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 심 훈(沈熏)
* 불행하게도 이 작품은 1930년에 지어졌지만,
일제 탄압을 이겨내지 못해,
광복 후 1949년에나 세상에 알려지게 된 슬픈 역사를 품고 있는
가냘프고 외로웠던 詩(시)이다.
나라를 잃는 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웁고 안타까운 일인지
우리가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누가 냉정하게 대답 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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