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을 열다

朴의 우간다 외교와 새마을운동

삼 보 2016. 5. 30. 06:18


    

    아프리카하면 우리에게 그렇게 호의적인 인상을 갖지 못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아프리카도 이젠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지금 박근혜의 국빈 방문 중인 우간다만 하더라도 1890년부터 영국 식민지로 되면서 영국의 문화를 접하였기 때문에 영어를 공용어로 쓰지만, 그 이전에는 우간다어와 스와힐리어 등 토착어만 썼을 거다. 아무래도 영어를 구사하는 국가이니 많은 개혁이 따랐을 것으로 미룬다. 하지만 국민개인소득은 년 400달러를 웃돌지 못하는 국가로 보았을 때 빈곤 국가이다. 거기에 정치까지 오래도록 독재국가로 인정하는 나라이다 보니 발전의 기미는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한이 아프리카 국가 중 우간다에 1988년 12월 군사기술 및 훈련 협정을 맺고, 50여 명이 군·경교관단을 파견시키고 있었다. 29일(현지시간) 요웨리 무세베니( Yoweri Kaguta Museveni;1944~) 대통령이 북한과 군사, 안보 경찰분야에 대한 협력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으니 북한으로서는 언짢은 소식이 될 것이다. 언론매체들은 50여 명의 북한 군·경교관단이 철수할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소득은 무엇이 있을 것인가?

    무세베니의 30여 년 독재정치가 말해주듯 정치적으로 해맑지만 않을 것으로 믿는다. 무세베니는 1986년 1월 대통령 자리에 올라, 친서방정책을 통한 경제부흥에 힘을 쏟았지만, 정당설립 금지를 합법화하는 헌법을 공포한 독재자다. 1996년에는 정당 없이 실시된 총선에서 당선되며, 우간다 최초의 직선 대통령이 되었지만 독재정권은 2001년 재선에 이어, 2005년 독재 개헌으로 3선에 당선되기 위해 대통령 제한조항을 삭제한다. 2006년 선거에서 다시 당선되며 승승장구 2016년 2월 5선에 당선하여 계속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무세베니는 한국 박정희 군부독재자의 열광적인 팬이다. 고로 새마을운동도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2013년 한국을 방문하여 박근혜와 좋은 인연도 갖추고 있다.

    2006년 6월엔 무세베니 반대 세력인 아콜리족 200만 명을 강제수용소에 수용했다. 이 사실이 세상에 밝혀지면서 국제적으로 강렬한 비난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고로 무세베니는 박정희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김일성도 아주 좋아한다. 1980대부터 1990년 대 사이 북한을 세 번 왕래하며 김일성과 함께 한 독재적인 인물이다.

    국가는 우간다 민주공화국(Republic of Uganda)라고 부르지만 마치 북한과 같은 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나라이다. 이번 5월12일 무세베니의 대통령 취임식 때도, 수단 다르푸르 민간인 학살을 묵인하고 지원한 혐의로 국제형사제판소(ICC)에 기소된, 오마르 알 바시르 (Omar al-Bashir;1944~) 수단 대통령을 초청하여 유럽과 미국 캐나다 등의 정부특사들이 집단 퇴장하는 웃을 수 없는 참극을 벌린 장본인이다.


    북한의 핵실험을 막아내기 위해 박근혜의 아프리카 3국(에티오피아·우간다·케냐) 방문이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 독재자를 아프리카에 심기위한 목적이 뒤따르고 있다는 결론이 된다. 바로 우간다의 무세베니는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을 필요로 한다는 골자이다. 아프리카에서 새마을운동으로 혁신을 가져올 수만 있다면 해야 한다. 하지만 내 집안 속을 완전히 뒤집어 엎어가면서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아프리카로 갔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를 해줘야만 할 것인가?

    국가 간 협약이나 협정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언제 시행할지도 모르는 - 아니 파기가 더 많을 수 있는 - 양해각서(MOU)에 서명을 하면서 언론은 대대적으로 과시용으로 돋보이게 하고 있는 중이다.


    1890년부터 영국의 식민지로 있으면서 1952년부터 이그나티우스 무사지(Ignatius Musazi)가 범국민적인 우간다국민의회(UNC)를 창설하였으나, 1956년의 민주당(DP)이 창당됐고, 1960년 오보테의 우간다인민의회(UPC)가 창당되면서 우간다국민의회가 분열되고, 정치가 불안전한 나라는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하지 못하며 퇴보된 것으로 보이는 나라 우간다. 1961년 9월에는 영국 런던에서 헌법제정의회를 열고 영국의 힘을 빌렸다. 내각책임제 헌법을 채택하며 첫 총선을 실시한 결과 민주당이 승리를 했다. 우여곡절 끝에 1962년 10월 9일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영국의 식민지 근성에서 탈피하지 못한 국민은 1971년1월 이디 아민(Idi Amin)이 일으킨 쿠데타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1979년 4월 정부군을 물리치고 캄팔라에 입성하여 이디 아민정부를 붕괴시킬 때까지 장장 8년의 군부독재에 시달렸다.

    과도정부가 들어섰지만, 또 정부는 흔들렸다. 가까스로 1986년 무세베니가 집권을 했으나 그도 마찬가지 독재 권력의 연속이다.


    대한민국은 정치가 안정이 되지 않았는데도 우리 국민은 살아야만 한다는 의지 속에서 일어났다.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든 새마을운동이 아니었어도 일어날 수밖에 없는 나라라는 것이다. 국민성이다. 부지런함이 몸에 배일 수밖에 없는 온돌식 문화에, 자고나면 꼭 청소부터 하고 세수를 하는 국민 생활이 선조들로부터 이어받은 민족이기 때문이다. 먹을거리가 없어도 방에 불을 때야하는 온돌문화는 여름에도 부엌에 항상 더운물을 먼저 끓여야 하는 문화가 있었다. 옆집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으면 굶지나 않나하고 들여다보며, 어른께는 “진지 드셨어요?”이고 손아래 사람에겐 “밥 먹었는가?”라는 아침인사가 오가던 한국만의 인사문화 속에서 한국경제는 싹이 틀 수 밖에 없었다. 아침 굴뚝에서 연기가 나야 이웃에서 걱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쌀이 없어 밥을 짓지 못해도 불을 때야 하는 여인들의 의무를 지금 여성들이 어찌 알까마는, 쌀이 없어 밥을 끓이지 못하면 눈물을 훔치며 동분서주했던 우리 어머니들은 우리를 위해 온 정성을 다해 아침밥을 먹여 학교에 보내기 위해 살았다. 그런 과정이 왜 왔는가? 이념 때문이다. 그 이념을 앞세워 남북으로 갈렸고, 6·25한국전쟁이 터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더 굶주려야 했다. 그 와중에도 대통령 돼 보겠다고 했던 인물이 박정희였다. 박정희의 이념투쟁은 말할 수 없이 무서웠다.


    굶어죽지 않으려니 모든 국민은 일거리만 있으면 너도나도 앞장섰다. 세계 어느 나라 국민이 이렇게 빨리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인가?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이 국가를 키웠다고 하지만, 그저 같은 시기에 그런 운동을 하려고 했던 이들은 부지기수였다. 단지 정권을 쥐고 18년은 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성공의 신화같이 보일 뿐이다. 아프리카에 새마을 운동이 달갑지 않아서가 아니다. 국민성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새로움을 찾아 나섰기에 우리는 성공을 했다. 이웃의 두려움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선의의 경쟁상대로 했다. 그래서 지금은 이웃이 잘 되는 것을 밉상스럽게 보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 우리 선조들은 지금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없는 쪽에게는 아무도 모르게 그 손아귀 속에 쥐어 주는 관습을 잊지 않고 살아 오셨다. 그게 한국의 미풍양속이라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새마을 운동 속에는 그런 미풍양속이 사라지고 있었다.


    초가지붕을 헐어내고 양철판을 깔면서 새마을운동은 시작하고 있었다. 정부는 가난한 농부에게 빚을 주고 양철판으로 갈라고 했다. 집을 개조하는 것이 새마을 운동의 시초였으니까.

    농부 일거리를 축소하기 위해 거름 대신 비료를 생산케 하면서 재벌을 만들어 놓고, 기름지던 땅은 죽어갔다. 농촌 곳곳에 소 대신 경운기가 들여온 것은 성공을 했지만, 땅은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땅을 기름지게 하기위해 비료도 쓰지 않고 농약도 치지 않으며 생산하는 농산물을 두고 유기농(Organic)이라는 말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농촌이 세월이 가면서 집집마다 자동차를 사고 길을 넓혀가지만 우리의 미풍양속이 얼마나 살아있는가? 새마을 운동은 서서히 발전을 시켜야 할 농촌을, 쾌속으로 바꾸면서 겉으로는 발전이 된 것 같지만, 속으로는 완전 곪아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 것인가?


    박정희가 젊은 삶에서 지나친 욕심이 없었다면 어떻게 한국 대통령까지 했겠는가마는, 청년기에 욕심이 턱을 넘어 머리까지 올라가서 일본 천황에게 혈서로서 맹세를 하면서 친일을 했다. 국군에 있으면서 공산주의를 따르기 위해 남로당과도 거래를 하고 있었고, 5·16쿠데타를 일으키고서는 정치를 하면서 욕정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해 갖은 색욕을 다부리며 여색에 미쳐있었으며, 심지어 국민탄압을 하기 위해 공안정치를 하면서 멀쩡한 이들을 빨갱이로 만들어가면서 국민을 욕보인 그 전적을 어찌 명예롭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철없는 그 딸은 그 명예를 새마을운동에 두어야 한다고 아프리카까지 비싼 기름 때가며 날아가 아버지의 업적을 위해 혼혈을 바치려하고 있는 중이다. 누가 말릴 수 있는가! 단지 이런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만 말해주고 싶어서다.


【엔테베(우간다)=뉴시스】전진환 기자 = 우간다를 순방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이 29일 오전(현지시간) 엔테베의 대통령궁에서 사전환담을 하고 있다.

 2016.05.29. amin2@newsis.com 16-05-29


  참고가 된 원문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529_0014115793&cID=10301&pID=10300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69517&cid=46627&categoryId=46627

http://www.mediapen.com/news/view/153617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55110&cid=40942&categoryId=34292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54217&cid=40942&categoryId=34320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20982&cid=40942&categoryId=34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