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을 열다

폭염에 녹조 기량제라도 지내야?

삼 보 2016. 8. 22. 05:20

      한국은 금년 7월 하순부터 8월 평균기온이 거의 매일 같이 평균 섭씨 35도를 유지하고 있지 않았는가? 최고 기온이 39.6도까지 오른 곳도 있었고 서울도 어제 36도를 넘었다는 뉴스였다. 낙동강은 식수로 써야 할 저수지까지 녹조로 물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 원인과 이유는 4대강을 인공적으로 긁어낸 것 때문으로 알고 있는지 오래다. 그러나 이명박근혜에 홀딱 반한 인물들은 그 강바닥을 긁어냈기 때문에 그나마 홍수피해를 덜 주었다는 핑계를 댄다. 홍수가 질만큼 많은 비가 왔을 때 4대강까지 물이 내려가기도 전 시내 곳곳에 물난리가 나서 집들이 침수되고 피해가 극한으로 늘어난 뉴스도 보지 않은 이들인지, 아니면 옳은 말에 토를 달아야 하는 억지주장꾼들의 발악인지 모른다. 어쨌든 나라가 온통 뜨겁게 달구는 폭염과 물이 온통 녹조로 물들어간다는 뉴스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지금 이런 글을 짓는 것이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역대대통령은 기우제(祈雨祭)를 들인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지방에서는 고유 풍속인양 기우제를 들이고 있는 뉴스들이 종종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기우제를 들인다고 100%p 비가 내리지는 않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 기우제를 들이고 비가 내린다면 그 동리 주민들은 기우제 덕분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의심도 해본다. 그러나 첨단과학시대에 있어서 어림도 없는 해석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첨단과학 시대라고 하지만 기상청 예보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태도가 역력할 때도 적잖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실수가 왜 없겠는가? 자연의 광활하고 거대한 움직임을 예상과 다르게 적중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할 것인데도, 오차가 심하기 때문에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지난주에 선선해질 것으로 예보했던 것이 전혀 맞지 않고 서울 같은 경우는 금년 들어 수은주가 최고를 경신했으니 더욱 신뢰가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더위도 1주일을 넘기면 참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물론 냉방시설이 잘 된 회사 건물 안에서 근무하는 이들이야 그 상황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냉방이라고는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직업을 가진 이들은 아주 다른 것이다. 한낮기온이 섭씨 35도이면 체온과 거의 맞물리기 때문에 숨이 턱에 차게 마련이다. 그 온도에서 좀 더 내려간다고 해도 30도의 온도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게 마련이다. 밤이라도 시원해야 할 것인데 열대야가 계속된다면 부처님도 짜증을 부릴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뜨거운 더위 속에서 일하는 이들은 더위를 이기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들이 이따금 냉방시설이 된 곳에 들어가 더위를 식히고 나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도 있을까? 먹고 사는 것이 이만큼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지천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없다면 대한민국의 한 축이 멈추고 말 것이다. 그래도 대한민국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더운 날씨는 정부 책임은 아니라고 할 것이지만, 어쩐지 올바른 해답만은 아닌 것 같다.


    기우제와 비교 한 번 해보자.

    우리 선조의 기우제는 농업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물론 수리시설도 온전치 못해 물을 끌어올 수도 없었기 때문에 자연이 주는 비가 아니고서는 해결 할 수 없었으니 하늘을 향해 비를 내려달라고 간절하게 빌었던 것이다. 그 간절한 마음들만큼 비가 오면 그 다음해에도 또 비가 오게 해 달라고 기원한 데서 기우제가 있었을 것이다. 그 때마다 임금은 ‘자신이 덕이 없어 하늘조차 냉정하게 한다.’는 것으로 이해를 했던 것 같다.

    기우제의 역사라고 한다면, 단군신화의 환웅이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내려 왔다는 기록에서부터 엿보인다고 한다. 삼국시대에는 삼국이 각각 시조묘·명산대천 등에 기우제를 올렸던 기록들이 <삼국사기>에 비춰지기도 한다.


    고려시대 기우제는 국왕 이하 사람들이 근신하며 천지·산천·종묘·부처·용신님께 제를 지냈다는 표현이다. 당시 불교에서는 비가 내리도록 비는 법회(法會)도 열렸고, 노자(老子)를 기원하는 도교는 태일(太一)에 초제(醮祭)도 올렸다고 한다. 물론 잡신을 많이 믿던 때이니 전국 무당을 모아 비가 내리도록 비는 취무도우(聚巫禱雨)의 기록이 있어, 많을 때에는 300명의 무당으로 길게는 6일씩, 흙으로 용을 만들고 비가 내리도록 빌었다고 한다.

    국왕은 시원한 정전을 피해 밖에서 정무를 보았으며, 음식 반찬의 가짓수도 줄였다고 한다. 이것은 나라에 가뭄이나 홍수 등 천재지변이 있는 것은 국왕이나 조정의 대신들이 덕이 없어 정치를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한 때문인 것이다. 심지어 백성들조차 해를 가리는 넓은 모자는 물론 부채질까지 삼가게 했다고 하니 국가의 왕부터 시작해서 저변의 국민들까지 합심하여 비가 내려줄 것을 기원했던 것이다.


    이씨 조선시대에도 기우제는 잦아, <조선왕조실록>에 기우제가 음력 4월부터 7월 사이 연중행사로 알고 살았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태종 재위 18년 동안 기우제는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기록이 없는 해는 1403년(태종 3), 단 한 해뿐이라 하니 그 때도 가뭄은 국가와 국민을 괴롭히고 있었다. 반대로 이 18년 동안 날씨를 맑게 해달라는 6번의 기청제(祈晴祭) 기록도 있어, 이는 장마철인 6∼7월 사이에 행해졌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적고 있다.


    기우제는 비를 오게 해달라는 것이고, 기청제는 날씨를 맑게 해달라고 원했던 제사지만, 날씨가 서늘하기를 바랐다는 기량제(祈凉祭) 같은 말은 없는 것 같다. 아마도 2016년 같이 더웠던 날씨는 과거에 없었지 않았을까? 아니면 더위는 농사에도 보탬이 돼서 그랬을까? 그런데 금년에는 폭염으로 배추도 사과도 값이 폭등하고 있다는 뉴스도 있다. 벌써부터 추석 걱정을 하고 있는 언론들도 보인다.

    얼마나 태양이 강렬했으면 사과가 해에 거슬려 시커멓게 타고 들어가 멍이 들었다고 한다. 벌서부터 농민들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추석 명절에 제사상에 올릴 사과가 멍이 들었다며 울상을 짓는 언론보도가 있어 생각해본다. 그저 자연이 주는 대로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면 될 것 아닌가? 물론 좋은 과일 좋은 음식을 제상에 올리는 것을 미덕으로 하는 한국 풍습을 어기라고 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그냥 자연이 이렇게 만들었는데 어찌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금년에 많이 돈을 벌어들인 이들은 조상님께 비싸고 좋은 음식을 올릴 것이지만, 못 벌고 가난하다면 그만큼만, 아니 그 만큼 중 최선의 것을 추려서 올리며 기원하는 것이 도리 아닐까? 없는 상황에서 빚을 내서 제상을 차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늘이 내려준 그해의 것만큼만 정성을 다하는 것은 떳떳하고 당당한 일이지 않겠는가? 금년 추석 제상의 가치가 금년에는 얼마의 돈으로 환산될 것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게 뭐에 필요할 것인가? 평소 한해의 성과에 대한 가족사적인 보고(report)가 추석명절 차례상이 되는 것 아닌가? 적게 벌었으면 적게 번 것만큼만 보고를 하는데, 조삼님들이 뭐라고 하실 것인가? 그저 뜨겁고 엄청난 폭염 속에서도 살아 숨 쉬는 자손들이 건강하게 살고 있다면 죽은 귀신들도 감사하다고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정말 뜨거운 한국의 폭염 속에서 모든 이들이 참으로 큰 고생을 하며 잘 견뎌준 것은 모두 서로에게 감사하며 응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저 죽지 않고 살아준 자신들에게 말이다. 각자 자신의 마음속으로 기량제(祈凉祭)를 들이며 금년 여름을 마감하는 것은 어떻소이까? 고국이 평안하다는 소리가 언제나 들릴지....


폭염피해에 과일값 폭등 \'추석물가 비상\'



  참고가 된 원문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743276&plink=ORI&cooper=NAVER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51414&cid=46670&categoryId=46670

http://news1.kr/photos/view/?2091262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6081420155785183&outlink=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