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삼성전자의 이재용 그리고 인도[India]
“한국에서도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 뉴델리 인근의 노이다 공단 안에 ‘삼성전자 인도 신 공장 준공식’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과 홍현칠 삼성전자 서남아당당 부사장이 접견하는 자리에서 언급한 뼈있는 소리이다.
재벌들이 한국 땅을 벗어나 외국으로 확장하는 것에만 열을 올리고 있지는 않은지 재벌 스스로에게 의심해봐야 하는 상황은 아닌지?
물론 삼성전자가 인도 같은 정보기술(IT, Information Technology) 서비스 산업[소프트웨어(SW), 업무처리 아웃소싱(BPo, Business Process outsourcing)]의 부흥을 이루는 나라에 신 공장을 세우는 것에는 큰 意味(의미)가 있다는 것은 잘 이해하는 바이다.
인도는 저임금의 풍부한 소프트웨어 기술 인력과 축적된 기초과학 지식,
더해서 인도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
지리적으로 주 고객인 미국과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어 시차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장점 등으로 인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도 대한민국 외교부는 진즉부터 인정하고 있었으니 좋은 성과를 가져올 것으로 본다.
인도는 미국 다음의 정보기술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200만 명(2008년 기준) 이상이 정보기술 서비스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만 보더라도 삼성전자의 인도 신 공장 준공은 커다란 意義(의의)가 있다고 본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물론 IBM, 오라클(Oracle) 등 세계 굴지의 정보기술 전문회사가 방갈로르(Bangalore), 하이데라바드(Hyderabad) 등에 사무소를 설치해 수천 명의 인도 IT기술자들을 고용하고 있다는 것만 보더라도 인도의 삼성전자의 확장은 마땅하다.
그러나 고국에서 삼성의 旣存(기존) 발판도 깊이 있게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대한민국 청년 실업률의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대통령의 입장을 볼 때 “한국에서도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한 문 대통령의 助言(조언)도 마땅한 것이다.
다음은 인도에 대해 잠시 복습해본다.
인구 약 1,354,052,000명의 세계2위(2018 통계청 기준) 국가인 인도는
힌디어(40%)외 14개 공용어를 사용하지만 영어를 상용 언어로 쓰고 있어 다각적으로 편리한 나라 아닌가싶다.
나라 면적도 3,287,263㎢의 세계7위(CIA 기준) 국가인 인도!
삼성전자 뿐 아니라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노리고 있는 지구촌 굴지의 大(대) 市場(시장)으로 꼽히는 인도!
GDP가 2조 8,482억 달러로 세계7위 (2018 IMF 기준) 국가인 나라!
인도의 기후는
“히말라야산맥이 장벽을 이루어 전체적으로 열대몬순(계절풍)기후를 나타낸다. 몬순(계절풍)은 태양이 북반구로 북상하고, 또한 남반구로 남하함에 따라 겨울과 여름의 두 계절이 나타나고, 남서와 북동의 바람이 교대하는 것으로서 인도양을 항해하던 아라비아인이 명명한 것이라 전해진다.”며 두산백과는 적고 있다.
인도의 계절은 계절풍의 변화를 바탕으로 3월에서 5월에 이르는 乾燥(건조) 酷暑(혹서=몹시 심한 더위)기와 6월에서 10월 상순에 걸친 濕潤(습윤=습기가 많아 끈끈함) 高溫(고온)의 氣候(기후), 그리고 10월에서 2월에 이르는 乾燥(건조) 寒冷(한랭)기 등의 삼 계절로 되어 있다. 최고기온은 하지와 雨季(우계) 직전에 나타난다. 해안 가까이 있는 캘커타에서는 낮에도 그늘의 기온이 40℃를 넘는 경우가 가끔 있으며, 갠지스강 중류지역에서는 43℃ 정도로 오르는 것은 보통이다. 밤에도 실내는 더우므로 사람들은 마당이나 길 가에서 노숙을 많이 한다.
남부 인도는 원래 상하의 지방이나, 북부 인도의 겨울은 기온이 내려가 한국의 초가을과 같으며 하늘은 맑게 개어 순례의 계절이 된다. 이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0월 하순부터 시작되는 건기는 겨울이 되며, 인도 북부에서는 곳에 따라 영하로 내려가고 강수량이 적고 건조한 것이 특색이다. 특히 가장 추운 1월에는 육지에서 바다로 바람이 불어 건조하면서도 청명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도의 기후 (두산백과)
인더스강을 중심으로 하는 인더스 문명과 함께 시작하였다는 인도의 역사는 눈부시다는 표현을 한다.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3,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 사이에 발전하였던 문명으로, 이집트 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조금 늦게 발달하였으나,
단순히 인더스 강 주변 지역이 아니라 가하하크라 강 유역까지 포함하는 폭과 길이가 모두 1,000km가 넘는 매우 광범위한 범위에 걸쳐서 발달하였다고 두산백과는 다음과 같이 적어나가고 있다.
유적지들은 지점마다 멀리 산재해 있는데 하라파와 모헨조다로(Mohenzodaro)간의 거리만 600km 정도 떨어져 있다. 또한 모헨조다로의 동쪽 40km의 코트디지 유적과 델리의 서쪽 270km의 칼리방간 유적이 발굴되어, 인더스문명 직전의 문화가 밝혀졌다. 칼리방간과 암리의 유적은 하라파(Harappa)보다 앞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트디지 유적에서는 인더스 문명에 속하는 4층의 밑에 12층에 이르는 코트디지문화의 층이 있으며, 견고한 요새를 가진 작은 도시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발굴된 어느 유적에서도 철기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지 않아 인더스 문명은 청동기 문명으로 보고 있다.
인더스 문명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모헨조다로나 하라파의 유적은 BC 2,500년경의 것으로 정교한 도시계획을 가진 도시문명의 흔적을 보여준다. 양자는 모두 동일한 도시 계획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첫째 시가지에서 약간 높은 곳에 성채가 있으며 이곳에는 주로 제단과 공공시설이 있고 낮은 쪽에 일반시민들의 주거지역이 집중되어 있는 구조를 보이고, 둘째 도로는 바둑판 모양으로 질서정연하게 조성되어 있고, 셋째는 매우 정교한 배수시설을 가지고 있으며, 넷째 집들은 견고한 구운 벽돌을 재료로 사용하고 있었다.
또한 이들 도시에는 지배자를 위한 시설이나 신관들이 사용하는 소욕장과 일반시민들이 사용하는 대욕장이 나눠져 있는 목욕시설이 발달해 있고 곡물창고, 상, 하수도 시설 등의 공공시설를 가지고 있다. 주택 외에 상점·식당도 있었으나, 하라파나 모헨조다로에는 신전이나 왕궁으로 볼 수 있는 대건축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하라파의 대규모 식량창고와 모헨조다로의 대형 목욕탕은 당시의 도시의 규모가 상당하였고,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하였음을 보여준다.
인더스 문명의 유물인 채도, 금은 세공품, 구리, 청동제식기 등의 분포로 미루어 이란과 메소포타미아 지역까지 교역을 하고 있었으며 멀리 나일강 유역과도 활발한 문물교류가 이루어졌다고 추정된다. 인장처럼 생긴 유물은 동일한 모양의 유물이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도 많이 발견되고 이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인장에 등장하는 악어, 코뿔소, 물소 등의 동물로 미루어 보아 오늘날보다는 습하고 숲이 우거진 환경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더스 문명의 주인공들이 목화를 옷감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아 최초의 목화 재배자였음을 알 수 있다.한편으로 신앙생활을 위한 성채가 마련되어 있고, 여러 동물이 그려져 있어 자연물 숭배의 흔적도 보인다. 그런데 시바신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삼면신(여신상)이 발견되었으며, 수많은 동물에 둘러싸여 요가의 자세를 취하는 수행자의 모습이 인장이나 돌 위에 새겨놓은 그림에 나타나는 바, 오늘날의 인더스인의 신앙인 힌두교와 깊은 관계가 있다.
그런데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던 인더스 문명은 그 갑작스런 멸망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몰락의 원인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게 추측된다. 천재지변인 홍수로 인해 강이 범람하면서 붕괴하였을 것이라는 설, 고생물학적 연구에 따라 과도한 경작과 삼림파괴로 인한 환경의 변화로 붕괴하였다는 설, 이후에 이 지역에 들어온 아리아족과 같은 외적의 침입을 받아 멸망했다는 설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도의 인더스 문명 성립 (두산백과)
더 중요한 것은 인도의 민족해방운동자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년 ~ 1948년)를 배출한 나라 인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는 점이다.
철학사전은 간디를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논술하고 있다.
인도의 민족해방운동의 지도자. 영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얻고 남아프리카로 건너간 그는 인도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충격을 받아 반대운동을 일으켰다. 인도에 귀국한 후 사티아그라하투쟁(Satyagraha란 '진리의 파지把持'란 뜻)을 조직하여 반영(反英) 독립운동을 개시한다.
철학적 견해로는 객관적 관념론자로서 신과 진리를 동일시하고, 도덕적 자기개선을 통해 그러한 진리를 포착할 수 있다고 보았다. '불상해'(不傷害), '극기', '금욕' 등이 그의 도덕의 원리를 이루고 있다. (힌두교 아힘사(ahimsa)의 禁忌(금기)의 德目(덕목))
그의 사회적 정치적 관념 역시 사티아그라하의 생각을 구체화하여, 제국주의자에 대한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국민회의파의 지도자로서 객관적으로는 인도 민족자본의 입장에 섰지만, 다른 한편으로 농민쟁의ㆍ노동쟁의를 지도하고 인도 민족을 대중투쟁으로 결집시켜 제2차 세계대전 후 인도가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냈다.
후에 대중적 비복종운동을 개인적 불복종운동으로 바꾸어 국민회의파의 지도력을 상실했지만, 마하트마(mahatma=위대한 정신)로 경칭되는 등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네이버 지식백과] 간디 [Gandhi, Mohandas Karamchand]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
문 대통령, 간디 기념비에 헌화 문재인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뉴델리 간디기념관을 방문해 간디 기념비에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7092234005&code=910302&nv=stand&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top#csidxb41fda1cd3bd9c997ceb7310f30dece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81186&cid=48531&categoryId=48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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