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先) 추서하고 後(후) 국무회의 의결된 김종필 무궁화장?
대한민국 훈장의 가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정할 수 없는 지경에 있었다면 믿을 사람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 훈장의 가치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독재 37년의 역사 속에서 준 훈장을 누가 인정할 것이며 정치혼란기 속에서 준 훈장 또한 특별한 가치가 있을 것인가!
하지만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민주화의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촛불혁명에 의해 탄생된 문재인 정부 훈장은 가치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국민의 기대와는 다르게 과거 정권과 다름없이 남발하고 있었다.
5.16군사정변의 주동자 박정희의 오른팔인 김종필(金鍾泌, 1926년 1월 7일 ~ 2018년 6월 23일)이 사망하자 문재인 정부는 서둘러 훈장부터 追敍(추서)했다.
6월 25일 장례식장서 먼저 추서하고 난 다음 7월 31일 국무회의 의결된 김종필 무궁화장은 후일 문제의 발단이 될 것은 분명하다.
쿠데타의 주역이자 독재정치의 2인자에게 국가훈장을 준 나라가 된다.
하기야 독재정권에서도 수많은 훈장이 남발됐으니 그 가치는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도 막가파식의 훈장 추서를 했는지 모른다.
김종필은 1965년 한일협약 이전 1962년 중앙정보부장 시절 오히라 마사요시를 만나 협상의 내용을 합의하며"김-오히라 메모"를 남긴다.
후일 김종필은 "내가 이완용이 소리를 들어도 그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조금 적은 액수이더라도 빨리 공장을 세우고 기술을 배웠기 때문에 우리 경제성장이 빠르지 않았느냐. 후회하지 않는다"고 회고했다고 위키백과는 적고 있다.
국가를 팔아 민주공화당(공화당) 정치자금을 위해 일본 기업들로부터 당시 6,600만 달러를 받은 장본인이다.
박정희 독재정권을 유지시키기 위해 전쟁 성노예 위안부와 강제징용자들의 배상금까지 착복하여 포항제철에 투자시켰다.
후일 포항제철의 성공이 그 때 위험천만한 상황을 감춰주고 있다고 하지만 포항제철은 성노예 위안부와 강제징용자들에게 후일 배상하지 않았다.
박정희 독재정권 18년 동안 지대한 공헌을 한 대가로 가치도 없는 훈장을 김종필은 여러 개 받아냈다.
1979년 10.26사태 이후 전두환의 12.12군사정변 이후 7년 동안 감금된 다음 1987년부터 일선정치에 나서면서 김영삼과 김대중 사이에 끼어들어 ‘저울질 정치꾼[Casting voter]' 역할을 시작하면서 박정희 독재시대의 정치꾼들과 野合(야합)을 일삼으며 두 김씨를 괴롭혔다.
하지만 그 두 김씨는 김종필로 인해 대통령이 됐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김영삼과 김종필은 노태우(전두환과 莫逆(막역)한 친구)와 야합정치를 시작했다.
민주정의당(민정당=지금의 자유한국당 전신)이 탄생한 것이다.
언론은 김대중과 김영삼 그리고 김종필을 ‘3김’이라고 筆跡(필적)하며 김종필을 띄워주고 있었지만 김영삼과 김대중 사이에 끼어들면서 ‘저울질 정치꾼’ 행세를 하면서 두 김씨의 앞을 가로막기에 총력을 다 한 ‘9선 정치꾼’에 불과한 인물이다.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놓고 책임총리 자리를 빼앗기 위해 국회청문회에서 困惑(곤혹)까지 치르면서 청문회 역사상 최대의 시간을 끌어가며 국무총리에 가까스로 올랐다.
그런 그를 문재인 정부는 그의 훈장 추서사유에 IMF극복과 경제고도성장을 적고 있으니 irony한 일 아닌가싶다.
그러나 훈장을 줄 때 그가 쌓은 공을 적어 기록하는 공적조서를 발표해야 하는데 그것을 생략하는 문재인 정부이다.
이런 내용을 발표하는 것도 평양 3차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발표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뉴스에 덮어버릴 心算(심산)인 것이다.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국가 훈장을 지금부터라도 귀중한 보물처럼(훈장의 가치를 확실하게 해야 하는 것처럼) 여기며 정말 出衆(출중)한 인물에게만 수여하는 관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김종필에게 추서한 무궁화장은 취소돼야 한다.
후일 군사정변을 일으키고 독재자를 도와 독재정치를 일삼은 자들이 태어나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
촛불혁명의 가치를 尊崇(존숭)케 하려면 김종필에게 관대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으로 협치를 하겠다는 것은 좋으나 훈장을 줘가면서 마치 사고파는 식의 정치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문재인 정부의 속내까지 보인 김종필의 무궁화장!
국민의 눈이 부끄럽지 않은가?
다음은 연합뉴스가 보도한 내용이다.
‘정부, '김종필 훈장추서' 사후의결…공적조서는 비공개’라는 제하에,
정부가 고(故)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는 안건을 국무회의에서 사후 의결했으나 어떤 이유로 훈장을 추서했는지 적은 '공적조서'는 비공개했다.
김종필 전 총리의 영정과 국민훈장 무궁화장
(서울=연합뉴스) 27일 오전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에서 열린 故 김종필 전 국무총리 영결식에 김 전 총리의 영정사진과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2018.6.27 [사진공동취재단]
16일 국무조정실(총리실)이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 등에 따르면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6월 25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김종필 전 총리 측에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전달했다.
당시 국무조정실은 "이영덕·남덕우 전 총리도 별세 후 장례일정에 맞춰 국무회의 의결 없이 무궁화장을 먼저 추서 받았다"며 "전례에 따라 사후 절차를 밟기로 했다"며 선(先) 추서 방침을 밝혔다.
선(先)추서되는 국민훈장 무궁화장
(서울=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종필 전 국무총리 빈소에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고 있다. 2018.6.25
JP추서를 두고 한쪽에서는 "한국 현대사의 주역이자, 국무총리를 두 차례 역임하는 등 무궁화장을 받아 마땅하다"고 찬성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군사쿠데타와 유신체제에 책임이 있는 역사적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셈"이라며 반대했다.
국무조정실은 7월 13일 자체 공적심사를 하고 무궁화장 수여안을 행안부로 넘겨, 같은 달 26일 차관회의를 거쳐 31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 제33회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8월 1일 재가했다.
하지만 당시 언론에 제공된 제33회 국무회의 사전·사후 안건목록에는 '영예수여안(광복절계기 독립유공자 포상 등)'으로 뭉뚱그려져 있어서 JP 훈장추서안의 상정·의결 사실이 국민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제33회 국무회의 안건 목록
심 의원실은 공적조서 사본을 요청했으나 국무조정실은 공개를 거절했다.
국무조정실은 의원실에서 공적요지라도 달라고 재차 요구하자 "김종필 전 총리는 제11·31대 국무총리, 국회의원 및 정당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학식과 경륜을 바탕으로 고도경제성장 견인, IMF 극복 등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 발전에 기여했다"고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이에 심 의원은 "당시 훈장 추서 사유가 국민적 관심 사안이었는데도 정부가 사유를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면서 "앞으로 훈장추서는 논란이 되지 않도록 사유를 정확히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재철의원실 제공]
송고시간 | 2018/09/16 07:00
원문 보기;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9/14/0200000000AKR20180914075900001.HTML?input=1195m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917012005&wlog_tag3=naver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C%A2%85%ED%95%84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6&news_seq_no=3636822
http://www.joongdo.co.kr/main/view.php?key=20180916010006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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