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을 열다

국회 독도방문단과 위안부 10억 엔

삼 보 2016. 8. 14. 03:44

      광복절을 맞아 독도 방문을 계획한 여야 국회의원들의 생각은 참으로 갸륵했다. 그런데 13일 일본 정부는 우리 측에 항의 의사를 전달했다는 뉴스이다. 하지만 의원들은 독도 방문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니 의연하지 않은가?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주일 한국대사관 이희섭 정무공사에게 전화를 걸어 “다케시마(竹島·일본의 독도 명칭)의 영유권에 관한 우리나라의 입장에 비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매우 유감이다.”라는 뜻을 표명했다고 주일 한국대사관이 전했단다. 건방진 일이다. 한국 땅을 한국 국회의원들이 가서 돌아보고 오겠다는 데 왜 아우성인가! *오지랖이 넓다!


    이번 독도 방문 단장은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이다. 연합뉴스는 나 의원이 "우리 영토에 가는데 일본의 이런 항의는 어이가 없다"면서 "예정대로 독도를 방문해 단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는 보도이다.

    독도 방문은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을 비롯해 성일종·강효상·김성태·이종명·윤종필 의원과 더민주당 김종민, 황희 의원 그리고 국민의당 장정숙 의원이 참여하며, '국회 독도방문단'은 오는 15일 독도를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만이 아니라 정부 요원들이 나서서 독도를 방문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싶다. 우리 땅에 우리 요원들이 방문하여 우리 땅인 것을 세계에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인은 감히 독도를 방문할 수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려야 한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

    공자(孔子)께서도 “그 말에 앞서 행동하고, 그 뒤에 말이 실행한 것을 따라야 한다[先行其言 而後從之].”고 하셨다. 행동 없는 말은 참사람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일본 땅에서 독도를 자기들의 땅이라고 해보았자 허위라는 것을 우리는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입만 살아 우리를 감정에 치우치게 하는 일본의 만행에 우리는 직접적인 행동으로 세계를 일깨워야 세계가 함께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과발언조차 할 수 없다는 저들의 비굴한 행동도 가르쳐줄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일본은 곧 10억 엔을 박근혜 정권에 보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 돈은 보·배상이 아닌 위안부 재단 출연금으로 언급하며 사람들에게 감정을 사게 한다. 죽어도 머리는 숙이지 않겠다며 일본은 과거 태평양전쟁을 합리화하려는 처세인 것이다. 마치 일본제국주의가 영원하다는 것을 강조라도 하는 것 같이! 겨우 10억 엔(대략 108억 원 상당) 내놓으면서 생색은 다 부리고 있다.

   한국에 있는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상 철거를 전제조건으로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저들과 합의된 확실한 문장은 없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 외교부가 확고부동한 외교문서를 적지 못한 것에 국민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세계로 위안부 상은 하나 둘 더 늘어나고 있어도 일본은 그때마다 꿈틀거리기는 해도 특이한 대처는 할 수 없다. 호주 시드니에도 위안부 상이 들어섰다. 물론 일본이 항의를 하지만, 우리의 갈 길은 가야 한다.

   지난 8월 6일 시드니 크로이던 파크의 한인회관 앞에서는 시드니 평화의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주도로 호주 사상 처음이자 북미 외 지역 최초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열렸다고 뉴스1은 보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말로만 떠들지,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저들이 머리를 숙이고 들어와도, 그들 선조들의 악랄한 전쟁역사는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그 후손들이 더 이상 전쟁의 꿈을 꿀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과는커녕 머리를 빳빳하게 들고 10억 엔을 우리게 건네면서 위안부 재단 출연금이라는 명목으로 나서려고 한다. 저들의 꼼수에 우리는 접어들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한국은 앞으로 고위관계자들이 이번 '국회 독도방문단'같은 행동을 해야 한다고 본다. 말보다 행동을 앞세우는 외교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일본은 우리와 외교관계를 절대로 끊을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는 것도 알아야 할 일이다. 말만 앞세우는 인물들은 거의 다 행동을 앞세우는 이들의 밑에 서기 때문인 것이다.


* 오지랖

‘오지랖이 넓다’는 말을 오늘날에도 종종 쓴다. 그런데 이 말이 그다지 좋은 뜻은 아니다. 옷의 앞자락이 넓으면 몸이나 다른 옷을 넓게 겹으로 감싸게 되는데, 간섭할 필요도 없는 일에 주제넘게 간섭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그런 사람에게 ‘오지랖이 몇 폭이냐?’고 비아냥거리며 묻기도 한다. 그런데 오지랖이 넓다는 것은 가슴이 넓다는 말이다. 즉 남을 배려하고 감싸는 마음의 폭이 넓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오지랖이 넓은 것이 미덕이다. 다만 그것이 지나쳐서 남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귀찮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때, 이를 경계하여 ‘오지랖이 넓다’고 하는 것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오지랖




6일 호주 시드니 한인회관 앞마당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89) 할머니가 소녀상

옆에 앉아 있다. 사진=연합뉴스


  참고가 된 원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sid2=269&oid=001&aid=0008611022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69470&cid=50802&categoryId=50812

http://sunday.joins.com/archives/133542

http://daily.hankooki.com/lpage/society/201608/dh2016080619164813778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