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는 언젠가는 한반도 국기가 될 수 없다
대한민국의 국기인 지금의 태극기를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영효(1861년 6월 12일 ~ 1939년 9월 21일)가 1982년 8월 임오군란에 대한 사후 수습을 위해 특명전권대신 겸 제3차 수신사로 임명되어 일본으로 건너갈 때,
일본 배들은 당시 욱일기를 달고 있는 것을 보고 기본 태극문양만의 국기에 乾坤坎離(건☰ 곤☷ 감☵ 리☲) 4괘를 중국 복희씨가 지었다는 8괘에서 따와 그려서 자신을 비롯하여 종사관 서광범 등 14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가는 배에 달았던 것을 고종에게 보고한 이후 1883년 3월부터 大韓帝國(대한제국) 국기로 하면서 지금의 태극기가 탄생했다는 것을 알면 그리 반겨할 사람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차라리 우주의 음양을 그림으로 그린 #태극문양 만으로 최초의 국기로 했던 것을 감안하여 쓰는 것은 어떨지 생각도 해본다.
태극기 역사에 대해 시사상식사전은
우리나라의 국기 제정은 1882년(고종 19년) 5월 22일에 체결된 조미수호 통상조약 조인식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청(淸)나라는 자국의 국기인 '용기(龍旗)'를 약간 변형하여 사용할 것을 조선 정부에 요구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즐겨 사용해 오던 태극 문양을 흰색 바탕에 빨강과 파랑으로 그려 넣은 '태극 도형기'(太極 圖形旗)를 임시 국기로 사용하였다. 이후 국기 제정의 필요성을 느낀 조선 정부는 종전의 '태극 도형기'에 8괘(卦)를 첨가하여 '태극·8괘 도안'의 기를 만들었다.
이후 1882년 9월 고종의 명을 받아 특명전권대신 겸 수신사로 이 국기를 지니고 일본으로 가던 박영효는 선상에서 태극 문양과 그 둘레에 8괘 대신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만을 그려 넣은 '태극·4괘 도안' 의 기를 만들어 9월 25일부터 사용하였다. 그리고 10월 3일 본국에 이 사실을 보고하였고, 고종은 다음 해인 1883년 3월 6일 왕명으로 이 '태극·4괘 도안'의 '태극기'(太極旗)를 국기(國旗)로 제정·공포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태극기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친일파 박영효는 이규완 일행에게 의화군(義和君) 이강(李堈)을 국왕으로 추대하자고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하다가 교수형까지 당하게 됐으나 일본 궁내부 고문 가토 마스오[加藤增雄]의 권력에 의해 사면됐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1909년 6월 단군·조선 태조·일본 천황의 시조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臣]의 위패봉안과 의식을 거행하는 친일단체인 신궁봉경회(神宮奉敬會) 총재에 선임돼 한민족의 조상과 일본 시조를 동일 선상에서 인정하는 인물이었으니 그가 얼마나 친일적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다각적인 그의 친일은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5968&cid=
46623&categoryId=46623
태극기도 결국은 일장기의 형태에서 시작된 것 같아 그리 반갑지만 않았다.
더구나 태극기부대들이 태극기를 마구 凌蔑(능멸)하며 길거리 쓰레기 더미 위에 내던지는 것을 보고 언젠가는 대한민국 국기도 새롭게 교체돼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어제(10.5) #8차서초동촛불집회에서 전면에는 太極圖形(태극도형) 후면에는 하늘과 아버지를 상징하는 건☰이 박혀 있는 팻말을 들은 군중들을 위해 주최측에서 10만장을 준비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생각해본다.
남북통일이 되면 이제는 어차피 바꿔야 할 국기이지만 대한민국 태극기는 그렇게 달가운 국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미리 알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
고로 태극기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 않을지?
10.5서초동촛불집회에 자그마치 300만 명이 운집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미디어오늘은
‘서초동 촛불집회 검찰개혁 더해 언론개혁도’라는 제하에,
주최 측은 집회 참가자 목표치인 300만명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주최 측은 “하지만 숫자를 부각해 어느 쪽이 더 많이 왔는지 겨룬다면 시민들이 모이는 의미가 퇴색된다. 앞으로는 주최 측 추산 참가자 수는 밝히지 않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2846
지난주보다 더 많은 인파가 나온 것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서초사거리는 말할 것도 없이 "Uncountable!"(미국 사람들은 골치 아프지 않게 간단히 이 단어로 ‘수많은 사람’으로 해석)의 군중들이 집결돼 “검찰개혁” “조국수호”를 외치며 오후 2시부터 밤늦은 시각까지 울분을 감추지 못하고 가슴속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단다.
한 장소를 3~4번 다른 사람들로 바꿔지며 입추의 여지도 없었다면 왜 300만 시민들이 다녀가지 않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일찍 온 사람들은 일찍 돌아갈 수 있고 뒤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밤새도록 군중들이 떠나간 자리를 걸으며 같이 상상하고 각자 시민들의 悔恨(회한)서린 심정을 함께 나누지 않았을까?
해방 이후 70년이 넘도록 검찰의 힘을 惡用(악용)해서 독재를 감행했던 3대 독재자(이승만 12년과 박정희 18년 그리고 전두환 7년)가 나오게 한 것도 국민의 무능이었다는 것을 왜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인가를!
왜 우리는 그런 후예들을 아직도 국회에 보내고서 검찰개혁을 국민이 직접 외쳐야 하는 가를!
悔心(회심)의 미소는 쓰고 탁하여 어설프게 느끼지 않았을까?
사람이 한 번 생각을 잘 못하게 되면 자그마치 100년을 넘게 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느끼고 있지 않은가?
친일파들이 토착왜구(토왜)의 짓을 한 때문에 일본은 한반도에 발을 들어놓게 됐고, 결국 서방의 외세를 들여와 한반도 정국을 꽁꽁 묶어 모든 권리를 빼앗아 나라를 망치게 한 것도 모자라 반도를 능멸하게 한 일본을 도와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낳게 하지 않았던가?
그들이 만든 태극기를 펄럭이며 일본인들을 환영했고 그(토왜)들이 지은 노래를 부르며 애국이라고 하며 살았으니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을 嫌惡(혐오)하지 않았을 이유 없고 끝내는 대놓고 ‘혐한’을 노골적으로 저지르며 놀아나는 일본 아베 정권을 보고 있지 않는가?
그걸 장려했던 박정희 독재정권을 등에 업고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정권을 蹂躪(유린)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자한당)과 야권 세력 국회의원들의 放恣(방자)한 자세를 계속 보고 싶은가?
조국을 얼마나 무섭게 생각한 저들이라면 언론사를 총동원할 수 있는 능력을 아주 최대한으로 발휘했을 것인가?
더는 저들이 대한민국 국회를 농락하거나 유린 할 수 없도록 철저히 방어해야 할 일이 앞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일!
단 한 석의 의원도 배출 할 수 없게 21대 총선에서 총력을 다 해 막아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촛불의 힘으로 커가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깃발은 아직까지는 촛불을 상징하는 게 옳지 않겠는가?
바람에 꺼진다고 해도 그 촛불에 불을 붙일 수 있는 여력은 있을 것이니까?
굳이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제작한 태극기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박영효 같은 인물들은 지금도 태극기를 열심히 흔들고 있잖은가!
원문 보기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1098&cid=58840&categoryId=58856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73143&cid=43667&categoryId=43667
https://namu.wiki/w/%ED%8C%94%EA%B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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