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 김종서를 역적으로 몬 수양과 박성진의 역사관
‘도둑이 제 발 저리다.’
즉 지은 죄가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조마조마해지는 법!
수양대군 세조는
1543년 癸酉靖亂(계유정란; 단종1년)을 일으키고도
그 즉시 왕위까지 簒奪(찬탈)하지는 못했다.
그 휘하에 있던 정인지 ·한확 ·이사철(李思哲) ·박종우(朴從愚) ·이계전(李季甸) ·박중손(朴仲孫) ·김효성(金孝誠) ·권람(權擥) ·홍달손(洪達孫) ·최항(崔恒) ·한명회(韓明澮) 등 등 그 당시 공신이라고 하는 무리들은
단종까지 몰아내고 왕위에 올라야 한다고 했지만,
수양은 뜸을 들이고 있었다.
도둑이 제 발 저려서다.
그의 속셈은 후대에 이어지는 역사까지 걱정하는 인물 아니냐고 묻는다.
이조 초기 큰 호랑이[대호(大虎)]라 알려지던
節齊(절제) 김종서(金宗瑞) 당시 좌의정과 두 아들들을 먼저 치고,
대호의 충신을 죽이지 않고서는 권력을 찬탈(簒奪)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전에 준비한 생살(生殺) 명부(名付)에 따라
영의정 황보 인, 이조판서 조극관(趙克寬), 찬성 이양(李穰) 등 등
자신과 상대적이라고 생각되는 인물들을
궐문(闕門) 안으로 끌어들여서 죽이는 참담한 짓을 자행한 수양의 반란!
12살 단종은 치를 떨며 충신 국경(國卿; 김종서의 자(字)) 김종서를 찾았다.
할아버지 세종 때부터 국경 김종서는 충신으로 알려진 인물 아니던가!
자신이 어려 힘이 없는 틈을 타 숙부 수양이
딴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손발이 떨리며 온 몸이 사시나무가 된다.
아직 혼인도 하지 않은 상태였으니 믿을 곳이라고는 충신들이 전부였는데,
(어떤 사서는 수양이 단종을 꾀나 아끼는 것 같이 서술한 것도 없지 않지만,
현대에 들어와 독재정권들이 만든 假定(가정)이라고 할 수 있음)
하루 밤 사이에 다 죽던지 감옥에 있으니
누구에게 하소연을 해야 할 것인가?
지금 이 글을 만들면서도 이 글이 사실이 될 수 있을까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역사란 글을 쓰는 사람들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또 역사 아닌가싶다.
그 역사를 바르게 알 수 있는 길은 극히 어렵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알려고 하는 것도 역사이다.
“역사에 무지했다”는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49)!
최소한
현대를 살아가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1919년 4월 13일부터 썼다는 것을
알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과학적인 두뇌는 좋아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올랐는데
소시민의 자세에서조차 탈락하는 발언을 했으니
구설이 따르지 않는가?
수양은 계유정란을 통해
김종서 황보인 등 죽임을 당한 충신들을
역적으로 만들어버렸다.
후일 사육신들까지 역적으로 기록했다.
이긴 자 멋대로 역사가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숙종 대에 단종과 사육신이 복권되었지만,
자그마치 300년 가까이 계유정란의 충신들은
역적이었다.
세조를 선조로 모시는 임금들이
어떻게 선조를 욕되게 하려고 했을 것인가!
김종서를 충신으로 다시 돌려놓게 되면,
그 순간 수양은 자연스럽게 역적으로 변해버리지 않는가!
사실과 진실은 거짓을 이기게 되는 법!
영조에 와서 황보인과 김종서 충신은 역적의 탈을 벗게 된다.
세조의 치세가 지금껏 잘 알려지고 있지만
이조 500년 역사에서 볼 때
세조는 충신들을 죽여 왕권을 찬탈한 역적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긴 자가 쓴 역사만이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조 역사는 피에 대한 곡해(曲解)의 역사로 남아 있는 것이다.
아직도
이긴 자들만의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
독재자 박정희와 전두환은 수양과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우리역사를 올바르게 써야 하고
올바르게 이해하며 알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독재자 박정희와 전두환이 고치려 했던 이조역사도
확실하게 짚고 가야 할 것으로 본다.
큰 호랑이[大虎] 김종서 충신의 역사부터라도
올바르게 알아야 할 것 아닌가?
16세 당시 문과에 최연소 급제,
자신의 재주를 자부한 신동?
그 당시 정인지 19세, 이덕형 20세에 급제한 것과 비교가 된다.
함경도 두만강 일대 국경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6진을 완성한 장군!
무인으로만 알고 있던 김종서 장군!
세종 당시
집현전학자들 중 권제(權踶)·안지(安止) 등이 쓴 ‘고려사(高麗史)’를
절제 김종서 충신이 감수했다고 한다.
- 왕의 치적만을 중심으로 편찬한 고려사 - 를
보기 좋고 알기 쉽게 하기 위해
신하를 중심 내용으로 한 편년체의 역사책 ‘고려사절요’도 정인지와 함께 편찬!
문무를 겸비한 국경(國卿) 김종서 충신을 기려야 하지 않을까?
역사를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바꾸면 된다고 본다.
이념이 완전하게 머리에 박혀있지 않는 한
잘 못된 역사관은 바로 잡을 수 있지 않은가?
소시민들이 잘 못된 사고를
그들만의 탓으로 돌린다는 것은 난항(難航)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를 승리자들의 것으로만 삼던 과거 독재자들의 역사가 일깨우기 때문!
고로
박성진 후보자 역사관도 그에 속하는 상황으로 보고 싶다.
국가는 진정되고 확실한 기준이 필요한 것이다.
그 기준을 잡지 못했던 과거 정권들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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