젠 자랑스럽지 않는가! 대중이 원하는 생각은 영혼을 뛰어 넘을 판 이렀다! 세상이 변해가는 것 같이 노벨문학상의 스웨덴 한림원도 생각을 바꾼 것 아닐까?


    가수 밥 딜런(Bob Dylan; 원명은 Robert Allen Zimmerman, 1941년 5월 24일생~ )이 데뷔 54년 - 1집 앨범 1962년 - 이 돼, 역사상 처음으로 가수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경이로운 일이 발생했다. 밥 딜런은 싱어송라이터(Singer-songwriter)라고 한다. 싱어송라이터란 작사가, 작곡가 그리고 가수를 겸하는 것으로 자신이 부르는 노래를 직접 쓰는 사람을 말한다. 다른 면에서 작사가 겸 가수 또는 작곡가 겸 가수, 즉 작사와 작곡 중 어느 한쪽만 병행하는 가수도 싱어송라이터라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상식이라고 위키백과는 적고 있다. 어찌 됐던 작사와 작곡 그리고 노래까지 다 자기 것으로 소화를 시키는 딜런이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부터라 했다. 하지만 가수로서 밥 딜런의 가창력은 신통치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결국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림원은 밥 딜런의 가사에서 음유시인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 아니겠는가?


    그는 유태인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샤브타이 지셀 벤 아브라함’리란 이름도 가지고 산다. 그는 전 세계 1500만 명의 유태인의 생활과 다를 바가 없을 것으로 미룬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1960년대부터 비공식 작자와 저항음악의 대표로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의 음악 중 한국의 학생운동에도 영향을 준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그리고 "The Times They Are a-Changin'"과 같은 노래들은 사회상을 잘 보여주는 저항적 노랫말로 시민권을 대표하는 곡이 되었으며, 베트남 전쟁에 대한 저항의 표상이 된 음악이라고 한다. 그는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가 중 한명으로 꼽힌다고 위키백과는 적고 있다.

  출처;경향신문



    딜런은 10살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하니 노벨문학상을 받는 것이 과장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는 1959년 미네소타 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61년에 중퇴하였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우상인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를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간다. 뉴욕에 도착해 우디 거스리를 만나고 그리니치 빌리지 주변의 클럽들을 전전하며 연주하던 그는 유명 음반 제작가 존 하몬드의 눈에 띄어 콜롬비아 레코드를 통해 데뷔하며, 자신이 의도치도 않았던 저항 가수로서의 굴레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언론과 자주 마찰을 일으키게 된다.

    그는 시인이자, 그림도 그리는 화가이며, 극작가이며, 디스크자키로도 명성이 크다. 그는 1970년 대 아내와 이혼도 했다. 그리고 1980년대 초반에는 기독교로 개종하기도 했는데, 당시의 음악은 대부분 종교적 주제와 분위기를 내포하고 있다.


    그룹 'Steel Mill' 멤버 중 한 명이고, 2010년 제52회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솔로 락 보컬상을 받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엘비스 프레슬리는 우리의 몸을 열어주었지만 딜런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었다"고 말할 정도로 딜런은 대중들의 가슴을 열어준 가수라고 해야 할 것 같다.

    2016년 한림원은 “위대한 미국 음악의 전통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고 하며, 딜런의 문학상 수상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했다고 한다. 사라 다니우스 한림원 사무총장은 ‘소설가도 아니고 시를 쓰지 않은 지도 오래된 딜런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오래 전 호메로스같이 시적인 텍스트가 있었으며, 악기와 함께 연주되고 공연됐다”면서 “딜런도 마찬가지이며 그는 대단한 영어 시인”이라고 했다.

    나무위키는 “문인이 아닌데 노벨문학상에 선정된 경우는 역사학자 테오도르 몸젠, 정치인 윈스턴 처칠,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장 폴 사르트르가 있지만, 이들은 기존의 문학이라고 생각되는 범주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었고, 가수로서 이 상을 수상한 것은 밥 딜런이 처음이다.”고 적고 있다.


    77억 세계 인구 중 유태인의 노벨상 활약은 대단하다. 그들은 과학계와 경제계만이 아닌 문학계까지 휩쓸고 있다. 물론 이들의 상상력은 영화까지 섭렵을 하며, 응용능력에 경제적 수익성까지 가미하고 있어, 현재 미국의 대략 500여개 크고 작은 영화사까지 소유할 정도의 대단한 저력을 지닌 유태인들의 두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유태인들의 대중을 상대로 한, 대중으로부터 받아내야 하는 유의점이 어디서부터 나왔을 것인가? 유태인은 1945년 이후 건설한 이스라엘 땅에서 빛을 내기보다, 세계 각처에서 숨 쉬며 살아가면서 세계최고를 경신하는 힘을 또 보고 있다. 그 원조들의 절박한 관념이 만들어낸 소산이 아닐까?


  밥 딜런  출처; 금강일보


 참고가 된 원문

http://www.sedaily.com/NewsView/1L2OHWTHWX

http://www.gg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10917

https://namu.wiki/w/%EB%B0%A5%20%EB%94%9C%EB%9F%B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0132319005&code=96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