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
저렇게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을 것이오.
거울 속에도 내게 귀가 있소
내 말을 못 알아듣는 딱한 귀가 두 개나 있소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오.
내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악수를 모르는 왼손잡이오.
거울 때문에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만져보지 못 하는구료마는
거울이 아니었던들 내가 어찌 거울 속의 나를 만나보기만이라도 했겠소
나는 지금 거울을 안 가졌소마는 거울 속에는 늘 거울 속의 내가 있소.
잘은 모르지만 외로된 사업에 골몰할게요.
거울 속의 나는 참나와는 반대요마는 또 꽤 닮았소
나는 거울 속의 나를 근심하고 진찰할 수 없으니 퍽 섭섭하오.
1934.10.
- 이상 김해경
*** 李霜(이상)은 띄어쓰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데,
“이것은 정서법이나 기존의 율격의식 같은 모든 상식이나 질서를 거부한다는 뜻도 된다.”라고 나무위키는 적었다.
그의 그것까지 지금에 와서 고집할 필요가 더는 없을 것 같기도 하여,
내 멋대로,
작가의 방식에 대한 반항일지 모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1949) 박사의 한글 사랑에 헌신한 그 대가를 따진다면 답답하게 한글을 이어 쓴 것을 확 풀어버리고 싶어지고 만다.
물론 周時經(주시경) 선생의 한글에 대한 愛着(애착)의 밑바탕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어떻게 됐을지도 모르지만,
‘한글’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것도 일제강점기가 지은 죄의 代價(대가) 아니던가!
국어에서 띄어쓰기가 얼마나 위대한 일이었는지 아는 이들은 아마 이해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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